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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l 15. 2019

공주병의 다른 이름,  건설적인 허영심

거의 궁중 태교를 해본 엄마의 체험 수기

샤워하고 나온 딸이 큰 타월을 갖다 달라고 큰 소리로 나를 부른다. 이 얼마만의 시녀노릇인가? 한동안 나를 안 찾더니.


지난 20년공주 딸 시중을 들어왔다.


우리 딸은 왕족의 품위를 지녔다. 아직도 샤워를 하면 이불만큼 큰 타올로 몸을 감싸고 나와야 한다. 중학생 때까진 내가 수건을 펼쳐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면 도도히 거실로 나온 우리 딸을 뒤에서 큰 수건으로 감싸서 방으로 모시고 들어와야 했다. 그 과정 면제해준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 딸은 밥을 먹을 때도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천천히 숟가락질을 하고 천천히 씹는다. 아이유가 효리네 민박집에서 밥 먹는 모습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우리 딸은 더 천천히 오물오물 씹어 먹는다.


우리 딸이 이렇게 우아해진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바로 나 때문이다.

나를 닮았냐고?

그건 아니다.


나는 전형적인 시녀처럼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샤워하면 욕실에서 꼼꼼히 챙겨 입고 나온다.


우리 딸을 임신했을 당시 노산이기도 했고, 이왕이면 뛰어난 아이 낳고 싶었다. 이에 열정적인 태교를 하게 되었다. 회사까지 쉬고서.


태교에 신경을 쓴 이유는 또 있었다. 30여 년 살면서 나에게서 부족한 것이 느껴질 때마다 한탄을 했다.


내가 만약 머리를 좀 좋게 타고났더라면,

건강하게 태어났더라면,

별거 아닌 일로 마음이 요동칠 때마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으로 태어났더라면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리 놀면서 학교를 다녔다고 해도 대학 전공이 교육학이었다. 사람에게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또 뭐하나에 꽂히면 죽도록 달려드는 집착에 가까운 내 성격은 태교에 올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엔 열병처럼 조기교육 열풍이 불었다. 그 조기교육은 더 나아가 뱃속 태아교육에까지 이르렀다.


뱃속에서부터 아기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면 천재를 낳는다는 둥 그럴싸한 사례까지 방송에 나오곤 했다. 나도 성공신화를 쓰리라 하면서 서점에 있는 태교자가 들어간 책을 싹쓸이해서 사다 읽었다.


몸으로 하는 태교도 했다. 

안 하던 뜨개질을 하고, 하품이 나오는 걸 참고 오페라, 뮤지컬 등을 보러 다녔다.

서양 회화반에 등록해서 유화 그리기, 백과사전 공부하기, 매일 뱃속 아기에게 동화책 읽어주기, 들으면 천재가 된다는 모차르트 음악 듣기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 많은 태교를 했다.


특별히 심혈을 기울인 것이 있는데 바로 태교 일기 쓰기다. 평소 쓰지도 않던 일기를 순전히 아기를 위해서 썼다.


그렇게 해서 낳은 아기가 천재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태교를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나는 조선시대에 왕비들이나 했던 태교를 하고 만 것이다. 즉 좋은 것만 보고 우아한 음악이나 듣고 집안일은 안 하고 뜨개질이나 하고 그림이나 그리고.


그 결과 우리 딸은 궁중에서 사시는 분의 성격만 쏙 빼닮았다. 안타깝게도 머리는 평민 수준이었다. 머리만은 어떻게 안 되는 것인지.


태교의 효과에 대해 말하라고 하면 참 애매하다. 천재를 만들려고 손을 쓰는 뜨개질을 하고 머리 좋아진다는 말에 들으면 졸리기만 한 모차르트 음악을 들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딸은 가야금이나 해금 등 손을 많이 쓰는 악기를 하긴 했고, 어쨌든 작곡을 전공으로 하게 되었다.


태교 효과는 재능보다는 태도 부분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


우리 딸이 다닌 유치원에서 첫 상담을 하러 간 날이었다. 내가 가자마자 선생님이 웃으면서 감탄의 말을 내뱉으신 것이다. 어쩌면 애가 그렇게 리얼 공주냐고.


자장밥을 먹을 땐 옷에 묻을까 봐 냅킨을 옷에 깔아달라고 하고, 화장실을 갈 땐 변기에 휴지를 깔아달라고 한단다. 또 집에 갈 때는 주머니에 손을 탁 집어넣고 턱으로 신발을 가리키면 남자애들이 엎드려서 신을 신겨준다고.


너무 창피했다. 내가 바란 건 결단코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궁중에서 일을 하시는 분의 머리를 바란 거지, 궁중에 사시는 여자분의 태도를 바란 건 진정 아니었다.


하지만 이점도 있었다. 예를 들어 모양이 특이한 모자를 씌워서 보내면 아이들이 이상하다고 놀린 모양이다. 선생님이 미리 전화로 알려주셨다. 상처 받았을 거라고.


그래서 아이한테 오늘 아이들이 모자 가지고 놀렸니? 하니 우리 딸 태연하게 말한다.

"응. 엄마 그거 애들이 샘나서 그런 거야. 걔네들은 모자가 하나도 없거든."


다행이었다. 우리 딸은 머리는 천재가 아니었지만 공주다운 기품과 자존감을 장착하고 태어난 것이다.

방향이 조금 빗나가긴 했지만 뭐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자존감만큼 중요한 게 없으니.

 

그 공주병은 학교생활을 하면서 차츰 평민화 되어갔다. 하지만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자존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자존감은 우리 딸이 행복감을 느끼는 재료로 쓰이곤 했다.


만약 우리 딸이 뱃속에서 입력받은 내용이 반대로 쓰였다면 어땠을까? 뭘 해도 부족함을 느끼는, 까다로운 천재가 되는 데 몽땅 쓰였다면...


한 때 공주병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긍정적인 공주병은 권장할 만하다. 즉 자존감이 높고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품위 있는 사람에게 쓰인다면 말이다.


공주병허영심이 많은 사람에게 비난조로 쓰였다.


하지만 이러한 허영심도 자학하는 것보다는 낫다. 교육으로 바로잡아주면 말이다. 그 에너지를 좋은 쪽, 즉 자기가 하는 일에 있어서 야심이나 열정으로 전환할 수만 있으면 된다.


아주 오래전, 국부론으로 많이 알려진 아담 스미스가 쓴 도덕감정론에는 이미 이런 개념이 나와 있다.


스미스는 사람에게 오만함은 자신이 완벽하다고 느껴 발전을 가로막지만 허영심은 조금 다르다고 했다. 즉 작은 것에 만족하는 허영심은 경계해야 하지만, 칭찬받을 만한 큰 성취에 대해선 자부심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말이다.


즉 허영심은 잘 길들이면 거대한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공주병이 있는 아이들은 칭찬을 좋아한다. 가슴속 허영심은 자존감과 얽혀서 칭찬받고 싶어 하고 칭찬받을 일을 자꾸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주병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면 자존감이 높고 성취지향적인 아이들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무작정 무한 경쟁의 장으로 내모는 경우에는 그 반대로 된다. 예를 들어 웬만해선 칭찬을 해주지 않고 늘 닦달하면 자존감이 낮아지니 게임 속으로 회피한다. 온라인 상으론 현실과 달리 우쭐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 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허영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에 '건설적인 허영심'이라고 이름 붙이면 어떨까? 물론 아주 일찍 태교부터 잘하면 효과적일 것이다.


특히 내 경험으로 볼 때 뱃속 아기에게 동화 읽어주기와 태교일기는 추천할 만하다. 단 뜨개질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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