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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l 10. 2019

흙수저 거북이는  왜 하필 달리기 시합을 한 것일까?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필요하다.

얼마 전 방영되었던 입시 관련 드라마가 있다. '입시 코디'라는 직업이 나왔는데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었다. 주변에 돈 좀 있다 하는 부모들은 자녀의 대입에 어마어마한 돈을 쓰고 있었고, 그게 단지 과외비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 드라마를 보면서 입시생을 가진 부모로서 착잡했다. 그 내용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민낯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아무리 분칠을 해 보아도 사실은 그저 사실일 뿐.


그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입시 관련 대토론회가 열리고 가진 자들이 반성하고 등등 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 드라마의 주인공인 학생 배우는 유명 사설학원 모델로 등장하고 주인공이 쓰던 책상이 없어서 못 판다는 건 좀.


하긴 그래. 있는 자가 쓴다는데야 뭐. 하고 치우기도 씁쓸하기만 하다.


하지만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운 학부모이자 학교 일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아니 그보다 해외에서 사업까지 해 가면서 갖은 모험을 거쳐온 사람으로서 한 마디 하고 싶다.


이제 가진 자들이 하는 파티에 가려고 무리하게 옷을 빌려 입진 말자고. 그 파티가 끝나고 나서 유리구두 떨어뜨린다고 왕자가 찾아올 일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파티 자체가 이제 별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내 주변에 서울대 박사 과정까지 마친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놀고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노는 기간을 좀 더 미루기 위한 방편을 취하고 있다. 즉 공부하는 기간을 계속 늘리고 있다. 국내  박사과정을 끝낸 다음엔 또 해외로 나간다. 부모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계속 교육비에 쏟아붓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한국에 돌아올 때쯤이면 그런 사람들이 더욱 포화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 우화가 있다. 나는 그 경기 출발선에 선 거북이 모습이 얼핏 상상이 된다. 두 눈을 끔뻑거리면서 두려움과 오기가 서려있지 않았을까?


거북이는 왜 그런 경기를 하게 되었을까? 토끼에게만 유리한 게임을 말이다. 차라리 '오래 살기'나 '몸을 최대한 구부리기'나 '변장술' 같은 것으로 경기를 하지 않고서.


처음부터 토끼에게만 유리한 경기를 한다? 속으로 승부를 예상은 한 건가? 토끼가 중간에 낮잠을 잘 줄 어떻게 알고서?


의외의 해법을 노래 가사에서 발견했다. '마이크 드롭'이란 방탄소년단의 노래 가사다.

"누가 내 수저 더럽대. I don't care. 마이크 잡음 금수저 여럿 패."

즉 자기가 제일 잘 하는 걸로 승부를 걸면 된다 .


어릴 적 죽도록 외웠던 국민교육헌장 내용이 떠 오른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여...'

되게 심플하다. 그 소질을 계발하면 되니까. 그 소질을 계발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절박하다.


막연히 공부라는 애매한 주제를 놓고 같은 장소,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하는 건 불리하다. 누군 수억수십억 짜리 입시 코디를 받고 대학을 입학한다면 말이다.


우리 딸은 일찍이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악기에 관심을 보이더니 플루트, 피아노, 가야금, 해금에 차례대로 빠지다가 결국 모든 걸 품으려는 듯 작곡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아들도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온갖 잡지식에 관심을 보이다가 결국 그 잡지식을 쏟아놓을 곳을 찾았다. 만화가다. 아들은 만화가가 되어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것이다.


내가 어릴 적부터 학교 공부에 비판적이었던 우리 아이들을 닦달하면서 공부에만 관심을 쏟았다면 어땠을까? 지금 쯤 우리 아이들과 나는 관계가 나빠졌을 것이다. 고액과외나 거액의 입시 코디를 붙여줄 수 없는 엄마 마음은 또 어떻고.


형편에 맞지 않게 무리하는 가정을 많이 본다. 고등학교 교사로 있는 지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심각하다. 요즘 아이들은 대학 입학 원서를 쓸 때까지도 자신들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자기가 뭘 잘하는지 아님 뭘 하고 싶은지.

 

혹시 부모들이 자녀들의 취향이나 행복보다 토끼가 뛰는 초원에 자녀들을 욱여넣고 같이 뛰어보라고 한 결과가 아닐까?


뜀박질 잘하는 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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