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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n 20. 2019

안 무서운 교사 콤플렉스

네모반듯한 아이들보다 심성이 반듯한 아이로 길러야.

'교사'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주로 깐깐하거나 엄격한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시키려니 어쩔 수가 없다.


실제로 어릴 적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그 당시에는 호랑이 선생님이 겉으론 엄격하고 속으론 따뜻해서 멋져 보였다.


오랫동안 고민이 있었다. 교사로서 내가 아이들에게 ‘무섭지 않다’는 사실이다. 성격상 카리스마도 별로 없다. 노력도 해 보았다. 목소리 톤도 무섭게 해 보고 웃지 않으려고도 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잔뜩 무서운 표정을 지어도 결국 실패하고 만다. 아이들은 내가 편한지 자기 남자 친구 얘기부터 드라마 많이 보는 엄마 흉까지 본다.


그런 건 다 좋다. 그렇지만 친근함이 곤란해지는 순간이 온다. 담임을 맡을 경우 아이들이 담임을 무서워하지 않으니 다른 반에 비해 말을 안 들어 통제하기 힘들 때가 있다는 것.


거기에 한술 더 떠서 꼼꼼하지 않은, 몹시 덜렁대는 점 때문에 처음부터 멋진 선생님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아이들이 크게 대들 때가 있다. 그땐 크게 절망한다.


하지만 최근 그동안의 상처가 한 번에 치유되는 말을 들었다. 한 학생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선생님은 무섭진 않지만 존경스러워요. 요즘 아이들은 무서운 선생님보다 본받을 만한 것이 있는 선생님 말을 잘 들어요."


내가 하도 '무서움'에 집착을 보이니 보다 못해 6학년 여학생이 그런 말을 해 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아이들은 단순히 엄격한 교사에게 반발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바야흐로 내 시대가 오는 것인가?


나는 30년 전 처음 교사할 때부터 안 무서웠다. 그래서 괴로웠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느낌.


아직도 '무서운 자리'를 유지하는 교사들이 많다. 타고난 성격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학급 관리가 편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무서움’이 먹히는 선생님들은 학급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그 반 아이들은 복도를 지날 때도 머리를 바닥으로 푹 숙인다. 평소 군인처럼 걸으며 수업시간은 절간처럼 조용하다. 그리고 발표할 땐 꼭 필요한 말만 조리 있게 말한다.


그런데 무섭지 않은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만만하기 때문에 그분은 늘 시끌벅적하다. 신입교사반이 주로 그렇다. 여기서 너무 무섭거나 만만해도 문제다.


너무 무서우면 아이들이 늘 경직되어 있고 그 담임 선생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착하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아이들의 발산 욕구는 풍선과 같다. 한 곳을 누르면 다른 한 곳이 부풀어 오른다.


그러면 가장 이상적인 교사 반은 어떠한가? 인성이 좋고 똘똘한 신입교사나 경력이 많으면서도 열정과 감성을 지닌 나이 든 교사들이 지도하는 경우다. 그 반 아이들은 늘 활기차고 행복해 보인다.


무엇보다 놀 때와 공부할 때의 구분이 확실해서 점심시간이나 놀이시간에는 시끄럽게 잘 논다. 그러나 공부시간에는 집중다. 그리고 개인적 고민도 선생님께 털어놓는다.


그런 반은 늘 살아있다. 아는 선생님 그랬다. 30대 중반의 여교사였는데 아이들을 예뻐했다. 친구 같고 언니 같은 이미지가 강했는데도 그 반 아이들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규율도 잘 지켰다.


하루는 학생이 선생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오빠한테 성추행당한 일이었다. 그 뒤로  사건을 해결하기까지 교사의 역할이 컸다. 결국 오빠 심리치료를 받고 나중에는 잘 처리되었다. 교사가 받아 주다 보니 아이가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이다. 문제는 그 전 담임선생님들은 무얼 했냐는 것.


그 여학생 부모님 맞벌이하시느라 귀가가 늦었다. 자연 오빠랑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 오빠가 여학생에게 성추행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전의 담임들은 무서워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언니 같고 친구 같은 선생님을 만나니 그동안의 고민을 털어놓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교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경우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게 만만치 않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관리자들은 학급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학교 차원으로나 행정적으로 표면화되는 걸 꺼린다.


그래서 유능한 관리자의 정의가 학교 내에 민원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 분위기를 감지한 몇몇 교사들은 아예 학생들이 소소한 감정을 교사랑 나누는 상황을 만들어내지 않으려 한다.


그 과정이 무척 복잡하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왕따 문제나 성추행, 가정폭력 문제 등을 알게 되면 골치가 아파진다.


성추행 사실을 알고 나서 24시간 이내에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도 그렇다. 가정 폭력을 알아도 해당 학부모를 신고대상으로 삼아야 하니 무척 민감하다.


업무도 많은데 그런 일을 학급에서 해결한다는 게 부담이 크다. 그래서 되도록 모든 문제를 살살 덮고 임시방편으로 꿰매 버린다.


그러다 그 일이 곪아 터져서 최악의 경우 중학교에 들어가서 자퇴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담임했던 교사들은 교육 방치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정서적으로 힘든 아이경우 담임 한 명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 학교 공동의 문제로 보고 학교차원의 상담과 교육을 해야 한다. 그 부분에 있어서 소극적인 것이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혹시 네모반듯한 교실에서 네모반듯한 책상 위에 네모반듯한 책을 펴게 하고 네모반듯한 아이로 보이게 하려는 관습적인 시도들이 있지는 않은가?


현재의 학년제나 교실 모습은 족보가 짧다. 프러시안 교육의 영향을 받은 군대식 교육 방법인 것이다.


계몽주의적인 배치의 교실 모습과 국가주의가 여실히 드러나는 교육내용, 또 ‘뉴턴적인 시간 개념의 총합’이 현재 우리 교육의 모습이다.


‘개인의 개성을 무시하기 쉬운 교육’이 요즘 들어 여러 가지 병폐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을 네모 반듯한 아이가 아니라 심성이 반듯한 아이로 자라나게 해야 한다.


무서운 표정으로 규율과 결과를 중시하는 경직된 교사가 아닌 열린 마음의 교사가 필요하다.


그보다는 근본적으로 그를 뒷받침하는 행정업무의 간소화와 대입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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