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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n 25. 2019

아이들에게 칭찬해 줄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칭찬은 아이들에게 성장호르몬이다.

요즘 아이들은 욕을 많이 한다. 하도 욕을 많이 하다 보니 어느 땐 욕과 일상어를 구분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몇 년 전 3학년 학급 담임을 맡게 되었는데 특별히 정서적으로 힘든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그 아이들은 이유 없이 친구를 때리는 일이 많았는데 정작 다른 아이들이 힘들어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욕을 심하게 하는 것이었다.


욕을 하지 말라고 아무리 타일러도 소용없었다. 그 아이들에게 혼이 나는 건 일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칭찬을 활용해보자고 생각했다.


국어책에 식물도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내용이 나왔다. 화분을 기르게 해야겠구나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집에서 화분을 하나씩 가져오라고 했다. 그 화분에 콩을 서너 알씩 나누어 주고 심으라고 했다.


씨앗을 심은 후 매일 햇볕도 보여주고 물도 주기적으로 주라고 했다. 무엇보다 칭찬해주면서 기르라고 했다. 칭찬해주면 말귀를 알아듣고 잘 자란다고 하면서. 그러자 얼마 후 여러 가지 결과가 나왔다. 어떤 화분은 싹이 나오지 못했다. 분명 똑같은 씨앗을 나누어주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어떤 싹은 나오자마자 죽었다.


식물도 말귀를 알아듣는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매일 말을 걸어주고 칭찬해준 화분은 잘 자랐기 때문이다. 그 뒤로 욕을 하던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반 전체 아이들이 매일 식물에 칭찬을 해주면서 거친 말들이 어색하게 되었다. 간혹 칭찬을 하는데도 잘 자라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땐 기지가 필요하다.

"아마 옆에 있는 화분의 욕을 엿들었나 봐요."

그러면 다음날 욕을 하는 아이의 화분 곁에 있던 화분들이 다른 데로 이사를 간다. 점점 욕을 하던 아이들이 화분 때문에라도 욕을 덜 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화분에다 하는 칭찬을 들으면 눈물겨웠다. 진짜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서다. 다들 애칭까지 지어주었다.

"아유, 우리 콩이 오늘도 밥 잘 먹었어요?"

"똘똘아. 너는 정말 멋져. 주말에 외로워도 좀 참아. 금방 올게."

"다롱아. 오늘도 쑥쑥 자랐네. 아유 멋지다. "

"울콩이는 밥도 잘 먹고 씩씩해. 넌 정말 최고야."


아이들의 천진한 미소와 말투가 나에게 와서 알알이 박힌다. 그리고 그 식물들보다 훨씬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대견스럽다. 식물들은 단지 햇볕을 향해 자라기만 하면 되는데. 물만 빨아들이는데. 그래도 사랑받는데. 존재 자체로 말이다.


우리 아이들은 식물보다 훨씬 애를 쓴다. 매일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아침을 박차고 일어난다. 학교에 도착해서는 딱딱한 의자에 몇 시간이고 앉아 듣기 싫은 공부를 해야 한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학원에 가서 밤까지 또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칭찬받는 일이 드물다. 학교에서는 30명씩이나 되는 학생들을 한 번씩만 칭찬해줘도 1시간이 지나가 버린다. 일부러라도 하기 힘든 이유다. 집에 가면 어떤가? 요즘 엄마들은 교사보다 더 엄격하고 스마트하다. 학원 숙제부터 학교 숙제 시험 스케줄을 다 꿰고 있다. 좋은 대학에 가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무슨 공부를 언제 해야 하는지 다 계획하고 있다. 이쯤 되면 매니저가 따로 없다.


엄마의 목표는 항상 기준치가 높다. 그러니 아이가 잘한다고 느끼는 일은 별로 없다. 100점이나 1등이 아니면 에러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간혹 열심히 공부해서 100점을 받아오면 반에서 몇 명이나 100점을 받았는지부터 묻는다. 무슨 이유로도 칭찬해줄 일이 없다.


학생들을 지도할 때 가장 효과를 보는 경우는 칭찬을 통해서다. 예를 들어 폭력적이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어쩌다가 휴지 하나를 주웠다 치자. 그때 아이들이 다 듣도록 큰소리로 칭찬을 한다. "얘들아. 지금 내가 뭘 본 거지? 영훈이가 지금 교실에 떨어진 휴지를 주워서 휴지통에 넣은 거야? 아무도 안 보는데도?"


그러면 영훈이는 평소의 거친 표정이 풀린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그 틈을 파고들어 못을 박는다. "영훈이가 알고 보니 깔끔한 성격이었어. 우리가 너무 지저분하게 관리해서 평소 신경이 날카로웠던 거야. 우리 이제 모두 청소 열심히 하자."


그러면 반 전체 아이들을 각성시키는 효과까지 겸하게 되고 영훈이는 자존감 살아난다. 그때쯤 영훈이가 한마디 한다.

"집에서는 엄마 설거지도 도와드려요. 진공청소기도 매일 하고요."

내가 보기에 진짜로 매일 청소를 도와 드리는 것 같진 않지만 그냥 믿어준다. 그러면 그 뒤로도 칭찬을 듣기 위한 다른 일들을 꾸민다.


칭찬은 한번 들으면 자꾸만 듣고 싶은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칭찬을 듣고 나면 그 칭찬이 족쇄가 되어버린다. 그 족쇄에서 벗어나면 칭찬을 듣지 못하니 계속 노력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습관이 되어 굳어진다.


이런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짓궂은 아이도 한 가지 이상의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폭력적인 아이들은 대개 힘이 세고 운동신경이 좋다. 그 아이들에겐 힘쓸 일을 시킨다. 무거운 물건을 들 때 못 드는 척하면서 좀 도와달라고 한다. 또 너무 내성적인 아이에게는 꼼꼼함을 추켜세운다. 설문지 통계를 내거나 하는 일에 도와 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은 자꾸 틀리는데 네가 좀 확인해줄래?"

이럴 땐 덜렁대고 불완전한 내 성격이 참 유용하다.


칭찬은 영양제이자 성장호르몬 같다. 아이들에게는 특히나. 요즘 아이들은 칭찬이 고프다. 조부모와 함께 살던 시절에는 별 거 아닌 일로도 칭찬을 수시로 받았다.

"아유 내 똥강아지. 잘 허네. 아유 내 새끼."

할머니는 내가 90점만 받아와도 그렇게나 기뻐하셨다.

"아니 어떻게 10문제에서 한 개밖에 안 틀리노?"


핵가족화되어 할머니들이 사라진 지금. 누가 칭찬을 대신해 줄 것인가? 나는 몹시도 부족하고 덜렁거리는 교사다. 대신 아이들에게 칭찬이라도 많이 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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