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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l 08. 2019

순수한 열정의 원형을 볼 때의 기쁨

방탄소년단 '뷔'에게서 엘리오를 보다

일찍이 르네상스가 싹튼 이태리 북부지방, 엘리오 가족은 여름휴가를 이곳에서 보낸다. 여기서 겪는 독특한 첫사랑 이야기.


(그 해 여름 손님)을 먼저 보고 영화(콜미 바이 유어 네임)나중에 게 되었다.


둘은 분위기가 다르다. 책첫사랑의 설렘을 세밀하게 읊조렸다면 영화는 좀 더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감정의 '원형'을 다룬다.


바닷가 유물을 건지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을 연상시키는 조각상들. 그 작품들바닷속에 오랫동안 수몰되어 있다가 나오니 온전한 것이 없다.


부서진 조각상르네상스 시절의 인본정신이 현대에 와서 변질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중세의 신본주의는 아니지만.


현대사회를 굳이 이름 붙이자면 '이성주의' 내지는 '금전주의' 시대라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갖고 있는 순수한 열정. 그 열정을 맘껏 분출할 수 있는 길을 나는 모르겠다.


그런데 최근 순수의 원형을 분출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방탄소년단의 뷔(김태형)라는 가수다.


BTS에 입덕이라는 걸 한지 두 달도 안 된지라 제대로 파악한 건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건 뷔라는 가수에게서 순수한 열정의 원형이 보인다는 점이다. (외모마저도 다비드상 닮았다)


그가 방송에서 보여주는 말 '엉킴' 현상이나 엉뚱한 행동 등은 사람들에게 의외의 기쁨을 준다. 다들 하고 싶어도 이미 강을 건너와서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기 때문이다. 아마 조부모님과 살면서 사랑의 원형을 잘 보존하게 된 게 아닐까 한다.


최근 뷔가 일본 공연을 하러 가는 공항 영상이 나왔다. 거기서 뷔는 기자들이 흔드는 손을 일일이 하이파이브해주고 있었다. 마스크 너머로 그 눈을 보았다. 반달로 구부러지게 웃는 눈을. 요즘 보기 드물게 따뜻하다. 속으론 그랬을 것이다.

'내가 홍길동이라면 좋겠다. 모두에게 다가가게.'


이러한 순수함은 오랫동안 내 안에 꽁꽁 감추려고 노력했던 것들이다.


대학 1학년 때 이후로 나 순수함은 마치 부인 몰래 숨겨놓은 자식 대우를 받아왔다.


선배가 자신이 살아온 험난한 인생 이야기를 들려줄 때였다. 너무 슬픈 이야기라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때 옆에 있던 다른 선배가 나더러 진지하게 충고해 주었다.


맥주병과 소주병을 번갈아 손으로 가리키면서 하는 말이,

"이 둘이 분명 다르지? 그런데 어떻게 보면 비슷해 보여. 지금 네 모습이 그래. 순수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바보같이 보일 수도 있다고."


그 뒤로 남이 슬픈 이야기를 해도 함부로 울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순수함이 잘 못 보면 어리숙함으로 보이고 4차원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도.


하지만 뷔같이 잘 생기고 부자고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사람이 순수을 보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저렇게 다 가진 사람이 순수하기까지 하다니. 안 가진 게 뭐야 대체?


뷔를 '순수 마을' 장님으로 내세우고 싶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의 순수함은 에너지를 비축하는 데 쓰였을 것이다. 평소 공격력이 전혀 없고 힘을 빼고 사는 그이기에 무대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평소 이성에 붙들려 사느라 에너지를 많이 쓴다. 그러다가 정작 써야 할 때 지쳐서 조금밖에 못 쓰는 것이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엘리오 아버지가 엘리오에게 하던 대사가 떠 오른다.

'우리는 감정을 너무 일찍 닳아 없앤다. 정작 필요할 땐 감정이 남아있질 않는 게 문제다.'


엘리오가 가진 순수한 열정을 그동안 우리는 무던히 짓밟아 왔다. 그들을 바라볼 땐 마치 어른이 아이를 볼 때의 시선처럼 자비마저 베푼다. 이제 그 원형을 되살리는 게 어떨까?


다행히 사회가 다변화되어가는 조짐이 보인다. 어떤 감성이라도 그 사람만의 창의력으로 존중해주는 사회를 꿈꾸어본다.


그리고 알엠의 '덜렁댐'에 이어, 평소 나의 단점 트라우마(순수함)를 극복하게 해 준 '뷔'라는 아티스트의 순수함을 사랑할 것이다. 무엇보다 눈물 나게 동지애를 느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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