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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 강 Aug 01. 2024

밀린 일기 쓰는 중 - 인도네시아

워크숍

몇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전 직원 워크숍.

현장에 필수 인원만 빼고 수 백 명이 모였다.


통 크게 보고르에 있는 작은 리조트를 통째로 빌렸다.


가는 날은 장날이라 비가 내린다.

떨어지는 비를 보고 현장에 비가 내리는지 안 내리는지 확인한다.

이제 나도 어였한 노가다 다.


비를 피해 백 명에 가까운 사람이 좁은 리조트 안에 갇혔다.

각자의 방안에 들어간다.

나는 방안에 들어가기가 싫다.


직급별로 나눴던 방을 현지인들의 격렬한 반대로 인종별로 나눴다.

방안에는 부사장, 상무, 상무, 상무, 이사, 차장 그리고 신입 대리까지 총 7명이 둘러앉았다.

나쁜 인종차별자 인도네시아인들.

숨이 턱턱 막혀온다. 숨 쉬는 법을 까먹을 것만 같다 


입은 웃고 있지만, 손과 발은 분주하게 술을 나른다.

카멜레온처럼 눈알을 돌려 360도를 주시한다.

편안하게 쉬어야 할 방이 세상에서 제일 불편해졌다.


머리가 지끈 거리고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했을 때 저녁행사가 시작됐다.

진행자는 지난 몇 년간 회사의 성장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듣지 않는다.

진행자가 경품 추첨을 시작하니 사람들은 웃기 시작한다.

지루한 행사가 너무 빨리 끝났다.




한국은 행사가 끝나면 술자리가 시작되지만, 인도네시아는 무슬림 국가다.

회사에서 술을 준비하거나 권하지 않는다.

현지인들끼리 눈치를 보며 으슥한 곳에서 모여 술자리를 만든다.


인기 많은 몇몇 한국인은 초대를 받는다.

인기 없는 4명은 방안에 남았다.

방안에 남은 이사가 이상하다.

인기만점일 줄 알았던 자신을 찾는 사람이 없다.


분노, 짜증, 합리화가 섞여 만만한 나를 갈군다.

큰일이다. 낮에 쓴 인내심이 아직 충전이 안 됐다.

이대로 있으면 사고 치고 퇴사당할 것 같다.

배 아프다는 핑계로 1층 화장실로 도망친다.


방을 나오니 살 것 같다.

너도 내가 방을 나와서 산거다.

분노, 짜증, 합리화를 섞으며 산책을 한다.


술 취한 무슬림들로 로비가 시끄럽다.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은데, 로비 곳곳이 지뢰밭이다.

가장 외진 곳으로 가 자리에 앉는다.

괜스레 핸드폰을 꺼내본다.

이대로 택시를 불러 집으로 가고 싶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하늘을 바라본다.

밤하늘엔 먹구름만 잔뜩 껴있다.

깜깜한 밤하늘이 마치 방 안에서의 내 모습 같다.

앞이 깜깜하다.

나쁜 인종차별자 인도네시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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