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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n 27. 2019

공부의 탄생

몸으로 체험하는 공부의 중요성

몇 년 전 5학년 역사시간에 아이들과 빗살무늬 토기를 만들어본 적이 있다. 그릇이 완성이 된 후에는 며칠 동안 잘 말려서 운동장으로 가지고 나가게 했다. 그리고 나뭇가지 등을 가져오게 하고 미니 움막집을 짓게 했다.


그러자 평소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물론 내 가설이지만 말이다.


직접 그 시대로 돌아간 느낌을 갖고 나니, 움막집이 주변에 있는 재료였다는 것과 구조 자체가 손쉽게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빗살무늬 토기에 대한 평소 궁금증이 풀렸다. 왜 그릇의 바닥이 평평하지 않고 뾰족한 지에 대해서다. 주로 모래로 되어 있는 강가에서는 바닥이 뾰족해야 바닥에다 꽂기가 편했을 것이다.


즉 미장 실력이 없었던 그 당시로서는 바닥이 평평할 리가 없었다. 바닥이 푹푹 빠지는 모래 위에는 차라리 뾰족하게 해서 꽂아 놓지 않았을까?


이렇듯 몸으로 체험하고 생각하는 수업을 하면 아이들도 여러 가지 추리가 가능해지고 새로운 지식을 창조해낸다.


과거 우리나라 교육은 일제식, 주입식 교육이었다. 특히 베이비붐 시대에는 인구증가를 뒷받침할만한 교육여건이 부족했다. 아침반, 오후반은 흔한 풍경이었다. 그 당시엔 단순한 지식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이제 단순 지식의 효용성이 떨어진다. 금세 다른 지식으로 대체되곤 하니.


우리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이런 지식 암기 위주의 공부를 맹렬히 비난해 왔다. 하루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나는 정말 이해가 안 돼요. 학교 교과서 보면 한 권 전체에 별 내용이 없어요. 인터넷 찾으면 훨씬 많은 지식을 알 수 있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시험 내용은 그 교과서 안에 있는 것만 보잖아요. 그러니까 간단한 지식을 달달 외우면 100점 맞는데 그런 아이들은 똑똑한 거랑 거리가 멀다고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름 논리가 정연하고 말이 된다 싶었다. 사실 나도 학교에서 느끼고 있던 모순을 제대로 짚어준 것이다. 딱히 반박을 할 수 없어 버벅댔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런 교육이 필요 없는 건 아니다. 교육의 한 방편으로 주입식, 암기식도 있어야 하니 말이다.


단 초등학생 발달 단계에는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어른도 마찬가지다. 몸으로 배운 것은 더 오래 기억된다.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에 의하면 지속적인, 그러나 무의식적인 감각의 흐름이 우리 몸의 동작 부위에서 나온다고 한다.


이 감각의 흐름이란 우리가 '제6감' 혹은 '비밀의 감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자신의 근육을 살피고 위치나 긴장상태, 움직임을 끊임없이 재조정한다.'


무의식적이고 감각적인 것들이 우리의 뇌에서는 융합 창조의 길로 연결된다. 우리가 흔히 공부라고 하면 책을 들고 외우고 쓰고 하는 것을 떠올리지만 몸으로 체험하고 무의식에 저장된 것들이 더 유용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내가 퍼포먼스 위주의 수업을 하는데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교사들이 있다. 그 교사들은 아주 근엄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렇게 수업하면 아이들이 퍼포먼스 자체만 기억하고 수업 핵심은 까먹어요."


바로 그거다. 수업내용은 까먹는 거. 아이들은 대신 나중에 새로운 걸 꺼낸다.


올리버 색스는 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근육을 살피면서 그것의 위치나 긴장상태, 움직임을 재조정하다. 그러나 이 과정은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숨어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무의식적인 재조정 상태가 중요하다. 재조정 중에 창조 행위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너무 의식하는 공부는 뇌가 피곤하다.


같은 맥락에서 각 교과목을 딱 잘라서 나누는 것도 뇌에는 좋지 않다. 로버트 루트 번스타인과 미셸 루트번스타인이 쓴생각의 탄생에는 창조적 사고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다.


'창조적 사고에 대한 우리의 접근법은 통합적이고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 따라서 종합적 이해라는 직물을 짜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지식이라는 실을 먼저 풀어놓지 않을 수 없다. 전문화 추세가 가속화되면서 지식은 파편화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정작 그것들의 기원이나 의미는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거의 파악하지 못한다. 전문적 지식의 양은 늘어나는 데 비해 학문 간의 교류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어 종합적 이해력은 퇴보 일로에 있다.'


이제는 통합, 창의 시대다. 이어령 전 문체부 장관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지혜로서 디지로그(디지털 기반과 아날로그 정서가 융합되는 첨단기술)의 통합적 사상을 설파했다.


몸으로 체험하는 교육은 무의식적인 재조정기를 거쳐 새로운 것을 만들어줄 것이다.

단순히 답습하는 교육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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