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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l 12. 2019

열무물김치 두 통

동생이 기억할 지상의 마지막 음식

우리 집은 딸 부잣집이었다. 옛말에 셋째 딸은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셋째 딸은 예쁘다는 말인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 집도 셋째가 제일 예뻤다.


지금은 그 셋째인 동생이 세상에 없다. 동생은 3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났다. 무시무시한 암 때문에. 그 동생은 나와 모든 것이 비슷했다. 생김새부터 목소리까지. 단 성격만은 정 반대였다. 정적인 나와는 반대로 동생은 꼭 머슴애 같았다.


학교 다닐 때는 남학생들이 하는 개구쟁이 짓을 많이 했다. 여름이면 옥상에 몰래 숨어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뿌리개로 물을 뿌리다가 그 물을 맞은 행인이 크게 항의를 하곤 했다.


한 번은 남자 짝꿍이 동생에게 까불었나 보다. 동생이 그 짝의 배를 세게 때렸다. 그 엄마가 학교로 찾아와서 동생을 혼내기도 했다. 주로 남자애들을 울리고 다녔다.


그런 동생이 든든하기도 했다. 남자애들이 나를 괴롭히면 동생이 주먹을 휘두르면서 쫓아가기도 했다. 물론 그 주먹에서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생이랑 싸우면 뼈도 못 추렸다. 어찌나 날쌔고 주먹이 센지 그 주먹에 맞아 코피를 흘리고 고꾸라 진적도 있을 정도.


한겨울엔 빨래가 안 말라서 양말을 챙겨 신는 것이 힘들었다. 맞벌이하시는 엄마 대신 우리가 빨래를 말려 신어야 했는데 하루는 양말이 다 타버린 적이 있었다. 동생이 양말을 빨리 말리기 위해 연탄난로에다 언 양말을 말린 것이다. 그때 자기 것만 말리지 왜 우리 것까지 말리다 태웠냐고 말을 했다가 또 맞았다.


초식남, 육식남이라는 말이 있지만 동생은 육식녀였다. 고기 종류라면 다 좋아했다. 밥을 별로 안 좋아했던 동생은 고기 중에서도 특히 탄 고기를 좋아했다. 식성마저도 남자 같았던 셈이다.


하루에 한 끼 정도만 고기를 배불리 먹고 밥을 잘 안 먹어서 꼭 사자 같았다. 야생동물의 식성과 습성을 그대로 베껴놓은 듯했다.  


하루는 동생이 자취하는 집에 가 본 적이 있다. 늘 일에 쫓기며 살던 동생의 식생활은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밖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곤 하던 동생. 집에선 밥을 해먹은 흔적이 거의 없었다. 라면이나 즉석조리해 먹는 인스턴트 음식이 담긴 비닐봉지들. 그 봉지 안에 든 음식들은 그 비닐봉지 두께만큼이나 얄팍한 음식이었다. 위를 아주 얇디얇게 훑어지나가는.


그런 음식들을 먹고 끼니를 거르기 일쑤인 동생이 건강할 리 없었다.

어느 날 연락이 왔다. 응급실에 있다고. 그리고 두 달 뒤 동생은 떠나갔다.


동생의 투병생활 중 특이한 부분이 있었다. 짧디 짧은, 투병 기간이랄 것 도 없는 그 시간 동안 동생은 먹을 것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했다.


평소 좋아하던 것과 정 반대의 것을 원했던 것이다. 즉 죽어가던 세포가 주인님에게 마지막 반란을 일으키는 듯했다. 그 당시 시어머님이 텃밭에 가꾸어서 보내주시는 오이나 토마토 등만 음식으로 쳤다. 다른 유기농 야채가게에서 가져오는 것에 대해서 모두 농약 냄새가 난다고 했다.


특히 동생이 좋아했던 음식은 시어머님이 담가주신 열무물김치였다. 시어머님이 직접 기르신 연한 열무에 직접 재배하신 고춧가루를 사용하셨다. 물이 자작하고 연한 고춧물에 별다른 양념이 없는 그 물김치를 보약이라도 되는 듯이 좋아했다. 심지어 간식처럼 평소에도 떠먹었다. 한통을 혼자 다 먹자 시어머님이 또 담가주셨다.


한동안 기적이라도 일어나는 듯했다. 그 물김치를 두 통쯤 다 먹고 나자 동생이 원기를 회복한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루는 기운이 없던 동생이 산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마당에 나가니 물기를 머금은 낙엽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동생은 그 낙엽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울적해했다. 자신도 그 낙엽 같다고 느낀 것인지.


그 열무물김치는 기적까지 일으키진 못했다.

하지만 다행이다. 동생이 건강한 음식을 기억으로 가져가서.


퇴근하는 길에 열무를 한단 사다가 물김치나 담가보아야겠다.


동생보다 내게 조금 더 주어진 '생명'이라는 것에 대한 예의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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