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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Aug 08. 2019

나쁜 것만 기억하는 몹쓸 뇌

숨바꼭질에서 술래가 된 것만 기억에 남는 이유

어린아이들이 하는 놀이 중에 숨바꼭질이 있다.  놀이는 역사가 한 참된 것 같다. 준비물이 필요 없고 숨고 찾는 것이 흥미진진하기 때문일까?

 

숨바꼭질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유난히 어리숙했는데 이를 재밌어한 식구들이 놀려먹는 적이 많았다.


어느  초저녁때였다. 숨바꼭질 놀이를 하던 중 내가 술래가 되었는데, 다들 짜고 집 밖으로 나 버린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한 동안 식구들을 찾아 헤맸다.


열심히 찾는데 아무도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다른 형제 같으면 대문 밖으로 나가 보든가 했을 텐데 융통성이 없던 나는 집안에서만 계속 찾았다.


급기야 장독대에 올라가서 항아리 뚜껑도 열어보고 지하실에도 내려가 보았다.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장롱 속 이불을 켜켜이 들여다 보기도 하고, 펌프 속도 들여다보았다.


분명 집안 어디엔가 있을 것 같은데,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다 그만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울면서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쳤다.


숨바꼭질하다가 결국 못 찾으면 술래가 외치는 일종의 포기각서 같은 거였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큰 맘먹고 외친 내 말에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 지났을까?


당황스럽게도, 식구들이 깔깔거리면서 대문 밖에서 하나둘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내 울음은 속으로부터 샘솟아 나듯 더 크게 터져 나왔다.


나중에 식구들이 말해주기를 그 순간이 무척 짧았다고 한다. 하지만 내게는 영겁의 시간이었다.


그때 내가 느낀 건 세상에서 나만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절대 고독감, 그 자체였다. 그 고독감이 짧지만 강렬했던 모양이다.


그 뒤로도 외로울 땐 그 순간이 떠 오른다. 나는 아주 잠시 술래가 되었을 뿐인데. 그리고 나도 어차피 금세 차례가 되어 숨으러 갔을 텐데 말이다.





살면서 술래가 되는 때와 숨을 때가 여러 차례 반복되는 걸 느낀다. 내가 술래일 때는 언제였나? 한창 방황하던 20대였다.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 보려고 그렇게나 찾아다녔다. 처음엔 대학 방송반 하던 때의 기억을 떠 올려 방송국 아나운서 시험에 도전하였다. 하지만 1차만 겨우 붙고 떨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그땐 응시 연령 제한이라는 게 있어서, 단 한 번 만에 응시 기회가 날아가버렸다. 그 외의 여러 도전, 도전들..

 

나중엔 이력서를 다 모으면 산처럼 쌓일 지경이 되어갔다. 이력서와 지기 소개서를 쓰는 일이 마치 수도원에서 고행을 하는 수도사의 일처럼 느껴다. 교사인 친구들이 방학이면 여기저기 놀러 갈 때도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여기저기 이력서를 들고 다니곤 했다.


그때 나에게 직업은 마치 숨바꼭질할 때 나를 속이고 몰래 대문 밖에 숨은 식구들처럼 굴었다. 그리고 나를 대성통곡하게 만드는 것이다. "으앙. 대체 다들 어디로 다 사라진 거야."


하지만 분명 어딘가에 있었다. 나에겐 그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내게 그 순간은 절대로,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면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많은 좌절들 앞에서 그랬던 것 같다.

'나만 왜 항상 술래지?'

'나만 왜 항상 뭐든 찾아 헤매야 하지?'

'나만 왜 항상 을이지?' 하는.


돌이켜 보면 술래가 아니었을 때도 많았다. 단지 내 엉덩이를 숨기느라 몸을 움츠리던, 신나는 순간이 내 기억에서 희미해졌을 뿐이다. 어떤 곳에 숨어야 술래에게 들키지 않을까? 어디에 숨어야 내가 기발한 곳에 숨었다고 나중에 다들 엄지를 추켜들어 줄까? 하고 골몰하던 순간은 기억이 안 난다.


오로지 술래일 때, 잘 못 찾아서 쩔쩔맸던 순간만이 기억이 날 뿐이다.


우리 기억은 이토록 왜곡되기 쉬운 것까? 모든 역사가 그렇고 개인 기억그렇다. 우린 아주 사소한 것 까지도 종종 자신의 주관대로만 기억할 뿐이다.


우리가 '행복하다. 행복하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과정도 이와 같다.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혹시  만들어진 추억에서까지도 나쁜 만을 기억하는, '몹쓸 기억법' 때문은 아닐까?


마치 내가 술래가 되어 쩔쩔매던 순간만을 기억하듯이 말이다. 재밌는 곳에 숨느라고 낄낄거리던 순간은 공기 중으로 증발되어 버린 듯하다.


이럴 땐 우리의 기억력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강렬한 순간만을 기억하는 뇌의 습성을 탓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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