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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Sep 16. 2019

악몽 베스트 탑 10, 시험 보는 꿈

현재 대한민국 시험제도는 마땅히 검토되어야

시험지를 나눠준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시험지를 뚫어져라 본다. 모르는 문제 투성이라 끙끙거리긴 했지만 시간 안에 풀긴 다 풀었다. 다 풀고 이름 쓴 것을 확인하자 시험 끝나는 종이 울린다. 휴우 한숨을 내 쉬고 시험지를 제출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뒷장을 하나도 안 풀었다. 뒷장에도 문제가 한가득 있었던 것.


이번 시험은 또 망쳤구나. 통곡을 하면서 선생님께 어필해 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경쟁자인 친구가 고소하다는 듯 팔짱을 끼고 쳐다본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그러다가 엉엉 소리 내어 운다. 옆에서 친구가 위로하면서 어깨를 토닥이다... 가 막 흔들어 댄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눈을 뜨고 보니 꿈...이었다. 내가 자다가 우니 남편이 깨어나 내 어깨를 흔들며 깨운 것이다. 다행이다. 가끔 몸이 안 좋을 때 악몽을 꾸는데, 대개 싫어하는 쥐가 등장하거나 시험 보는 꿈을 꾼다. 시험이 얼마나 스트레스였으면 대표적 악몽으로 출연하는지.. 남자들에겐 시험 보는 꿈이 군대 다시 가는 꿈과 함께 악몽 베스트 탑 10 안에 들 것이다.


시험이 주는 스트레스는 요즘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간단한 시험이라고 해도 아이들은 진저리를 친다. 시험에 대해 트라우마가 많아서다. 보통 시험하면 오지 선다나 단답형 또는 논술형 시험을 치른다. 그 시험에는 정답과 오답이 있으므로 아이들은 작지만 성공과 좌절을 경험하게 되는 것.


이는 분명 낙오자를 만들어내는 무언의 심리적 기제가 깔려있다. 답이 틀렸다는 말이 좌절감과 연결되는 것이다. 물론 어른이 되어서 치러야 하는 선발 시험에는 이런 정오 개념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일찍부터 정오 개념에 기반한 각종 시험을 치르는 건 너무 가혹하다.


대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기술하는 식의 에세이 위주의 시험을 생활밀착적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우리나라의 과거 시험은 알고 보면 논술시험 내지는 에세이 시험이었다. 한 주제를 놓고 그동안 공부해 온 자신의 총지성을 발휘하는 것. 이 과거 시험은 그 당시 다른 나라에도 전파되어 그 우수성을 인정받곤 했다.


마테오 리치라는 이탈리아 사람이 자신의 책에 '과거시험은 전적으로 글쓰기 위주이고 전 국민들이 그 시험에 나선다.'라고 썼다. 그 책이 유럽으로 퍼져나가면서 유명해졌다. 그 당시 그런 대규모 국가고시는 유럽에서 생소한 개념이었다. 게다가 전 국민이 공정하게 경쟁하여 관리를 뽑는 것이 말이다. 물론 평민들은 농사짓느라 바빠서 시험공부할 시간이 없었지만 말이다.


'과거시험이 전 세계 역사를 바꿨다고?'라는 책을 보면 유럽 사람들 눈에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시험제도는 획기적인 개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테오 리치가 죽고 나서야 우리나라 과거시험이랑 비슷한 국가고시가 전 유럽에 생겨났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관리를 뽑은 것으로, 특히 프랑스는 과거시험제도를 연구하여 빨리 받아들였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논술형 문제들이 출제된다.


최근 딸아이의 대학 수시 접수가 시작되면서 그 복잡함에 한숨이 나온다. 원서 접수비만 해도 수십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다 견디어 내고 있는 요즘 아이들이 대견하고 안쓰럽다. 우리 땐 간단했던 일들이다. 나는 특히 386세대로서 특혜를 입은 세대다. 중학생 때부터 과외가 금지되어 다들 학교 공부만 했고, 사지선다 객관식 시험인 학력고사 단 한 번으로 모든 게 결정 났다. 그 시험도 문제가 있지만 적어도 공평성에 있어선 최고였던 셈이다.


요즘 입시제도는 공평성과 단순성, 변별력 어느 것 하나도 잡지 못한 듯하다. 지금까지 겪어왔던 입시제도의 단점만 모아 놓은 듯.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대학 입시제도 축에 따라 크게 요동친다. 부디 공평하고 변별력 있고 창의적인 시험제도가 개발되면 좋겠다. 우리나라 과거 시험이 그래도 인문학적인 소양을 기르는 데는 최고였다.


철학, 인문학과 글쓰기를 중시한 과거시험제도와 사교육을 배제한 단순하고 객관적이었던 386세대의 학력고사, 또 최근에 시행된 많은 착오를 통해 정리된 결과를 토대로, 우리나라만의 합리적이고 공평한 시험제도가 시행되는 그날을 꿈꾸어 본다. 물론 시험이나 대학 입학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회가 되면 더욱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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