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윤숙 Aug 12. 2019

너무 일찍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던 아이

난독증을 사라지게 한 건 위로하고 공감하는 어깨였다.

 몇 년 전 가르친 여학생 중 걸그룹 연습생이 있었다. 그 아이는 급식시간에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튀김이나 달콤한 디저트가 나오면 하나 더 달라고 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 아이는 오히려 안 받는 것이었다.


키도 작고 마른 체격이라 걱정되었다. 왜 그렇게 조금만 먹냐고 하니 기획사에서 매일 체중을 재서 그렇단다. 그때 연습생인 걸 알게 되었다. 듣고 보니 딱했다. 매일 체중을 재서는 자기 체중이 30킬로그램이 넘으면 혼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간식 같은 건 아예 안 먹고 밥도 조금만 받았다. 한창 클 나이에 너무한다 싶었다.


그 아이는 운동회 날 빛을 발했다. 우리 반 응원단장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 그 당시 유행하는 아이돌 노래만 나오면 기가 막힌 커버댄스를 보여주었다. 다른 엄마들이 다 쳐다보면서 감탄을 했다. 현장체험학습에서 장기자랑을 하고 상을 타기도 했다. 그 아인 우리와는 만나는 사람들의 급이 달랐다. 그 당시 대스타들과 사진도 같이 찍고 대도 했다. 유명 연예인 본 이야기를 하면 내가 더 빠져서 들었다.


누가 봐도 깜찍한 외모에 춤, 노래를 다 잘하는 데다가 얼핏 볼 땐 성격이 밝아 보였다. 하지만 아이들과 있을 땐 달랐다. 일찍부터 어른들 세계를 접해서 그런지 아이들과 노는 문화에는 서툴렀던 것이다. 그때 나이가 한창 또래 문화가 생기는 시기였는데 어디에도 잘 끼지 못하고 아이들에게서 소외되곤 했다. 기획사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법은 안 가르쳐준 모양이다.


사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지독한 학습장애가 있었는데 단순히 공부를 못 하는 것과는 달랐다. 일단 시험 점수가 대부분 빵점이었다. 그 정도 점수는 한글을 모르는 경우에나 가능하다. 한글을 알긴 알았다. 주범은 '난독증'이었다.


오래전 드라마에서 조인성이 난독증을 가진 연기자 역할로 출연한 적이 있다. 이는 한글을 알긴 아는데 제대로 읽진 못하는 증세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척이나 안타깝게 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었다.


이 아이가 딱 그랬다. 글씨는 어느 정도 쓰긴 했다. 물론 자기 이름도 헷갈리게 쓰곤 했다. 그 아이에게 난독증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으나 난색을 표했다. 자기 집이 어려워서 말도 꺼내힘들다는 것. 나중에 부모랑 통화를 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그 아인 밑으로 동생이 셋이나 되었다. 엄마는 전업주부고 아빠는 일용직 노동자인데 허리를 다쳐서 일 년째 집에서 쉬고 계셨다. 이런 형편 때문에 현장학습이나 학교 행사 때 항상 돈을 늦게 내서 마지막에 겨우 참여하곤 했다.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는 난독증 치료는 형편상 힘들어 보였다. 그 아이가 친구들과 못 어울리는 이유에난독증도 한몫했는데 말이다. 하루는 대화를 해 보았다.  


그러자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이것저것 하던 도중 갑자기 눈물을 쏟아냈다. 듣고 보니 겨우 10여 년 산 아이가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았다. 자기는 아주 아기 때부터 광고를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섯 살 때는 제법 이름이 난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자기 기억에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즈음엔 광고나 캠페인,  아이돌 연습생으로서 여기저기 행사에 많이 다니고 있었다. 문제는 자기가 연예인이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는 평범하게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단다. 욕심이 있긴 하다고 했다. 자기도 소녀시대처럼 멋진 아이돌 그룹에 소속되고 싶기도 하다고. 하지만 그쪽 경쟁이 워낙 심하다는 걸 안 이상 그 게 얼마나 힘든지 다고.


결론이 다 보이니 의욕이 안 난다고 한다. 그 아이가 겪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집안에서 실질적인 소녀가장이었기 때문이다. 자긴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공부도 하고 싶은데 학교를 자꾸 빠지게 되니,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받았다.


게다가 엄마자꾸만 동생을 낳다. 자기는 집에 가면 공부고 뭐고 동생을 돌봐야 한다고. 지난번엔 동생이 자기에게 누명을 씌워서 엄마한테 맞았다면서 펑펑 울었다.


 연습생으로서 옷도 잘 입어야 한단다. 하지만 돈을 아무리 벌어와도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옷을 안 사준다고. 그래서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학교에 왔다.


