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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l 29. 2019

나팔꽃

'나의 아저씨'에게 드리는 부탁

 내가 어릴 적 대부분 가정집은 아담한 주택이었다. 우리 집에 있던 마당과 장독대, 파란 철제 대문이 떠오른다. 우리 집은 등나무가 마당 전체를 덮고 있었는데, 그 등나무는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구부 정한채로, 그 자리에 있었다. 등나무 옆에는 사각지붕틀이 있어서 등나무 이파리가 계속 이어졌다. 그 잎은 마당 전체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등나무에는 아빠가 그네를 만들어주셨다. 한 낮엔 수시로 등나무 그네에 앉아 동화책을 읽거나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마당 전면에는 작은 화단이 있었고, 그 화단에는 올망졸망 꽃들이 자라고 있었다. 대부분 이름 모를 빨간 꽃, 노란 꽃이었는데 간혹 이름이 있는 것도 보였다. 요즘은 보기 힘든 나팔꽃, 해바라기, 맨드라미, 분꽃 등이다. 이 꽃들은 대부분 키가 작았다. 어린아이가 쭈그리고 앉아서 속닥속닥 속삭이기 딱 좋은 높이로. 그 꽃들은 아침저녁으로 모습이 달랐다. 


 나팔꽃이 제일 신기했다. 아침이 되면 활짝 피었다가 저녁에는 꽃잎을 오므리고 고갤 숙이는 게 아닌가. 꽃잎을 오므리는 시점을 잡고 싶었다. 그래서 잠복근무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 꽃들은 어린애 모르게 일을 해치우는 듯했다.


 소꿉놀이에 쓰이는 꽃도 있었다. 제일 많이 쓰인 게 분꽃이다. 분꽃은 씨앗이 까맣고 단단했다. 그 씨앗을 모아 벽돌에 올리고 돌멩이로 밀가루 빻듯 빻았다. 그러면 하얀 가루가 얻어졌다. 그 가루를 얼굴에 분처럼 발랐다. 그래서 분꽃인가 보다 했다. 

 

 맨드라미는 꼬불꼬불 생긴 꽃잎이 마치 미역 같아 보였다. 소꿉놀이할 때 미역국을 끓인다면서 칼로 잘랐던 기억이 난다. 칼로 자를 때마다 피처럼 빨간 즙이 손에 뚝뚝 묻어나곤 했다. 까슬까슬하고 두껍고, 색깔도 예쁘지 않았다. 


 해바라기에서는 씨앗을 얻었다. 꽃송이는 몇 개 안되었지만, 특별히 크고 두꺼운 얼굴을 가진 해바라기에선 많은 씨앗이 나왔다. 그 씨앗을 햇볕에 말려 간식처럼 먹었다. 해바라기는 결국 마지막까지 해를 보다 가는 셈이다.


  나는 해바라기가 해를 향해 자라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하루는 한 해바라기를 골라 얼굴 방향을 담벼락 어두운 쪽으로 돌려 보았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금 해를 향해 고갤 내미는 게 아닌가. 고집이 세어 보이기도 했다.


 이 꽃들은 향기가 없었나 보다. 추억을 떠올리면 냄새부터 떠오르곤 하는데, 그 꽃들은 아무런 냄새가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색깔이 화려하거나 생김이 곱지 않았다. 맨드라미는 꽃이라고 하기 엔 많이 부족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가을이면 길가에 한 줄로 피어나던 코스모스도 향기가 기억나지 않는다. 


 IMF사태 이후 우리나라 종자시장이 죽었다고 한다. 다국적 종자 회사가 우리나라 종자 회사를 거의 다 인수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는 농사 씨앗마저 사다 심어야 한다. 그 씨앗이 어떤 처리를 거쳤는지 알 수도 없다. 유전자 조작을 검사하는 시스템도 의심스럽다.


 어릴 적 가을에 외할머니 집에 가면 마당에서 여러 가지 씨앗을 볼 수 있었다. 옥수수 알맹이는 하나하나를 따서 햇볕에 말렸다. 그 씨앗은 다음 해에 뿌릴 거라고 하셨다. 이상했다. 우리 집 마당에 있는 맨드라미나 나팔꽃은 씨앗을 받아놓지도 않는데 다음 해 또다시 방긋 인사를 하곤 했으니까. 생각해보니 그 꽃들에겐 물을 준 기억이 없다. 땅에 거름을 준 적 도, 벌레를 잡아준 적도 없다. 햇빛 양을 조절하면서 막을 씌운다든가 일부러 밝게 해 준 적도 없다.


