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맘껏 욕해도 좋다

나를 욕하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

by 허윤숙

"어휴. 누구랑 만나지?"

딸이 나에게 조언을 구한다. 선배랑 선약이 있는데 모처럼 친구가 보자고 한단다.


선약이 되어 있는 사람을 만나라고 하니,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한다. 그 친구가 오늘 꼭 보잔다.


그럼 선배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친구를 만나라고 하니, 그럼 선배가 기분 나쁠 거라나? 그럼 친구에게 다음에 보자고 말하라고 하니, 친구는 이해 못 할 거란다.(나더러 대체 어쩌라고.)


딸이 내게 조언을 구하는 경우, 하나 같이 이렇다. 이래라. 그러면 그건 이런 문제가 있다. 저래라. 그러면 그건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래서 네가 결정해라 난 모르겠다. 그러면 엄마는 왜 자기 고민에 무성의하냐고 하고. '진퇴양난'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같다. 전쟁 중이 아니라.

마침 외출하려던 터라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빠른 말투로,

"만약 선배에게 사정이 생겨서 오늘 못 만난다고 했는데 화 내면 속이 좁은 선배니까 다음부턴 거리 두고 선배랑 선약이 있어서 친구는 다음에 보자고 했는데 친구가 삐지면 그 친구가 이상한 거야. 왜 약속이 있었는데 불쑥 자기가 시간 난다고 만나쟤? 그다음은 나도 몰라."


딸은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어차피 답은 스스로 정해 놓고 나에게 늘 푸념만 하는 식이다. 딸에게 있어서 나는 그저 감정의 공터다. 자기가 아무 감정이나 아무 말이나 휙 던져놓고 잊어버리는. 그 말로 고민하는 엄마는 신경도 안 쓴다. 사실 나도 이제 고민 같은 건 별로 안 한다.


딸에게 한 마디 덧붙였다.

"네가 지금 그렇게 고민하는 이유가 뭐야? 친구를 만나고 싶은데 선배랑 약속이 있는 거? 그러면 왜 좋아하지도 않는 선배랑 약속을 했어?" 하니,

"그냥."

"그럼 선배가 실망할까 봐 미안한 마음이 큰 거야?" 하니,

"아니. 그렇게 미안하지는 않아. 그럼 나에게 서운해할까 봐 그렇지. 아니면 나 미워할까 봐."


딸이 선배랑 만나고 친구에게 다음에 보자고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 친구가 서운해할까 보다는 그 친구가 자길 미워할 거라는 걱정이 더 크다.


내가 20대였을 때가 떠오른다. 나도 딸 못지않게 결정 장애자였다. 그땐 아주 사소한 것에도 신경이 쓰이고 누가 나를 욕할까 봐 겁이 났다.


하지만 오래 살다 보니 걱정할 게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즘 들어 인터넷 악플러들에 대해 너그러워지는 분위기가 있다. 한 때는 연예인 자살이 악플러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다. 인터넷 문화가 정착되기 전에는 악플이 꽤 치명적으로 느껴지긴 했다.


요즘은 악플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무관심을 든다. 때론 악플도 관심으로 보아 좋게 보기도 한다.


전에 내가 일간지 칼럼에 쓴 글을 보고 누가 악플을 달아놓았다. 악플을 처음 보았을 때 심장이 벌벌 떨렸지만 이내 침착하게 다시 읽어보았다. 그러자 행간이 보였다.

'나는 이 칼럼을 제대로 읽진 않았는데, 아니 읽고 싶지도 않고. 그냥 이런 제목이 맘에 안 들어. 아니, 이 단어 자체가 싫어.'

이런 류의 메시지였다.


그건 그 사람의 성향일 뿐이고, 그 성향을 온라인에 맘껏 배설한 건 그 사람에게 인격적인 문제가 있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자 기분이 나아졌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충고성 악플도 있다. 그런 경우 나에게 도움이 된다.


나에게 욕을 하는 사람으로 세 종류가 있다.

첫째, 내가 잘 못 한 게 없는데 그 사람에게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누구에게나 그러는 사람.

:이런 사람은 건너뛰면 된다. 그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결국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둘째, 내가 잘 못 해서 욕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무척 고마운 사람이다. 단, 내 입에 무척 쓰다. 그래도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


셋째, 내가 잘 못 한 게 없는데 오해해서 욕을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내가 오해를 풀려고 노력하면 된다. 노력했는데도 안 된다면 나랑 인연이 없는 거니 깨끗이 포기한다. 가장 어려운 관계이긴 한데, 그 사람도 알고 보면 피해자다. 상황에 의해서 나 때문에 상처를 받았으니 오해는 반드시 풀어야 한다.

아무리 봐도 이 세 가지 외에는 없는 것 같다. 젊을 땐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경우의 수가 많다고 착각했다.


알고 보니 이렇게나 심플한 것을.


어떤 사람과 문제가 생겼을 때 좋은 관계를 지속하고 싶으면 적어도 두 번째와 세 번째 문제인 경우다. 그땐 내가 고치면 되고 오해는 풀면 된다. 만약 첫 번째 경우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으면 그만이고.


전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모든 사람들 눈에 잘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요즘은 누구에게나 잘 보이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천차만별인데 어떻게 모든 사람 눈에 든단 말인가?


나랑 가치관이 맞는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가치관이 틀린 사람이 나를 좋게 보면 그건 너무 모호한 태도를 취한 것일 수도 있다. 반성해야 한다.


오래전 한 모임에서 힘들어한 적이 있다. 그때는 결혼 전이고 남편도 그 모임 멤버였다. 며칠 전 그 모임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내가 너무 못 어울려서 힘들었다니까 남편이 의외의 말을 했다.

"난 당신이 그 모임에서 잘 어울렸으면 당신을 싫어하게 되었을지도 몰라. 당신이 그 사람들하고 똑같이 보였을 테니까."


내가 그때 억지로라도 잘 지냈으면 남편을 못 만날 뻔했다.


나이가 들면서 좋아지는 게 많지만 가장 좋은 것은 소심함이 사라지는 것. 이제 남의 눈치는 안 본다.


누구든 나를 맘껏 욕해도 좋다. 어차피 셋 중에 하나일 테니까. 원래 못됐거나 나 잘되라고 하는 말이거나 오해했거나. 노력했는데도 인연이 안 되거나 나랑 성향이 틀린 사람은 안 보면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 중에는 사람과 관련된 스트레스가 제일 많다. 이때 이런 식으로 내면의 자유만 확보해 놓아도 인생이 훨씬 심플하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동생에게 차려주고 싶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