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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Aug 06. 2019

동생에게 차려주고 싶은 밥상

만약 한 끼 차려줄 수만 있다면

 결혼 한지 꽤 되고 아이들까지 큰 요즘은, 전에 비해 시간 여유가 많아졌다. 살림도 제법 손에 익어서 한 끼 밥상 차리는 것쯤 일도 아니다. 다만 식구들이 집에 오는 시간이 제각각 달라서 귀찮기는 하다. 매일 저녁상만 세 번씩 차려주게 되니. 게다가 식구들마다 입맛이 달라서 요리를 다 다르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 음식은 각기 다른 그릇에 담는 방식 때문에 설거지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딸이 하는 말 때문에 그런 수고쯤은 날아가 버린다.

"엄마. 역시 집밥이 최고야. 한동안 바깥 음식만 먹었더니 건강이 나빠지는 것 같았거든. 그런데 요즘 엄마 밥을 잘 챙겨 먹으니까 기운이 좀 나는 것 같아."


요즘은 날도 더운데 밖에서 잘 못 먹으면 탈이 나기도 한다. 얼마 전 아들은 밖에서 음식을 잘 못 먹고 배탈이 나서 고생했다. 딸이 하는 말을 들으니 이래저래 집밥이 중요한가보다 다. 그러면서 언 뜻 한 생각이 떠 올라 가슴이 저민다.


바로 밑의 동생이다. 동생은 혼자 살면서 일만 하다 갔다. 동생은 날 때터 몸이 허약했다. 어릴 적부터 자주 열이 나고 설사도 자주 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병원신세를 많이 졌다. 특히 일을 너무 많이 하느라 바빠서 제 때 밥을 못 먹다 간 동생. 동생이 걱정되었던 나는 밥을 제 때 먹으라고 잔소리를 많이 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 동생에게 밥 한 끼 차려준 적이 없다.


오히려 동생이 나에게 밥을 많이 차려 주었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동생은 요리를 특히 잘했다. 냉면이나 순대볶음, 또는 갈비탕 같이 식당에서나 사 먹는 음식들을 뚝딱 만들어내곤 했다. 나는 해주는 음식을 넙죽넙죽 받아먹기만 했다. 동생은 자기 끼니는 안 챙기면서 남에게 밥 차려주는 걸 좋아했다. 요리할 때만큼은 평소 동생의 터프한 성격과는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동생은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즐겼던 것 같다. 음식을 맛있게 먹다가 내가 요리 비법이 뭐냐고 물어보곤 했다. 어차피 알아봤자 하지도 않을 게 뻔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동생은 한쪽 입술만 올리고 씩 웃기만 했다. 나도 그 특유의 미소 방법을 한 번 따라 해 본다.


언니가 되어서는 동생에게 받아먹기만 했던 나. 동생이 살아 있을 때 요리를 못했던 게 후회된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금방 한 상 차려줄 수 있을 텐데...


만약, 만약 동생이 먹을 수만 있다면, 동생에게 내가 밥상을 차려준다면 무슨 반찬과 찌개를 할까? 나 혼자 한번 상상의 밥상을 차려본다.


아무래도 된장찌개가 낫겠지? 멸치는 무얼로 할까? 비싸도 통영의 죽방멸치를 써야겠다. 어차피 단 한 번 뿐이니까. 그래, 택배로 신청하면 시간이 걸리니까 서둘러 백화점에 가서 사 와야겠다.


먼저 잘 고른 멸치를 프라이팬에 볶아서 잡냄새를 날리는 거다. 그 멸치에 물을 부어 팔팔 끓기 시작하면 중불로 낮추어 뭉근하게 끓여서 다시 국물을 낸다. 그 국물에 시어머님이 보내주신 묵은 된장과 햇된장을 반반씩 넣는다. 그래야 깊은 맛과 산뜻한 맛이 어우러진다. 그리고 표고버섯과 양파를 먼저 잘게 썰어 끓인다. 어느 정도 끓고 나면 애호박과 감자를 넣는다. 그런 다음 잘게 썬 청양고추고 대파를 넣고 두부를 넣는 거다. 그리고 뚝배기에 옮겨 한 번 더 끓인다.


주요리로는 무얼 할까? 그래, 고기를 좋아하던 애니까 갈비찜을 한 번 해 보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한우 최고등급의 소고기를 사다가 밤과 무 표고버섯, 당근, 수삼 등을 넣고 부드럽게 푹 익혀낸다.


그리고 나물도 여러 가지 해 보는 거다. 동생이 안 먹으려 하겠지만 언니로서 따끔하게 한 소리 하면서 먹이는 거다. 구하기 힘든 명이나물, 방풍나물, 그리고 중국에서 맛있게 먹어본 나물이 한국에서 팔고 있는 게 있는데 공심채다. 그 나물을 볶아서 내 보는 거다.


동생이 "이게 뭐야?" 하고 물어보면 친절하게 설명도 해 주고. 응 중국에서 즐겨 먹던 건데 한국에도 들어왔더라. 단 마트에는 팔지 않고 인터넷 주문만 가능해. 참 세상 많이 변했지? 하면서.


그리고 또 도토리묵도 오이랑 쑥갓과 함께 매콤 새콤하게 조물 조물 부쳐내는 거다. 그리고 또 미리 만들어 놓았다면, 반 얼음 상태인 식혜를 내는 거다.


참, 동생이 제일 좋아하던 것이 기억났다. 잡채다. 동생은 느끼한 음식을 좋아했다. 당면에 갓 짜낸 참기름을 듬뿍 넣어서 무치는 거다. 소고기채, 달걀을 흰 지단, 황 지단 따로 곱게 채 썰어 내고, 당근, 시금치, 목이버섯 등을 같이 버무려서 최대한 먹음직스럽게 담아낸다.


김치는 한 종류만 해도 충분하다. 김치를 별로 안 먹던 애니까. 다만 죽기 전에 그렇게 잘 먹던 열무물김치를 시어머님께 부탁해야겠다. 물이 자작하게 해서 청고추 적고추를 어슷 썰어 넣은 물김치. 그 물김치를 특별히 차려 내놓는다. 동생이 깜짝 놀라겠지?


그리고 잔칫날 기분이니까 전도 내는 거다. 명태를 포 떠다가 치자물이 든 계란으로 옷을 입혀 예쁘게 지지고 위에 쑥갓과 빨간 고추 썬 것으로 장식까지 한다. 동생은, 쓸 데 없이 무슨 장식을 했어? 핀잔주면서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밥이 중요하다. 밥은 건강에 좋은 현미도 살짝 넣고 흑미도 조금 넣는다. 다만 동생이 안 먹으니 콩은 뺀다. 쌀은 마트에 가서 갓 도정한 최고급 쌀로 사서 물에 7시간 불려서 짓는다. 그러면 훨씬 찰지게 밥이 될 거다.


그런 다음 최대한 정갈하게 상을 차리고 동생이 맛있게 먹는 걸 바라보는 거다. 동생이 밥을 먹다가 만약 나에게,

"이 갈비찜. 무슨 양념을 한 건데 이렇게 부드러워?" 하거나

"된장찌개에 무얼 넣어서 이렇게 맛있어?"

하고 물어보면 동생이 나한테 했던 것처럼, 싱긋 웃으면서 대답을 하지 않는 거다. 그냥 따뜻한 미소만 지을 거다.


그리고 동생에게 한마디만 하고 싶다.

"밥, 한 공기 더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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