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의 힘
경리의 힘
현장의 힘은 돈에서 나온다.
그리고 현장에 돈을 만지는 사람은 단 두 명이다.
본사에서 운영자금과 인부 월급을 통장으로 받는 소장님.
소장님이 준 돈으로 현장 경비를 지급하고 인부들 월급을 주는 경리.
단 두 명이다.
경리가 일반 직원일 때는 쉽게 쉽게 돈을 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로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 현장 관리자가 경리업무를 담당하자 모두가 불편해진다.
직원들은 소소한 횡령을 많이 했다.
고속도로 톨 게이트에서 바닥에 떨어진 영수증을 주워와 돈을 받아간다.
주유소에 버려진 영수증을 들고 와 돈을 받아간다.
오지도 않는 손님과 밥을 먹었다며 영수증을 올려 돈을 받아간다.
횡령금액은 적게는 몇 백 원, 많아봐야 몇 만 원이다.
좋게 좋게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있는, 내 돈으로 메꿔놔도 상관없을 금액이다.
하지만, 몰라서 돈을 주는 것과 알면서 모른 척 돈을 주는 것은 다르다.
바보가 되느냐, 한 팀이 되느냐의 차이다.
난 팀을 원했다.
소소한 횡령을 눈감아 주며 그들 사이에 스며든다.
물론 소장님께 사전에 허락을 맡았다.
눈감아 준 돈은 장부에 십 원 한 장 어긋나지 않도록 사비로 메꿨다.
감당이 안 되는 돈은 소장님 이름을 팔아 지급을 안 해주면 그만이었다.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현장사람들의 신임을 얻었다.
현지인들이 나를 동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뜬금없이 거래처에서 들어오는 뒷돈을 나눠준다.
큰돈은 아니고, 한국돈 만원이다.
소장님께 보고 드린 후 만원으로 현장에 믹스 커피를 한잔씩 돌렸다.
드디어 한 팀이 됐다.
더는 도면을 얻기 위해 소주를 사줄 필요도 없었고.
직원들에게 담배 값을 몰래 찔러줄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 스며들었다.
더는 이방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