일할 의욕이 안 날만 했다. 하루는 광고 한 번 찍고 천만 원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금액은 어른도 하루아침에 쉽게 벌 수가 없는 돈이다. 그런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가족 중 누군가는 힘들게 돈 벌기 싫어질 듯하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방과 후에 남아 이런저런 살아온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를 남에게 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내가 한 건 그저 진심으로 들으면서 고갤 끄덕이고 맞장구치고 하는 것이었다. 엄마 흉을 보면 같이 보고. "어쩜 너무하셨구나." 내가 그렇게 말하엄마 변명을 해주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한 듯했다. 그제야 내가 난독증 증세에 대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기도 답답해서 고치고 싶단다.


돈을 들여하는 전문적인 치료는 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무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스케줄이 없는 시간을 알아내어 방과 후에 남게 했다. 그리고 국어책에 있는 짧은 동시를 하나 정해서 매일 또박또박 읽히기 시작했다.


 내가 한 번 읽고 따라 읽게 하는 식으로. 처음 그 아이가 책을 읽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단어의 앞뒤 글자를 바꾸어 읽거나 글을 읽다가 아랫줄 단어를 얽혀 읽거나 하는 것이 아닌가? 글자 하나하나는 대충 읽을 줄 아는데 순서를 자꾸 뒤섞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갖게 된 스트레스가 읽는 과정에 간섭을 한 게 분명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시험 때가 가까워갔다. 평소 학습 이해력은 어느 정도 되는 편이었기에 글자만 제대로 읽어서 문제를 이해하면 될 것 같았다. 기쁘게도 글자를 헷갈리지 않고 어느 정도 읽게 되자 시험 점수도 많이 올랐다. 이 과정에서 가장 기뻐한 것은 당연히 그 학생이었다. 앞으로 기획사에서 주는 교재도 잘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차츰 글자를 제대로 읽게 되자 학습 태도도 좋아졌다. 이 아이와 같이 어울릴 만한 친구들을 불러 사이좋게 지내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그러자 친구관계가 많이 나아져갔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 많이 고마워했다. 학년이 올라갈 땐 나랑 헤어지기 싫다고 아이들 보는 앞에서 나에게 안겨 훌쩍이기도 했다.


그다음 해에 그 아이가 공연하는 무대에 초대받아 가족과 같이 가기도 했다. 그 뒤로도 종종 연락을 하 지냈다. 아빠 몸이 많이 나아져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전과 같은 경제적인 부담감은 없어졌다고.


그 뒤로 몇 년 있다가 만나게 되었는데 발목을 크게 다쳐서 연습생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슬픈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더 좋아하는 듯했다.


너무 어린 시절에 아이돌 연습생으로 들어가서 가족들의 생계를 짊어진 아이. 그 아인 기저귀 찼을 때부터 돈을 번 셈이다. (기저귀 광고모델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잠시 내려오고 싶었나 보다.


아이 땐 실컷 뛰어놀아야 한다. 물론 아이가 뭔가 아는 시점부터 자기가 원하면 할 수 없다. 하지만 본인에겐 끼가 없는데 부모가 데리고 다닌 경우에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경우 그만두게 된다.


그 아이가 나중에 다시 연예인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사춘기는 지나서 자기 정체성이 어느 정도 확립된 이후에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방탄소년단이 성공한 요인 중 하나로 청소년기를 지나서 연습생이 된 것도 작용한다고 본다. 무슨 일이든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이 충분히 고민하고 난 후 하는 것이 후회 없을 것이다. 그래야 가족들 안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대중들에게 나주어 줄 수 있 않을까? 본인이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 소진만 하는 일은 쉽게 지치고 말 것이다.


그 아이 발목이 나아서 다시 연예인 생활을 시작한다면 그 이유는 자신이 진짜로 원해서였으면 좋겠다. 그냥 평범하게 살긴 아까운 춤 실력과 노래 실력을 지녔으니 말이다.


난독증이 좋아지게 된 계기는 동시 읽기 전, 자신의 슬픔을 털어놓은 것이었다. 이처럼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공감을 얻게 되면 영혼이 치유되는 듯하다. 이 아이의 슬픔은 '부담감'이었다. 그것도 일반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느끼는 부담감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그 부담감은 어린 영혼을 지치게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 대부분의 어른들은 '진짜 부담감'을 매일 안고 살아간다. 그 부담감을 살짝 내려놓고 싶은 날들이 있다. 아니 비록 그렇게는 못 하더라도 누가 어깨라도 슬쩍 내밀어 주면 좋을 듯하다. 잠깐만이라도 기대어 쉬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악몽 베스트 탑 10, 시험 보는 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