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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y 21. 2019

‘인생’이라는 종합 선물세트

대학 입학보다 더 큰 것들

내가 어릴 때 있었다가 요즘 사라진 것들 중 과자 종합 선물세트라는 것이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한 상자에 담은 것이다. 그 과자 상자는 회사마다 이름이 달랐는데, 그중에서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있는 이름이 ‘땡큐’다. 영어로 감사하다는 말을 한글로 정직하게 발음한 것이다.


그 과자 광고에서 아빠 모델이 초인종을 띵동 하고 울리면, 아이가 뛰어나가 그 선물을 받고, “아빠. 땡큐!”하며 아빠 볼에 뽀뽀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 상자 안에는 그 회사에서 출시되던 인기 과자들이 들어있었다. 사실 인기 과자를 엄선했다고 하기엔 그 당시 우리나라 과자 종류가 빈약하긴 했다.


그 상자 안에 있던 과자 중에는 지금까지 팔리고 있는 스테디셀러도 여럿 있다. 그 상자를 선물 받은 아이는 한 1주일 치 행복티켓을 받는 셈이었다. 그 과자를 1주일 정도 먹었으니 말이다.


그 당시 내 또래 아이들의 부의 기준은 종합 선물 세트를 한 번도 못 받은 아이와 한 번이라도 받은 아이로 나뉘었다. 물론 내 기준이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아이들에게 부의 기준은 크게 달라졌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입시 관련 드라마가 있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올해 입시를 치른 딸을 가진 엄마로서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나는 지난해 고3 엄마로서 딸을 위해 최선을 다 했다. 딸이 예민한 시기라 모든 떼쓰기를 다 받아주었고, 딸이 동생과 싸울 때 동생에게 눈을 찡긋해가면서 무조건 딸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입시 결과가 좋지 못한 딸이 상심하고 있는 요즘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해주어야 할 일은 떼쓰기 받아주기, 무조건 편들어주기 등 감정 다 받아주기. 이런 게 다가 아니었다고 말이다.


대신 고액 입시과외를 받게 해주어야 했나? 입시정보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엄마로서 자격이 없나? 아니 정보가 딸리면 고액 입시 코디라도 붙여주어야 했나? 등등. 물론 모두 내겐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지만 말이다.  

내가 대학 갈 때만 해도 사교육은 불법이었다. 대입에 돈이 들어간다 하면 독서실 비용이나 참고서 값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은 서울에 있는 유명 대학만 보내려 해도 입시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고 한다.

지금은 방학이다. 하지만 방학은 빈부격차가 더 벌어지는 시기다. 어릴 적 고작 과자 종합 선물 세트를 받아본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로 나뉘던 것이, 이제 방학 때 해외 어학연수를 가는 아이와 방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아이로 나뉜다.


부모의 마음은 다 같이 ‘사랑’이라는 한 가지 줄기에서 나오는 데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과자 종합 선물세트 이름을 오로지 ‘땡큐’ 하나만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아빠가 그 브랜드 과자만 줄곧 사 오신 때문이다. 하루는 엄마가 왜 그것만 사 오느냐고 물었다.


그때 잠결에 얼핏 들린 아빠의 대답이 떠오른다. “응. 그건, 내가 이걸 사 와야 우리 아이들이 아빠. 땡큐 하면서 뽀뽀를 해주거든.”  

고액 입시과외를 시켜주지 못하는 엄마지만 딸에게 주고 싶다. 포용, 여유, 배려, 사랑 등등 대학보다 더 큰 ‘인생’이라는 종합 선물세트를.


그리고 딸에게 한 마디 하는 것이다. “괜찮아. 올해 대학 못가도. 내년에 가도 되고, 네가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있으면 대학에 꼭 가지 않아도 돼.”


이렇게 진심으로 웃으며 말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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