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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Aug 19. 2019

부엌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 주었다.

한때 우리 남편은 밥을 먹을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했다.

"결혼하면 밥 먹을 때 목숨까지 걸어야 되는 줄은 몰랐어."

남편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주범은 미니주스병이었다. 잡지에 인테리어 팁으로 빈 미니주스병을 양념통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나온 것. 그게 예뻐 보이길래 주스를 사다 열심히 마시고 양념병으로 썼다. 리본까지 매달고. 문제는 양념의 이름을 안 써 놓은 것. 게다가 주방세제까지 담아 놓았다.


하루는 김치찌개를 만드는데 끓일수록 거품이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찌개 거품이려니 했는데 점점 부풀어올라 넘쳐날 판이었다. 얼른 불을 끄고 사태 파악에 나섰다. 그리고 곧 알아냈다. 내가 맛술이라고 넣은 것이 주방세제였다는 것을. 색깔이 누런 게 비슷했다. 이름이 안 붙어있으니 알 턱이 있나?


그 뒤로도 참사는 계속 일어났다. 하루는 해물탕을 끓이는데 시큼한 맛이 나는 것이다. 알고 보니 이번에도 맛술이 문제였다. 바로 비슷하게 누런 색깔인 식초를 넣은 것.


할머니들이 쥐약 섞은 밀가루로 칼국수를 해서 드시고 사망한 적이 있지만, 그 당시에도 '음식 원료 오인 사건'이 심심찮게 나오곤 했다. 남편은 그런 사건이 떠올랐나 보다.


허준의 '동의보감' 드라마가 방영될 때였다. 역적이 임금을 독살하려는 것에 대비해서 기미상궁이 왕의 음식 맛을 보는 장면이 나왔다. 남편이 그 장면을 보다가 말했다. 자기는 왕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고.


신혼 집들이 때였다. 남편 친구들이 11명 온다고 했다. 나랑 남편까지 해서 총 13명의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요리에 서툰 나는 일주일 전부터 벼락치기 공부에 들어갔다.


문제는 계량이었다. 남편이랑 밥을 해 먹을 땐 2인분이라 쉬웠다. 그런데 곱하는 숫자가 크게 늘어나고 하필이면 홀수라 처음부터 헷갈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원래부터 자연수와 분수(분자가 1이고 분모가 자연수인 분수)로도 모자라서 대분수(자연수와 분수를 합친 것)까지 등장하는 일반적인 레시피가 내겐 너무 시크해 보였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었다.- 설탕 2t, 참기름 1/2t, 간장 2와 1/2T  

평소 2인분만 할 때는 간단했다. 불고기 2인분을 양념한다 하면 분수에 2를 곱하면 대충 자연수가 나오니.

 

그런데 곱하기 13이라니. 수포자(수학 포기자)인 내가 계산기까지 동원해서 며칠 동안 견적서를 뽑았다. 결국 분수를 떼어버리지 못 한채 장을 보러 갔고 장을 보는 내내 골치가 아팠다. 아무튼 어찌어찌해서 집들이 음식상을 하나 가득 차려냈다.


그런데 눈치 없는 남편 후배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계속 딴지를 걸었다.

"그런데 형수님. 이 음식은 이름이 뭐예요?"

음식마다 이런 식으로 매우 궁금해하면서 물어보는 것이다. 반드시 그 음식물의 정체는 알고 먹어야겠다는 식으로.


그토록 나에게 주방은 늘 공포의 대상이었다. 수학공식 같고 물리, 화학 실험실 같은 곳. 거기에다가 생물학적인 근거(내가 왜 하필 여자인가?) 또는 법적인 근거(여자만 요리를 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는가?)가 심히 의심스러운 나날들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부엌은 수학 공식은커녕 점점 행위예술의 장소가 되어간다. 어제 돼지불고기 양념을 하는 순간이었다. 남편이 마침 부엌에 있길래 말로 요리를 시전했다. 남편에게 참기름하고 설탕을 조금 넣으라고 했다. 남편이 조금이 얼마냐고 해서,

"설탕 봉지를 한 손으로 잡고 반 바퀴만 돌려."(예쁜 양념통은 어디로?)

참기름은 얼마나 넣느냐길래,

"참기름 뚜껑 열고 고개 한 번 ."(기름 종류는 원래 담았던 병에 그냥 놔두는 게 좋다는 변명)


내 말을 그대로 따른 남편. 그 결과물인 돼지불고기는 아주 훌륭했다.


이제 내게 주방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아주 만만한 대상이 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남자도 갱년기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해주는 요즘 우리 남편.


친구랑 만나서 대화하다가 핸드폰이 울렸다. 택배기사분이었다. 내가 문 앞에 놓으시라고 하니, 친구가 무슨 물건이냐고 잃어버리면 어쩌니 한다. 그래서 그냥 주물 프라이팬이라고 했다. 친구가 그 무거운 걸 어떻게 쓰냐고 하길래 남편이 쓸 거라서 괜찮다고 말했다.


친구가 놀랐다. 우리 남편을 연애시절부터 보아왔기 때문. 그 덩치 크고 과묵한 사람이 자기가 쓰려고 프라이팬을, 그것도 주물 프라이팬을 택배로 주문하다니 하면서.


남편은 요즘 그릇에 빠져있다. 지나가다 예쁜 그릇을 보면 사고 싶어 한다. 게다가 냄비 욕심은 또 얼마나 많은지. 웍인지 뭔지 중국 프라이팬을 사고 주물냄비도 사고 주물 프라이팬도 다 따로 산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 집은 제과점에 안 간지 오래되었다. 남편이 머핀이며 식빵, 쿠키 등을 직접 해준다. 여기서도 그릇 욕심이 생기나 보다. 어제저녁엔 핸드폰으로 다른 크기의 머핀 틀, 식빵 틀을 하나씩 더 주문했다.


이제 주방은 나만의 장소가 아니다. 아들도 요리에 관심이 많다. 특히 스파게티를 소스별로 이것저것 사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요리해먹는다.


신혼시절 나를 힘들게 했던 부엌. 나를 고문하던, 수학 문제 같고 물리, 화학 실험실 같던 주방이 지금은 가족 공용공간이 되었다. 서로 자기만의 요리법을 개발하고 멋진 셰프 코스프레하는 장이다.


내게는 그저 부엌이, 오랜 시간 그 자리에 버티어 주어 고맙다. 서툰 새내기 주부의 실수에도 늘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으니까. 금세 받아주고 토닥이곤 했으니까.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지. 처음엔 다 그런 거야.' 하면서.

부엌이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오는 동안,



'가족'이라는 든든한 금줄이
그 둘레를 에워싸고,
소복소복
이야기를 쌓아나가고 있다.  



부엌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던 내가 이제는 부엌 위에서 작두를 탄다.(정도까지는 아니고...)

단, 지금까지도 남편에게는 내가 차린 밥을 먹을 때마다, '오늘은 또 음식에 뭐가 들어갔나?' 뒤적이는 습관이 남아있다. 한편 그런 생각이 든다.

남편이 모험을 기꺼이 감수해 준 덕분에 내게 지금 이런 부엌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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