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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y 21. 2019

현재는 늘 가장 좋다!

과거는 소중하고 미래는 기대되고

요즘 아이들이 의의로 좋아하는 만화가 있다. ‘검정고무신’이나 ‘엄마는 내 친구’라는 만화인데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다. 그 만화를 보면서 아이들은 신기해했다. 그 시절에는 수세식 화장실이 없어서 밖에 있는 화장실에 나가서 용변을 보았다는 사실, 또 화장실 내용물이 다 차면 큰 바가지로 떠서 수거해 가는 직업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재미있게 본다.  

그러나 나는 이 대목에서 괴로운 추억들이 마구 떠오른다. 평생 변비를 관리해야 하는 불량한 대장이 이 무렵 만들어졌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시절 화장실은 아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냄새나고 어둡고 바로 밑에 더러운 것이 있어서다. 그 당시 공포이야기는 주로 화장실이 무대였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발을 헛디딜까 봐 다리가 달달 떨리는 것이었다.  

가끔 주변에서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서너 살짜리 아이가 화장실에 빠졌는데 엄마가 모르고 있다가 죽었다는 이야기, 공원 화장실에 빠졌다가 어느 아저씨가 겨우 건져내서 살려주었는데 정작 엄마가 와서는 냄새난다고 아이를 안아주지도 않고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겨우 붙잡고 데려갔다는 이야기 등. 그런 이야기는 나도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어렴풋한 이미지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굳이 구체적인 냄새나 생김새를 떠올리지 않는다. 단순히 뭉뚱그려서 생각하는 것이 추억의 특징이다. 무엇보다 직접 그런 일을 겪지 않은 세대가 듣기에는 무엇이든 재미가 있다. 거기에 더해 글 솜씨가 좋아 추억들을 아련하게 소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무의식 중에 남들을 따라 한다. “맞아, 예전엔 참 좋았지.”  

조용히 과거를 떠 올려보면 어떤 부분은 그렇고 어떤 부분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우리에겐 과거를 다소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심한 것이 옛사랑에 대한 추억이 아닐까? 현재의 배우자 말고 첫사랑이나 그 전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아름답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눈이 오는 날이나 특정 장소에 대한 추억은 대부분 전 애인에 관해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그때는 젊었고 아이가 없어서 둘만 오붓했기에 가능한 일들이 많았다. 시간이 많았고 건강했고 등등. 하지만 분명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서 헤어진 사람들이다. 여유 있는 시간에 곰곰이 떠올려보면 기억이 난다. 내 성격에 대해 공격을 했다거나 쩨쩨하게 굴었거나. 그런 일들을 겪고 난 뒤에 분명히 멀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이 들었음에도 눈물을 머금고 이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결혼이라는 복잡하고 중대한 일을 앞에 두고, 바로 지금의 배우자를 선택한 것이다. 그 자체로도 엄청난 존재인 셈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떠올리는 것만큼 행복에 다가가기 쉬운 방법도 없다.  

이런 마인드는 지금 이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무척 편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이 편리함과 안전함을 무너뜨리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단순히 과거에 대한 회고이면 좋은데, 자꾸 우리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듯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다.  

전 국민의 사생활을 다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빅 데이터 기술이나 전 국민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어 불법 촬영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 등이다. 물론 그런 기계들은 편리함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현재 우리 사회 대다수 사람들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대해 대체로 좋다고 느낀다. 개인의 사소한 행복을 중시하는 경향이나 민주적인 합의 절차, 남 녀 평등 문화 등. 지나친 낙관주의 일지 모르나 적어도 반백년 살아보니 삶의 가닥이 보이고 흐름을 눈치챈 기분이다.  

날이 갈수록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그 무엇도 아닌, 우리의 더욱더 소소한 행복을 챙기기 위한 장치들일뿐이다. 유현준 건축가는 자신의 저서《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건축물이 기술적인 면에 있어서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쪽으로 발달할 것이라고 한다. 기술은 가상공간을 만들어냈지만 결국 이 기술도 인간의 동물적인 본능에 충실한 욕구를 만족시키는 쪽으로 발달하기 때문이란다.  

앞으로 어떤 기술이 또 우리를 즐겁게 할지 기대하게 된다. 그런 마음으로 살다 보면 새로운 것이 더 좋아진다. 물론 낡은 것, 추억이 있는 것은 그 자체로도 소중하다. 하지만 그걸 아쉬워하거나 마냥 그리워할 필요가 있을까? 대부분의 불행은 과거를 그리워하고 미래는 동경하며, 현재를 불평하는 데서 온다.  

이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막연한 미화를 거두고, 미래를 불안해하거나 동경하는 습관을 버리는 것이 좋다. 가장 좋은 건 그저 현재를 음미하는 것이다. 가볍게 소비되는 매스미디어의 논리에 휘말리지만 않는다면 가능하다. 자신이 직접 몸으로 부딪혀서 얻은 경험이나 발품을 팔아 건져 올리는 지식, 또 독서나 전문 블로그, 카페 활동 등을 통해 정보력을 키우고 자신만의 판단을 쌓아나가야 한다. 이는 현재를 정확히 보는 눈을 키우고 행복을 지키는 좋은 습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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