군중 속에 외로움. (2)
군중 속에 외로움. (2)
어학 수업에 마가 끼었다.
취업 프로그램 참가자가 근면성실을 보여 줄 수 있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면접장이 아닌 프로그램 속 어학 수업이다.
30년 넘게 인도네시아에서 거주한 어학원 원장님을 필두로, 취업 프로그램 시간표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주 5일, 하루 6시간씩 어학원에서 어학 수업을 진행하고, 거기에, 일주일에 한 번씩 명사 초청, 한 달에 1번의 기업체 탐방을 가는 것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어있었다.
수업은 필수 참여였고, 프로그램 참여시간이 부족한 경우, 당연하게도 프로그램을 통해 공짜로 받은 많을 혜택을 국가에 배상해야 한다. 그렇기에 전공자들도, 비전공자들도 수업은 무조건 참석했어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심각한 오류가 발생했다. 프로그램 주최 측의 기획 문제였는지, 아니면 예산 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참가자 11명이 다 같이 같은 교실에서 같은 수업을 들어야 했다. 인도네시아 전공자들은 최소 4년, 그중에 1년은 인도네시아 교환학생을 경험한 이들이었는데, 그런 이들과 기초 단어도 겨우 알아듣는 초보자들이 같은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
전공자와 비전공자 어디에 초점을 맞춰도 다른 한쪽은 수업에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원장님과 강사진들은 난이도 조정을 통해 어떻게든 양쪽에 윈 윈이 되는 방식을 찾아보려 했지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4년 이상 언어를 전공한 사람들의 니즈를 만족 시키려면 비즈니스 인도네시아어 강의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고난도 강의가 시작되는 순간 인도네시아어 꿈나무들은 잎사귀부터 검게 썩어들어가 말라 죽는다. 그렇다고 꿈나무들을 위해 기초 문장 수업을 나가면, 전공자들은 잠이 든다. 코을 안 골면 다행이다. 수업이 방향성을 잃고 좌충우돌하는 동안 참가자들은 수업에 대한 열의는 급격히 식어갔다. 그리고 식은 열의는 출석률에 영향을 줬다.
‘총 참여시간에 70%만 참가하면 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수업이 똑바로 되건 안 되건 간에, 우리는 지각과 조퇴 그리고 결석을 해선 안 된다. 프로그램 안에서 봤을 때, 도움이 안 되는 수업도 밖에서 보기엔 멀쩡한 수업이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불성실하다는 소문이 한인사회에 돌면 취업은 끝장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는 끝장이다.
전공자들이 눈치껏 수업을 빠지려 온갖 핑계를 댄다. 선배를 만나 취업 정보를 얻겠다, 학교 동문회에 참석하겠다 등 반쯤 합법적인 결석과 조퇴 반복한다. 하지만, 전공자 전체가 빠지는 것도 아니고 전공자 한두 명이 돌아가면서 수업을 빠지니, 수업에는 도움이 안 되고 면학 분위기만 망쳤다. 수업을 열심히 듣는 게 이상해 보일 지경이다.
그렇다고 전공자들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쓸데없는 수업을 듣는 것 보다, 프로그램 취지에 맞춰, 취업에 최선을 다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어쨌건, 취업이란 개인전이고 경쟁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같은 프로그램만 아니였어도 두 팔 벌려 환영 했을 행동이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공자 한 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인도네시아어 전공에 캐나다 어학연수 경험까지 있어 누가 봐도 취업을 잘 할 친구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에 벌어졌다.
숭어가 뛰니 망둥이가 뛴다는 말이 있다. 취업에 성공한 참가자가 프로그램에 소홀하니, 다른 참가자들이 더욱더 수업에 소홀해진다. 심지어 비전공자들한테도 이상한 기류가 돌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