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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l 08. 2019

엄마의 사랑으로 만드는 근육

전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만들어지는 감정 근육

사춘기 아이 둔 엄마들이 앉아서 각자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엄마가 포문을 열었다.

"우리 애가 글쎄, 내가 혼을 좀 냈더니 가출을 했지 뭐예요. 한 일주일 있다가 들어왔어요."


그러자 한 엄마가 하는 말,

"그건 너무 평범하다. 요즘은 엄마가 가출하는 게 유행인 거 몰라요? 내가 그랬다니까요. 한 3일 놀러 갔다가 오니 애가 조금 달라지더라고요."

점점 울분을 겸한 배틀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창 열기가 고조되어 갈 무렵이었다. 이 배틀의 최강자가 나타났다.


처음엔 위로로 시작되었다.

"뭐든 남들 겪을 때 겪는 게 나아. 사춘기 시절에 안 겪으면 편할 것 같지? 그럼 나중에 더 크게 해. 우리 아들은 지금 하잖아. 장가가서 애들도 있는 애가 요즘 암벽등반에 빠졌거든. 자기는 너무 얌전하게만 살아와서 후회가 된다나? 앞으로 모험도 좀 하고 살 거래. 칠순 노모가 마흔 살 넘은 아들이 매일 무사히 돌아오기만 기다리니..."


최근 배드민턴을 배웠다. 같이 치는 사람들은 다들 배운 지 오래되어서 선수급이었다. 나도 그들처럼 하고 싶었지만 서브부터 헛 손만 나갔다. 결국 레슨을 받게 되었다. 처음부터 공치는 법을 가르쳐 줄줄 알았던 나는 실망했다. 지겹도록 스텦만 배웠기 때문이다. 그만두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얼마 지나자 손동작 등을 배워나갔다. 신기하게도 스텝 동작을 의식하지 않을 때쯤 팔의 스윙이 나갔다. 드디어 알맞은 폼으로 처음 서브를 넣게 되자, 마치 내가 배드민턴을 정복한 듯 느껴졌다.


가만 보니 단계를 철저히 익히는 이유가 있었다. 전 단계 기술 자체를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익혀야 다음 단계로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감정 근육을 키우는 데에도 이처럼 단계를 밟아야 하나보다. 몇 년 전 담임을 맡은 여자아이가 기억난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엄마랑 돌 때 헤어졌다.


그 후 제대로 돌봄과 사랑을 받지 못했나 보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모두 거칠었다. 그 거침은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런데 내 눈에는 보였다. 어린아이가 간절히 애정을 갈구하는 게.


그래서 그 아이의 돌 때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이 아이가 그때 받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니 돌 무렵 이후부터 아이들 어휘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이 아이가 세상이라는 햇빛을 향해 말의 싹을 틔울 무렵 어떤 자극을 받았을까? 아마 포근한 자극은 받지 못했을 듯.


그래서 매일 점심 휴식 시간을 반납하기로 했다. 이 아이의 돌 무렵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보자고. 마치 말을 새로 배우는 아기처럼. 그 말의 씨앗은 반드시 사랑을 거름으로 해서 자라야 한다.


우선 교사가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으로 그 아이만을 위한 동화책 읽기를 해 주었다. 첫날 읽고 싶은 동화책을 골라오라고 했다. 그러자 글자가 없는 아기용 책을 가져오는 것이 아닌가?(다행히 학급문고에 유아책이 있었다. 보통 학기 초에 학급문고를 만들기 위해 반 아이들에게 책을 가져오라고 하면 집에서 안 읽는 유아책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그 책에서아기가 밤에 잠을 안 자니 엄마가 이것저것 하면서 아기를 달래고 있었다. 울컥해서 물어보았다.


"네가 어릴 때 누가 읽어준 거구나." 하니,

"아니요. 지금까지 아무도 저에게 책을 읽어준 적이 없어요."

"........"


그렇다면 이 아이는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른이 책 읽어주는 소릴 듣는 것인가?


내가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 매일 머리맡에서 숱하게 책을 읽어주던 장면이 떠 올랐다. 그때 우리 아이들은 동화책에 나온 예쁜 말투를 흉내 내곤 했다. 그러다가 스르르 잠이 들곤 하던 아이들. 나는 아이들 이마에 키스를 하고 이불을 여며주고 나오곤 했다.


아이들은 자면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엄마가 읽어주던 책 내용을 연결해서 꿈을 꾸곤 하지 않았을까? 이 아이 추억 속에는 이런 장면이 아예 없는 것이다.


그 작고 어린아이가 지금이라도 그런 장면을 스스로 만들어 주섬주섬 담으려는 노력이 보였다. 점심시간은 아이들이 가장 신나게 노는 시간이다. 그 시간까지 기꺼이 내서 말이다.


고맙게도 그 아이는 내가 책 읽어주는 소릴 무척 좋아했다. 책을 읽어줄 때마다 평소 산만하던 모습은 온 데 간데 없어졌다. 두 눈을 아기처럼 동그랗게 뜨고 눈동자를 빛냈다.


책을 읽어가면서 달라지는 게 있었다. 책을 읽던 초반엔 애기들 동화책을 가져왔다. 그러다가 나중에 좀 더 높은 수준의 책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한 달쯤 되었을 땐, 딱 제 나이에 맞는 동화책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다음날이었다.


내가 "오늘 뭐 가지고 올래?" 하니,

"이제 안 읽어주셔도 돼요. 제가 뭐 아기인가요? 책을 읽어주게? 제가 읽을 수 있거든요."

라고 말하며 의기양양한 제스처를 취하고는 친구들이 있는 운동장으로 달려 나가 버렸다.


그 아이는 마치 다른 아이들이 7, 8년 걸려 해낸 단계를 한 달 안에 해치운 듯 보였다. 폴짝거리는 본새가 신나보이기도 하고 참 대견했다.  


그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과정에서 다른 아이들이 신기해한 것이 있다. 그 아이가 더 이상 거친 말을 쓰지 않고 아이들 노는 걸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이들은 성장단계에서 받지 못한 부분이 어디서든 터져 나온다. 특히 사랑을 받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 아이는 엄마가 책을 읽어 준 적이 없다. 하지만 드라마나 책에서나 그런 장면을 보았을 것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결핍이 꿈틀대고 있었던 게다. 그 결핍이 채워지지 않으니 늘 심술이 나 있고 거친 말로 표현된 듯.


감정 근육이 없는 상태에서 학교 생활에 내 던져진 그 아이. 단체생활을 하면서 그 감정들의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깃적 속살이. 그 속살 바람만 스쳐도 따가웠다. 그 속살에 피부를 입히고 근육을 다져 넣는 일.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아이들은 오직 사랑으로만 감정 근육을 키울 수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 늘 느끼는 거지만, 어른들의 아주 작은 관심과 몸짓만으로도 아이들은 피어난다.


아이들은 사랑으로 피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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