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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n 17. 2019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오줌싸개 아이가  버릇을 고친 방법

창피한 말이지만 나는 어릴 때 오줌싸개였다.


다른 형제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나만 늦게까지 밤에 이불에다 소변을 보았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 하나 있다. 늦게까지 아이가 오줌을 못 가릴 때 내려지던 어른들의 잔인한 조치다.


쌀 낟알을 까부를 때 쓰는 키를 쓰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소금을 구해오는 것이다. 그때 엄마는 뒤에서 미행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내가 흘끔흘끔 뒤를 보면 골목 안으로 숨어버리곤 하셨다.


그러면 나는 울면서 엄마가 가라고 정해주신 집 대문 초인종을 눌렀다.


그때 주인이 나와서 내가 키를 뒤집어쓰고 울고 있는 것을 보고는 혀를 쯧쯧 찬다. 그리고 소금을 한 바가지 퍼오신다.


그럼 나는 가지고 간 바가지에 받아오는 것이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 아주머니는 소금을 한 움큼 쥐어서는 내가 뒤집어쓴 키 위로 뿌리셨다. 다시는 오줌 싸지 말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내 울음소리가 최고조에 다 달았다.


우리나라 속담에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소금을 얻어오는 것이 잔인한 방법이긴 했다.


하지만 이는 온 마을 어른들의 관심의 표현이 아닐까? 그 시대 나름의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하고 교육한 것이다.


요즘은 한 가정에 아이가 하나나 둘이다 보니 자기만 아는 경향이 강하다. 부유하고 시간 여유가 많은 엄마를 둔 아이들이 유독 심한데 그런 가정에서 자란 초등학교 1, 2학년 때의 아이들은 모두 왕자, 공주들이다.


아이한테 거는 기대나 사랑이 크다 보니, 학교에서 조금만 안 좋은 소릴 들어도 흥분하는 부모들이 많다. 자기 아이만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아주 특별하게 보이고, 학교에서 그걸 못 알아주는 것 같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심지어 교사인 나도 학부모 딜레마에 빠진 적이 있다.


‘우리 아이의 천재성이 이쯤 되면 드러날 텐데 왜 아무 소리도 안 들리지? ’하는. 문제는 그게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이가 어릴 때 갖는 환상이라는 거다. 그러면 예전 다자녀 가족에선 어땠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나 자신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아니 재능 많은 언니와 미모의 동생 때문에 오히려 열등감을 느끼며 살았다.


부모님도 자식이 많다 보니 누구를 특별히 공주로 대접할 분위기가 아니었고, 알아서 결과를 내야 하는 하는 상황이었다.


그 전 시대는 어떤가? 3, 4세대가 함께 살던 시대엔 독단에 빠질 우려가 더 적었다.


버릇없는 아이가 보이면 동네 어른들이 지나가다 쯧쯧. 하면서 혼내기도 하고, 자기 자식이 소문이 안 좋아지는 게 싫어서라도 부모님이 엄격히 교육해야 했다.


그러나 요즘은 핵가족 시대고 이웃끼리도 교류가 없다. 이렇듯 고립된 가정의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또 다른 고립의 형태인, 교실 생활을 한다. 그리고 이제 힘든 아이를 오롯이 담임이 책임지게 된다.


담임에 대한 학부모들의 평가는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꼼꼼한 선생님들을 좋아하는 학부모, 자유롭게 놓아주는 걸 좋아하는 학부모, 학습에 신경 써달라는 학부모, 너무 공부만 시키지 말라는 학부모.


그런 장단에 다 맞추다 보면 자기 철학이 없어지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교사가 되기 십상이다. 소신을 가지고 아이들을 훈육하기가 힘들다.


아이들에게 자꾸만 문제가 생기는 원인 중 하나는 너무 적은 사람들 속에서 고립되어 살아가서가 아닐까?


또 하나의 익명성. 그건 인터넷 상의 악플처럼 교실에서 자라나는 나쁜 싹 인지도 모른다. 모든 걸 담임 선생님만 안다는 것 말이다.


문제아를 새로 맡게 된 교사가 그 전 담임한테 그 아이가 어땠냐고 물어보면, 나쁘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면 다른 데로 새어나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아도 자기는 잘 커버한다는 능력을 보여주려는 마음도 있다. 또 전 학부모 귀에 들어가면 곤란해지니 괜찮은 아이였다고 둘러댄다. 통지표에도 그냥 활발한 아이라고만  쓴다.


그러면 특히 저 경력 교사인 경우 번민에 빠진다. '분명 나는 너무 힘든데, 그럼 내가 문제인가?' 그런데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작년엔 더 심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밥을 제대로 먹은 적도 없다고. 그러면 어디 가서 이야기도 못하고 자기만의 문제로 끙끙 앓게 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학급 담임을 하면서 문제아를 지도하는 건 힘들다. 결국 담임교사의 능력에 달렸다는 인식이 굳어진다.


그리고 그걸 아이들이 눈치챈다. 저 경력 교사나 순한 교사들의 경우 만만하게 보고 아이들이 더욱 힘들게 한다.


이런 악순환에다 사회 전반적으로 아이들이 교사를 쉽게 보는 경향이 있다. 교사가 아이들을 혼내려고 하면 핸드폰을 들이대면서 녹음을 하거나 영상을 찍는 경우도 있다.


교사의 위상이 이처럼 떨어진 적은 없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온 마을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이 너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공동 육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 있다. 학교에서는 동학년 공동으로 수업을 하기도 한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되도록 많은 사람들 속에 노출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사회성을 기르고 공공예절을 지키도록 길러야 한다.


아이가 잘못을 한 경우 부모 말고도 주위 어른들이 혼을 낸다면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어릴 때 요즘 싸개라고 놀림받던 내가 그 뒤로 그 버릇을 고친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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