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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Aug 01. 2019

지구의 주인은 사람일까?

상대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야 꼰대가 되지 않는다.

어릴 때 마당에 나가 관찰하기를 즐겼다. 관찰 대상에는 꽃, 나무, 개미 등이 있었는데 개미가 특히 재미있었다. 개미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항상 바빠 보였다.


하루는 궁금증이 생겼다. 세상의 주인은 사람인가? 아니면 개미가?


개미는 자기들이 주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빵 부스러기 하나 떨어지면 커다란 바위 굴리듯 여러 마리 미가 달려들어 운반해 갔다. 우리가 산에서 나무를 베어 오듯이 말이다. 그들 나름대로 질서가 있었고 머리를 제법 쓰는 게 보였다.


많은 미래학자나 생물학자들은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고 동물이나 식물의 지배자라고 생각하는 건 교만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유발 하라리는 지구의 지배자가 밀이라고 말한다. 전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밀을 재배 하도록 하여 면적을 차츰 늘려왔다는 것이다.


인류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더 풍요로워졌을까? 그렇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사냥을 하고 동굴생활을 하던 때보다 더 많이 일하고도 굶주리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일부 권력계층 빼고 말이다. 그 속에서 밀의 재배 면적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우리는 마치 밀의 종자를 번창시키려고 노력하는 듯이 보인다. 그 일에 정당성까지 부여하기 위해 우리는 꾸역꾸역 많은 밀을 위 속에 밀어 넣는다.(생각해 보면 빵이나 과자 등 밀로 만든 음식들은 주식과 상관없는 군것질 거리가 많다.) 그로 인해 비만이 생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밀을 소비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 밀을 모시는 '집사'와 같다.


인간의 '집사질'은 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텔레비전에 반려견 안전벨트 광고가 나왔다. 예쁜 반려견이 고급 자동차 뒷좌석에 느긋하게 벨트를 매고 있는 게 여유로워 보인다. 게다가 사람이 쓰는 안전벨트보다 더 정교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작년엔 딸이 하도 사정을 해서 반려견을 데려온 적이 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기를 수 없게 되었다. 밤마다 크게 짖어서 민원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다행히 강원도 시골에 사는 먼 친척이 기르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반려견과 깊게 정이 든 나는 반려견을 보내고 3,4일을 꺽꺽 대며 울었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우리 반려견이 너무 잘 지낸다고 하는 것이다. 섭섭할 정도로.


원래 그 집에서는 반려견을 이미 한 마리 기르고 있었다. 그 반려견은 마당에서 길렀다. 하지만 우리 집 반려견은 집 안에서 기른단다. 안 봐도 뻔하다. 분명 밤마다 문을 벅벅 긁고 시끄럽게 짖어댔을 것이다. 다만 털이 너무 많은 종이라서 털을 짧게 밀고는 매일 주인이 끌어안고 잔다고.


그 반려견은 천재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 우리 집 방문 손잡이가 기다란 것이었는데 펄쩍 뛰어서 열곤 해서 모두 동그란 손잡이로 바꾸었다. 그러자 온갖 잡동사니들을 이용했다. 머리빗 등을 입에 물고 와서는 문을 탕탕 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게 계획된 것이 아닐까 싶다. 즉 자기가 마음에 드는 환경과 주인을 만날 때까지 크게 짖고 까칠하게 구는 것이다. 결국 그 반려견은 물 좋고 공기 좋은 주택에서 호의호식하면 잘 살게 된 것이다.


요즘 견주들은 하루 종일 나가서 땀 흘려 일하고 값비싼 유기농 사료와 반려견 옷 등을 사다 나른다.


전에 알던 한 나이 많은 여직원은 결혼도 안 하고 반려견만 여러 마리 키우면서 살았다. 월급이 얼마 안 되는 그 직원은 자기 월급의 대부분을 반려견을 기르는데 쓴다고 했다. 결혼도 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결국 반려견을 위해 직장을 다니는 셈이다.


밀이나 반려견 등은 우리 인간의 노동을 이용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지구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식물이나 다른 동물들에 비해 류가 지구에 등장한 역사가 짧다. 


또한 지구에 등장하자마자 포악한 파괴자 역할을 서슴지 않았다. 이쯤 되면 지구 측에서 볼 때 주인이 아니라 지구를 망치는 가해자 아닐까? 인간의 입장에서 눈부신 문명의 발전이라고 하는 것이 전 지구적으로 볼 땐 퇴보일 수도 있다.


겸손이 무엇일까? 사람들끼리 잘난 척하지 않는 것일까? 좀 더 크게 보아야 할 것 같다. 지구라는 공공재를 서로 공평히 나누어 쓰는 것. 더불어 잘 살아가는 것. 이를 위한 태도가 겸손이 아닐까?


자신이 위치한 곳이 어딘지 알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 그런 마인드는 어떤 조직서나 필요한 미덕이다. 내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하되 전체 공동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것.


특히 나는 나이가 많아질수록 내가 볼썽사나운 꼰대가 될까 봐 벌벌 떨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진저리 나도록 싫어했던 게  꼰대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딜 가도 마치 자기가 주인인 듯 행동한다. 나이가 좀 있으니 대우받으려 하고 자기가 하는 말이 진리인양 으스대면서 말한다. 젊은 사람들이 가진 창조적이고 신선한 발상은 무시하고 자기가 한 때 인정받던 방식을 고집한다. 그게 조직에 얼마나 병폐가 되는지 잘 모른다.


지식과 정보가 축적되면 힘이 되는 시대가 있었다. 집에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거나 책이 많으면 지식이 많은 것처럼 보이고, 학벌이 좋으면 똑똑한 것으로 간주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끊임없이 지식을 물갈이하지 않으면 구시대의 퇴물이 되기 십상이다. 나이가 많아도 노력하지 않으면 인정받기 힘들다.


미래학자들은 종종 우리 호모 사피엔스종은 이기심으로 인해 지구 상에서 멸종하게 될 거라고 말하곤 한다. 그 이기심의 출발이 혹시 꼰대 기질과 흡사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본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 그 여파는 정치, 문화, 경제 등 사회 전반에 걸쳐 퍼져나간다. 좀 더 상대적으로 생각하며 살 필요가 있다.


그것은 지구 위에 많은 생물들이 있으며, 그들은 그들 종 안에서 제각각 중요하며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것을 알고 겸손한 인류로서 살아가는 자세, 그것만으로도 지구에서 우리 사피엔스의 멸종을 조금 늦출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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