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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y 29. 2019

이제 내가 엄마가 되어 젤리를 산다

사랑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얼마 전 대학 친구들과 만났다. 다들 오랜만에 보는 거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저녁식사시간이 되어갈 무렵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거기 어디야?”

“응. 백화점에서 친구들과 만나 쇼핑하고 있어.”

“잘됐다. 거기 젤리 파는 가게 있거든. 거기 가서 젤리 좀 많이 사다 줘.”


나는 저녁 못 차려 준 미안한 마음에 그러마고 이야기 한 다음, 백화점 한쪽 편 젤리 가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봉지에 하나 가득 담아서 무게를 재고 돈을 냈다. 그때 친구들이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그걸 네가 먹게? 그렇게 단 걸?”

‘이걸 사는 게 뭐 어때서?’ 하면서 생각해보니, 친구들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결혼이 늦어 아이들이 아직 중고등학생이지만, 친구 아이들은 이런 걸 살 이유가 없었던것. 아이들이 군대에 있거나 대학 다니고, 그나마 여자 친구까지 생겨서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들다고. 난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 걸 상상하니 이렇게 즐거운데. 그리고 좀 더 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나 때문에 조금 일찍 헤어지게 되었다. 매번 미안한 마음에 말했다.

“야. 너희들이 부럽다. 집에 가면 혼자 있어서 자기 시간도 있고. 난 늘 전쟁터야."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그런 말 마라. 나는 지금 그때가 그립다. 울 아들 어릴 땐 엄마를 그렇게 좋아하더니, 지금은 여자 친구만 좋아하고 말이야. 한 번은 아들 여자 친구가 못 생겼다고 했더니, 하루 종일 말도 안 하더라. 삐져서. 아휴~~ 어릴 땐 엄마랑 평생 산다고 하더니. 나쁜 놈. 아마 지금 시간도 금방 갈 거야. 그럼 나중에 이 시간이 무척 그립단다.”


하긴 그렇다. 우리 아이들에게 마지막 남은 '어린애 다움'을 이대로 흘려보내는 게 아깝다. 집에 들어가면서 젤리를 사는 일이 몇 번 안 남았는지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울컥해진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우리 애들에게 내 손이 필요 없게 된다고?’, ‘자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하는 젤리도 안 먹고? 그럼 난 예쁜 젤리 가게를 지나다가 발길을 멈추는 일도 없을 거고.’


매일 엄마 곁에 자겠다고 우기던 아들이 며칠전부터 혼자 잔다. 또 우리 딸이 며칠 전 나물우걱우걱 먹었다.


엘리자베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가 공동으로 쓴 <<인생수업>>이란 책에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제는 모두 한 가지다. '살아 있는 순간순간 감사하라는 것.'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일이 일어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스스로 말하면서 미래의 나라에서 살고 여행합니다. 새 일을 시작하면, 나에게 꼭 맞는 짝을 찾게 되면, 아이가 다 크고 나면. 하지만 대개는 자신이 기다리던 일이 일어난 후에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크게 실망합니다. 그래서 또 다른 새로운 미래들을 만들어 냅니다. 승진을 하고 나면, 첫아이를 갖고 나면,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얻는 기쁨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습니다. 미래보다는 지금의 행복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행복할 때는 지금 이 시간입니다. 미래에 행복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의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땐 빨리 크기만을 바랬다. 아이들에게 하루 종일 매달려 있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식사도 맘 편히 하지 못했다. 지금 와서는 그것들로부터 해방인데, 편하게 자고, 애들 반찬을 따로 안 만들어도 된다.


그런데 슬프다. 이 모든 일상은 얼마 후면 시간 더미 속으로 사라진다. 마치 어릴 적 과자를 사 오시는 아빠를 기다리던, 나의 어릴 적 순간처럼 말이다. 나는 더 이상 아빠의 과자봉지를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자기 자식들을 위해 젤리 봉지를 사들고 온다.


이런 애틋한 생각과 함께 집에 돌아왔는데, 역시 우리 아이들이다. 내 손에 든 젤리 봉지를 보고는 너무나 좋아한다. 모양별로 한 개씩 먹어보고는 뭐 뭐가 맛있다는 둥 귀엽게 조잘댄다. ‘그래. 몇 년 만 있으면 이런 광경도 사라지겠지. 힘들어도 이 시간을 감사하자.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니까.’


하면서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내 눈에 들어오고야 말았다. 옷가지, 먹을 것들이 영역을 넘나들며 친선 교류하는 장면이. 사춘기 아이들 머릿속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한 집의 모습이. 그러나 난 마치 독립운동하는 애국투사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속사포 같은 감사의 말들을 내뱉는다.

“그래. 우리 아빠도 그랬어. 내가 과자봉지에만 관심이 있는 줄 알면서도 나를 좋아하셨지. 내가 필요할 때만 아빠한테 잘해드린 것도 아셨어. 그래도 그 눈빛은 항상 똑같았지. 우리 아이들의 눈빛은 이제 변할 거야. 더 이상 젤리도, 엄마 손길도 필요 없고, 무엇보다 얼마 후면 아이들이 내 곁을 모두 떠날 테니.”


그 후로 감사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동안 나를 무던히도 괴롭히던 ‘사춘기라는 괴물’이 깜찍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이들이 가장 예뻤던 시절의 말과 행동에서 성장을 멈춘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얼마 전 집 앞에서 본 광경이다. 중년의 부인과 키가 180센티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청년이 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그 청년이랑 거리를 살짝 두고 걷고 있었는데, 청년의 걸음걸이가 무척 어색했다. 자세히 보니 정신 지체 장애우 같았다. 정신연령이 5살쯤 되어 보이는 그 청년은 순수하고 행복한 웃음을 지으면서 걷는데, 엄마의 얼굴에는 복합적인 표정이 스친다.


천진한 아들이 사랑스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때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우리는 감사한 거야. 우리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니 제대로 반항해주잖아?”


그렇다. 내가 “이쁜~ 짓~~”하고 말하면, 오른쪽 검지를 볼에 갖다 대던 우리 딸아이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감사하다. 우리 아이들이 나이에 맞게 제대로 커주고 있으니. 아이들이 아직은 내 곁에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어른이 되어야 할 때 제대로 되려고, 삐뚤삐뚤해지는 게 감사하다. 그러니 나에게 상처 주고 실망시켜도, ‘허허’ 웃으면서 기다려야겠다. 문득 내가 젤리를 살 일이 몇 번 남았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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