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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l 11. 2019

상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멍 때리는 아이들을 보면 뭐라고 하세요?

어릴 적 읽은 동화가 생각난다. 돌이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동생이나 언니가 들로 놀러 나가면 나무 그늘에 앉아서 공상만 한다. 주로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쓸데없는 상상이다. 예를 들어 하늘을 난다던가 고양이를 장화로 둔갑시킨다던가.


하루는 왕자가 말을 타고 가다가 그 소녀를 보게 되었다. 누워있는 소녀에게 뭐하냐고 물어보니 상상한다면서  그 내용을 말해준다.(생각해 보면 어릴 적 읽은 동화 내용엔 죄다 왕자 공주들 이야기다. 내가 부모님에게 항의했던 기억이 난다. 왜 나는 공주로 태어나지 못했는지 말이다. 그러자 아빠가 말해주셨다. 공주 왕자 제도는 이제 없어졌다고.)


왕자는 그 이야기가 재미있었나 보다. 결국 돌과 결혼하게 된다. 왕자가 결혼식날 마을 행차를 하게 되었다. 그러자 돌의 가족들이 집 앞에서 돌을 보고 부러워한다는 이야기.


이 동화책은 40여 년 전에 나온 외국의 창작동화인데 다소 생뚱맞았다. 당시 동화 내용은 주로 권선징악적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명작동화는 대부분 천편일률적이라 이런 특이한 내용의 동화가 좋았다. 이 동화에선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선 왕자의 마인드다. 왕자는 대화가 잘 되는 배우자를 원했다는 것. 기존의 명작동화는 남녀의 만남이 절대 교훈적이지 않다. 그중에서도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가장 막장이라 생각된다. 길 가다가 잠자는 여자를 보고 예쁘다고 키스를 하고(이건 명백히 성추행이다.) 무도회에서 춤추다가 외모 보고 반해서 구두의 주인공을 찾아 헤매다가 찾아서 결혼하고.


공통점은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잠자는 여자랑은 대화불가능하고 무도회는 춤을 추는 곳이라 대화는 힘들었을 듯. 대화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특히 배우자로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가 있다. 돌이라는 아이가 상상력이 풍부다는 점이다. 늘 나무 그늘에 누워 상상을 하는 아이. 이제 그 상상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검색이 손쉬워졌다. 이제 단순 지식보다는 자신의 머릿속에만 있는 독특한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 많다.


우리 아들이 어렸을 때 블록방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거기서 토마스 기차를 세트로 빌렸는데 레일을 설치한 뒤 1시간 동안 기차가 뱅뱅 도는 걸 유심히 바라보기만 했다. 가끔 자세만 바꾸어서 말이다. 나는 가지고 놀지 왜 보고만 있냐고 하니 곁에 있던 아기 엄마가 그랬다.

"이 아이는 지금 머릿속에서 엄청 재밌게 노는 거예요. 온갖 상상을 하면서요."


맞는 말이었다. 우리 아들은 1시간이 지나자 1시간 더 연장해서 놀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그 기차를 또 계속 쳐다만 보았다. 누가 보면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아이들이 사물을 조용히 바라만 본다거나 말없이 앉아있으면 우울증이 있거나 자폐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엄마들이 있다. 간혹 음식점이나 공원에서 아이가 멍하고 앉아 있으면, 엄마가 아이 등을 때리면서,

"얘가 왜 이렇게 멍 때리고 있어?" 하면서 흔들어 놓는 경우를 본다. 한국 엄마들은 아이가 나쁜 쪽으로 눈에 띌까 봐 전전긍긍하는 면이 많다.


요즘 멍 때리기의 긍정효과에 대해 말이 나오고 있어서 반갑다. 나는 '멍 때리기의 원조'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자주 멍했다. 물론 남에게 들키지 않게 말이다. 들키면 백치미, 4차원 소릴 듣곤 했으니까.


하지만 살면서 중요한 아이디어는 이 '멍 때리기'를 하다가 얻었다. 멍을 때리면 뇌가 완전히 이완되어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가 지속된다. 그렇게 깨끗해진 뇌 속에 신선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적이 많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 다들 나가 노니까 즐겁지도 않은데 고무줄놀이를 했다. 아이들마다 다 다른 취향을 존중해주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


서로의 '차이'는 창의력의 징조다. 무엇보다 한국인의 심리 깊숙이 박혀 있는 '한 줄 서기에서 비켜나면 불안해하는 심리'에서 벗어날 수만 있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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