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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해외취업 시작과 끝.

군중 속에 외로움. (3)

by John 강

군중 속에 외로움. (3)


프로그램 참가자 11명 중 10명이 20대, 그리고 나 혼자 32살이었다. 친근하게 다가가도 다른 참가자들이 불편해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비전공자 참가 중 한 명과는 인도네시아어를 할 줄 모른다는 동질감 덕분에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프로그램 진행 중 어쭙잖은 말 몇 마디 한 뒤로는 그 친구를 제외하고 프로그램 내에 다른 참가자들에게 따돌림 비슷한 걸 당했다.

취업에 성공한 참가자는 인도네시아에 있는 친구와 선배를 만나며 신나게 놀러 다녔다. 나였다면, 더 열심히 놀았을 텐데 저 정도밖에 놀지 못하는구나 하는 아쉬움이 보였지만,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다.

내 신경을 건드린 곳은 취업에 성공한 참가자와 함께 어울려 다니며 정신 못 차리는 다른 참가자 들이고, 그중에서도 인도네시아어 비전공자들이었다. 왜냐하면, 비전공자들의 평판이 내 평판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어 전공한 애들이 뭐 배울 게 있다고 수업을 듣겠어. 시간 낭비지, 그런데 전공자도 아닌 애들이 수업 태도가 엉망이라더라”


저 한 문장이 한인사회에 소문나면 내 취업도 같이 날아간다. 쓸데없는 기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진 인맥이나, 능력이 없기에, 소문이 날지 안 날지 모르는 저런 쓸데없는 소문 하나에도 민감했다.


그러므로, 원치 않지만, 운명공동체였기 때문에, 쓸데없는 잔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좀 덜 꾸미더라도 수업에 늦지 말자’, ‘어학원 수업 빠질 거면 미리 이야기하자’, ‘숙제는 안 해도 책은 들고 다니자’ 등 당연한 이야기를 속으로만 수십 번 삭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딱 한 번 어렵게 이야기 꺼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당신이 뭔데 우리한테 이래라저래라 입니까?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인맥을 만들어 취업할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하는 반응이었다. 황당했다. 수업도 제대로 안 들고 놀러 다니는 사람을 술자리에서 몇 번 봤다고 취업시켜주는 인맥이 있을까?


그 날 이후로 참가자들 사이에서 난 없는 사람이 됐다. 한번은 참가자들끼리 다 같이 클럽을 가는데 아무도 나에게 같이 가자 권하지 않는다. 내가 나이도 있고 같이 놀기 불편하니 그런가 보다 했지만, 씁쓸했다. 뭐 내가 당연히 거절할 줄 알고 물어보지 않았겠지라며 스스로 위로했다.


그다음 주에는 몇몇 참가자들끼리 여행을 떠났다. 물론 당연하게도 나에게 여행을 같이 가자 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에, 혹여나 내가 여행에 끼워 달라고 할까 봐 나를 피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나를 따돌리는 그들의 유치함에 짜증은 났지만, 더 짜증 나는 건 저들이 수업을 빼먹고 여행 가는 걸 프로그램 총 담당자인 어학원 원장님한테도 사전에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단체 무단결석이라니, 그 날 일일 강사로 오셨던 박스회사 사장님이 황당해하고, 원장님이 민망해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들의 근면하지 못한 태도가 프로그램의 이미지를 왕창 깎아 먹었다는 사실에 짜증 났다.


그 이후로 시간은 계속 흘러 인도네시아에 온 지 한 달쯤 됐을 때, 언어 전공자들은 하나둘씩 진로가 정해졌다. 하지만 그에 반해 나를 포함한 비언어 전공자들은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얻는 것 없는 채로 프로그램이 끝나는 듯싶었다.


그때, 반전의 서막이 열렸다. 코트라(KOTRA)에서 젊은 사람들이 멀디먼 인도네시아까지 취업하러 와서 고생이 많다며 저녁 식사자리를 만들어줬다. 코트라 과장님 한 분과 현지 취업 관련해 도움을 주는 에이전시에서 실장님 한 분이 식사자리에 참가하셨다.


나를 제외한 다른 참가자들끼리 모여 앉으니 내가 앉을 곳이 없다. 빈자리라고는 모두가 피하는 딱 한자리, 원장님 앞, 그리고 코트라 과장님 옆자리만 남았다. 자연스럽게 빈자리에 앉아 과장님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과장님은 술을 끊으셨다는데, 오랜만에 말 통하는 사람을 만나선지 소주도 한 병 시켜서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그 순간이 내 취업에 새로운 분기점이 됐다.


‘한국에서 취업하러 온 학생 중, 아저씨들과 이야기를 잘 나누며, 술도 잘 마시고, 다른 애들은 안 그런데 수업도 근면 성실하게 잘 듣는 학생이 있다.’ 이런 소문이 한인사회에 돌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한 건설사에서 나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고, 그 호기심이 면접까지 이어져 취업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좋은 소문의 출처는 그때 함께 자리했었던 에이전시 실장님이고, 실장님께 나에 대해 좋게 말해준 분이 어학원 원장님이셨다.


해외는 생각보다 넓고 생각보다 좁다. 좁기에,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있으면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생긴다. 그러니 주변이 시선보다 옳다고 생각하는 걸 믿자. 그리고 다른 경쟁자 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는 사람처럼 보이게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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