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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l 04. 2019

앞으로 스토리가  더욱 중요해진다.

얼굴에 좋은 스토리를 남겨야

어릴 적 외할머니가 무릎에 앉혀놓고 해 주시던 옛날이야기가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토리 구성이 늘 비슷비슷하고 결말이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들을 때마다 재미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외할머니 연기력이 출중했거나 많은 이야기를 알고 계셨던 것 같지는 않다.


제일 기억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할아버지가 눈 똥을 할머니가 된장으로 잘못 알고 저녁으로 끓여먹었다는 이야기다. 할아버지가 “오늘 된장국이 왜 이렇게 맛있지? 어디서 났어?”

하자 할머니가 뒷마당에서 퍼왔다고 한다.


이때가 클라이맥스다. 이야기하시는 외할머니의 목소리 톤이 갑자기 높아진다. 할아버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뭐라고? 그거 내 똥인데?”하는 부분인데, ‘똥’ 자를 발음할 때는 특히 힘을 주셨다. 이 발음이 하도 재미있어서 몇 번이나 다시 들려달라고 했다.


교훈도 없고 감동도 없는, 게다가 비위생적인 내용 때문에 동화책에 실리지는 못했나 보다. 동화책에서는 한 번도 그 스토리를 본 적이 없다. 밤마다 내가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르는 통에 외할머니가 지어낸 것이 아닐까 한다.


이야기를 좋아하던 나는 나중에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내곤 했다. 동화책 내용을 조금 따오고 그 당시 방영되던 청승맞은 주말 드라마의 내용을 대충 섞기도 했다. 쉬는 시간에는 이 허접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주인공 이름이 옥분이었던 것 같다.


인간에게는 원래부터 스토리를 좋아하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미래학자인 다니엘 핑크는 《새로운 시대가 온다》라는 저서에서 미래에는 스토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했다.


하이테크 시대일수록 사람의 본성에 회귀하려는 본능이 생긴다는 것이다. 즉 따뜻한 인간애에서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의 심리가 작용한다.


스토리는 자신이 아닌 남의 이야기를 음으로써 공감하고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체험방식이다. 흥미진진해 보인다고 해서 모든 걸 직접 체험하려면 시간과 경비가 든다. 무엇보다 힘든 경험을 회피하고 싶다.


스토리로부터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다. 재미와 교훈이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무료할 때 위로와 재미를 얻을 수 있고,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미리 대비할 수가 있다.


스토리는 인간이 기억을 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논리를 이해하는데 이상적이지 않다고 한다. 스토리를 이해하는 건 우뇌의 작용이다. 좌뇌의 논리성과 달리 감성적인 부분이 많이 작용한다. 인지 과학자인 로저 생크는 “인간은 선천적으로 스토리를 이해하도록 만들어져 있다."라고 했다.


스토리는 어디서 생겨나는가? ‘우리의 스토리’는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의 경험, 사고, 감정을 몇몇 압축적인 스토리로 집약해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우리 스스로에게 말하곤 한다.


지금은 삶의 의미를 중시하는 ‘소학행’이나 ‘워라벨’의 시대다. 더 이상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는 논리에 빠지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감성을 중시하고 현재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중시한다. 물질의 풍요가 가져다준 가치관의 변화다.


풍요로운 시대에는 자유롭게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삶의 목적을 찾으려 한다. 스토리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됐다.


이러한 스토리가 쌓이고 쌓여 결과를 이룬 곳은 어디일까? 바로 얼굴이다. 얼굴에는 그 사람이 평생에 걸쳐 살아온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다.


50년이면 50년어치의 경험이, 80년이면 80년어치의 경험이 집약되어 있는 곳이 얼굴인 것이다. 그 스토리가 간혹 기억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지우고 싶을 수도 있다.


반대로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은 일도 있을 것이다. 그 모두가 얼굴에 저장되어 있다.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일수록 얼굴에서 나타나는 흔적을 속이기 힘들다.


그런데 그 흔적이라는 게 어떤 것일까? 그 사람을 미워한 사람들의 이미지인가? 아니면 팍팍한 삶의 구구절절한 자취인가? 경험 상 같은 환경이라도 그 환경을 대하는 마음에 따라 얼굴에 남는 것이 차이가 난다.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에는 물을 반만 마시고 나머지를 아껴서 얼굴을 씻은 내용이 나온다. 극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지키려 하면 생에 대해 희망을 붙잡을 수 있고 그 자취가 건강해 보이는 얼굴로 남는 것이다.


그런 그가 결국은 살아남아 많은 이들에게 심리학으로 도움을 주게 된 것이다.


즉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들을 견뎌냈는지가 중요하다. 세월의 흔적들을 저장하는 얼굴이라는 곳, 좋은 것들로 채워야겠다.


좋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인 얼굴은 비록 주름이더라도 아름다운 주름이 될 것이다. 그래서 죽기 직전에 내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갖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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