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
"강대리, 흙 1루베 하고, 까유는 반만 주문해. 지난번에 시킨 그대로 시켜"
그때 제가 없었는데요란 말대꾸가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소장님은 현장 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암호다. 암호화폐보다 어려운 암호다.
네이버에 검색한다.
루베는 일본어로...
까유는 인니어로...
이전 발주 서류도 없다.
영수증을 뒤져 정확한 발주 단위를 확인한다.
"로헨디 씨, 이거 발주는 어떻게 합니까?"
"아무 종이에나 적고, 미스터가 사인한 거 사진 찍어서 단톡방에 올리면 본사구매팀에서 알아서 발주합니다."
이전에 단톡방에 올렸던 사진을 보여준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으로 발주서를 만들었다.
사진을 단톡방에 올린다.
곧장 본사 이사님께 전화가 왔다.
"야이씨, 너 뭐 하는 새끼야? 발주하나 똑바로 못해?"
"이렇게 하는 게 양식이라고 해서 따라 했습니다."
"현지인들 말하는 대로 일할 꺼면 네가 거기 왜 있어! 똑바로 해!"
전화가 끊겼다.
사실 많은 쌍욕을 들었지만, 혹시나 이 글을 읽을지 모를 가족들을 위해 자체검열 했다.
본사 구매팀 직원에게 발주서 양식을 달라고 한다.
"미스터 강, 우린 그런 거 없어."
텃세다.
한숨이 나온다.
한국에서 일했던 기억을 짜내 발주서 양식을 만든다.
발주품목부터 회사로고까지 빠짐없이 넣어 야무지게 만들었다.
컴퓨터로 프린트 후 사인을 한다.
스캐너가 없다.
결제 사인을 받은 후
스캔 어플로 서류를 찍는다.
카톡 대신 이메일로 구매팀에 보낸다.
그리고 CC로 이사, 소장님은 넣는다.
절차에 어긋난 건 없다.
그리고 단톡방에 글을 남긴다.
[구매팀, 방금 이메일 보냈습니다. 확인 바랍니다.]
다시 이사님에게 전화가 온다.
"발주서는 이메일 말고 단톡방에 띄워"
... 현지인처럼 단톡에 발주서 띄우는 게 맞습니까란 말이 입안에서만 맴돈다.
"예 알겠습니다. 발주는 단톡을 통해 하겠습니다."
-뚝
말없이 통화가 끊긴다.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후...
하루가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