 그들은 알아서 매년 꽃을 피웠다. 꽃을 피우고 무럭무럭 자라고, 또다시 시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꽃들이 눈에 띄질 않는다. 분꽃이나 맨드라미 꽃을 아는 아이들도 없다. 꽃가게에서 파는 꽃들은 장미나 백합 등 색깔이 화려하고 향기가 강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집 꽃들은 씨앗을 받아주거나 물을 주지 않아도 잘 자랐다. 향기가 없어서일까. 주변에 벌도 오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꿋꿋이 땅을 뚫고 나오는 그 생명력, 그 수수한 외모와 소박한 향만을 가지고 매일 꽃잎을 피우고 닫곤 했다.


 나는 그 꽃들에게 매일 인사를 했다. 특히 제일 좋아하던 나팔꽃에게 매일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하던 꼬마. 저녁만 되면 슬펐다. 나팔꽃이 머리를 푹 수그린 것이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갤 빳빳이 드니 신기할 수밖에.


 이제 그 꽃들 키를 훌쩍 넘어설 만큼 커다란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도, 그 꽃들이 무척 그립다. 그 꽃들이 또다시 말하는 듯 하 다.

"꼬마 아가씨, 안녕. 너무 슬퍼하지 마. 나는 아주 사라지는 게 아니야. 잠깐 고갤 숙일 뿐이지. 내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꽃잎을 활짝 열어서 보여줄게. 투명한 이슬까지 그 안에 담뿍 머금고 말이야. 내일은 꽃잎도 더 커져 있을 거야."


 그때마다 나는 대답했다. 약간은 훌쩍이면서,

"나팔꽃 아저씨.(나는 나팔꽃을 남성화했다. 나팔꽃 모양이 트럼펫을 닮았다고 생각해서인가보다. 트럼펫을 부는 아저씨가 그 꽃잎에 숨어 사는 것처럼 느꼈다.) 아저씨. 오늘 저랑 재미있게 놀아줘서 고마워요. 내일은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들려줄게요. 아빠가 동화책을 이만큼 사 오셨거든요. 나는 이제 밥 먹으러 가요. 그런데 밥을 먹기가 너무 싫어요. 저는 그래서 오늘 밥을 딱 한 개만 먹을 거예요. 저는 과자랑 사탕만 먹고살고 싶은데 그게 안 되나 봐요. 그럼 더 씩씩하고 힘이 세질 거 같은데 말이에요. 그럼 내일 봐요. 아저씨. 내일도 꼭 살아나셔야 해요. 안 그럼 너무 슬플 거 같아요."


 이런저런 이야기로 식물과 대화를 하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요즘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식물도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 식물에게 칭찬을 해주고 사랑을 주면 잘 자라고 욕을 하면 안 자란단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 마당에 있는 식물들은 나랑 수없이 대화했다. 내 사랑을 듬뿍 받아서 더 잘 자란 것일까? 내 행동이 다른 형제들에겐 과장되었던 모양이다.

"언니는 무슨 꽃한테 말을 걸어?" 하고 핀잔 주기도.


 나에게 감성이라는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꽃들 덕분이다. 이름 모를 꽃들, 이름이 있지만 주목받지 못한 꽃들. 마치 건강하고 연기를 잘할 자신이 있는데 아무도 캐스팅해주지 않는 무명배우들 같다. 


 그 꽃들이 그립다. 작은 시골 마을에 가면 가끔 눈에 띄곤 하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천연기념물로써의 가치가 없어서 보존 대상이 되지도 못하나 보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우주 대스타다. 어린 꼬마에게 '희망'이라는 게 뭔지 일찌감치 가르쳐준 스승이기 때문이다. 


 겉으론 어른의 탈을 쓴, 사실은 한참이나 어린 나. 힘들면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아 어리광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는 한 아저씨를 소환하는 거다. "나팔꽃 아저씨. 한 번만, 딱 한 번만 얼굴을 내밀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럼, 나 다시 힘차게 달려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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