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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Aug 07. 2019

나를 맘껏 욕해도 좋다

나를 욕하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

"어휴. 누구랑 만나지?"

딸이 나에게 조언을 구한다. 선배랑 선약이 있는데 모처럼 친구가 보자고 한단다.


선약이 되어 있는 사람을 만나라고 하니,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한다. 그 친구가 오늘 꼭 보잔다.


그럼 선배에게 미안하다고 고 친구를 만나라고 하니, 그럼 선배가 기분 나쁠 거라나? 그럼 친구에게 다음에 보자고 말하라고 하니, 친구는  이해 못 할 거란다.(나더러 대체 어쩌라고.)


딸이 내게 조언을 구하는 경우, 하나 같이 이다. 이래라. 그러면 그건 이런 문제가 있다. 저래라. 그러면 그건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래서 네가 결정해라 난 모르겠다. 그러면 엄마는 왜 자기 고민에 무성의하냐고 하고. '진퇴양난'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같다. 전쟁 중이 아니라.

 

마침 외출하려던 터라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빠른 말투로,

"만약 선배에게 사정이 생겨서 오늘 못 만난다고 했는데 화 내면 속이 좁은 선배니까 다음부턴 거리 두고 선배랑 선약이 있어서 친구는 다음에 보자고 했는데 친구가 삐지면 그 친구가 이상한 거야. 왜 약속이 있었는데 불쑥 자기가 시간 난다고 만나쟤? 그다음은 나도 몰라."


딸은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어차피 답은 스스로 정해 놓고 나에게 늘 푸념만 하는 식이다. 딸에게 있어서 나는 그저 감정의 공터다. 자기가 아무 감정이나 아무 말이나 휙 던져놓고 잊어버리는. 그 말로 고민하는 엄마는 신경도 안 쓴다. 사실 나도 이제 고민 같은 건 별로 안 한다.


그리고 딸에게 한 마디 덧붙인다.

"네가 지금 그렇게 고민하는 이유가 뭐야? 친구를 만나고 싶은데 선배랑 약속이 있는 거? 그러면 왜 좋아하지도 않는 선배랑 약속을 했어?" 하니,

"그냥."

"그럼 선배가 실망할까 봐 미안한 마음이 큰 거야?" 하니,

"아니. 그렇게 미안하지는 않아. 그럼 나에게 서운해할까 봐 그렇지. 아니면 나 미워할까 봐."


딸이 선배랑 만나고 친구에게 다음에 보자고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 친구가 서운해할까 보다는 그 친구가 자길 미워할 거라는 걱정이 더 크다.


내가 20대였을 때가 떠오른다. 나도 딸 못지않게 결정 장애자였다. 그땐 아주 사소한 것에도 신경이 쓰이고 누가 나를 욕할까 봐 겁이 났다.


하지만 오래 살다 보니 그렇게 걱정할 게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즘 들어 인터넷 악플러들에 대해 너그러워지는 분위기가 있다. 한 때는 연예인 자살이 악플러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다. 인터넷 문화가 정착되기 전에는 악플이 꽤 치명적으로 느껴지긴 했다.


요즘은 악플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무관심을 든다. 때론 악플도 관심으로 보아 좋게 보기도 한다.


전에 내가 일간지 칼럼에 쓴 글을 보고 누가 악플을 달아놓았다. 악플을 처음 보았을 때 심장이 벌벌 떨렸지만 이내 침착하게 다시 읽어보았다. 그러자 행간이 보였다.

'나는 이 칼럼을 제대로 읽진 않았는데, 아니 읽고 싶지도 않고. 그냥 이런 제목이 맘에 안 들어. 아니, 이 단어 자체가 싫어.'

이런 류의 메시지였다.


그건 그 사람의 성향일 뿐이고, 그 성향을 온라인에 맘껏 배설한 건 그 사람에게 인격적인 문제가 있는 거다. 그렇게 생각을 하자 기분이 나아졌다.


가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충고성 악플도 있다. 그런 경우 나에게 도움이 된다.


나에게 욕을 하는 사람으로 세 종류가 있다.

첫째, 내가 잘 못 한 게 없는데 그 사람에게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누구에게나 그러는 사람.

:이런 사람은 건너뛰면 된다. 그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결국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둘째, 내가 잘 못 해서 욕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무척 고마운 사람이다. 단,  내 입에 무척 쓰다. 그래도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


셋째, 내가 잘 못 한 게 없는데 오해해서 욕을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내가 오해를 풀려고 노력하면 된다. 노력했는데도 안 된다면 나랑 인연이 없는 거니 깨끗이 포기한다. 가장 어려운 관계이긴 한데, 그 사람도 알고 보면 피해자다. 상황에 의해서 나 때문에 상처를 받았으니 오해는 반드시 풀어야 한다.

 

아무리 봐도 이 세 가지 외에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젊을 땐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다른 무한한 경우의 수가 있다는 착각을 했다. 그래서 인간관계의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 경우, 당황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다.


알고 보니 이렇게나 심플한 것을.


만약 어떤 사람과의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면 적어도 두 번째와 세 번째 문제인 경우다. 그땐 내가 고치면 되고 오해는 풀면 된다. 만약 첫 번째 경우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으면 그만이고.


전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했고 모든 사람들 눈에 잘 보이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내가 누구에게나 잘 보이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천차만별인데 어떻게 모든 사람 눈에 든단 말인가?


나랑 가치관이 맞는 사람이 나를 좋게 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나와 가치관이 틀린 사람이 나를 좋게 보면 그건 내가 너무 모호한 태도를 취한 것일 수도 있다. 반성해야 한다.


오래전 맘에 안 드는 모임에서 힘들어한 적이 있다. 그때는 결혼 전이고 남편도 그 모임 멤버였다. 며칠 전 그 모임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내가 너무 못 어울려서 힘들었다니까 남편이 의외의 말을 했다.

"난 당신이 그 모임에서 잘 어울렸으면 당신을 싫어하게 되었을지도 몰라. 당신이 그 사람들하고 똑같이 보였을 테니까."


내가 그때 억지로라도 잘 지냈으면 남편을 못 만날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못 지낸 게 다행이다.


나이가 들면서 좋아지는 게 많지만 그중 가장 좋은 것은 소심함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제 남의 눈치는 잘 보지 않게 되는 것 같다.


누구든 나를 맘껏 욕해도 좋다. 어차피 셋 중에 하나일 테니까. 원래 못됐거나 나 잘되라고 하는 거나 아니면 오해했거나. 노력했는데도 인연이 안 되거나 나랑 성향이 틀린 사람은 나랑 안 보면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 중에는 사람과 관련된 스트레스가 제일 많다. 이때 이런 식으로 내면의 자유만 확보해 놓아도 인생이 훨씬 심플하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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