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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Dec 12. 2019

나는 지금 어떤 길 위에 서있나?

인생을 높고 길게

교대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학교 발령받았을 때가 생각난다. 그 학교는 외진 시골마을에 있었는데 말 그대로 논두렁 밭두렁 안에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자취방을 얻어서 혼자 생활했다.


문제는 아침마다 학교 가는 길이 헷갈리는 거다.  헷갈려서 까딱 잘못 들어서면 어두컴컴한 숲이 나왔다.


할 수 없이 아이들이 가는 방향을 보고 따라갔다. 늦을 때가 문제였다. 그땐 할 수 없이 아이들에게 학교 가는 길을 물어 물어갔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학교 가는 길을 묻다니.


이는 딱 20대 방황하던 내 모습이다.


 




나는 길치 수준이다. 한번 방향을 잃으면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공황상태가 된다.


성경에 모세라는 인물이 있다. 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나온다. 이집트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길이 얼마나 멀길래 40년이나 걸리나 했다. 당황스럽게도 며칠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다.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모세가 40년을 헤맨 이유는  남자여서라고. 남자들은 길 물어보는 걸 싫어한다. 요즘은 내비게이션이 나와서 다행이지만, 우리 남편만 해도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길을 물어보지 않았다.


희미한 옛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답이 나온다. 동굴 시절 남자들은 주로 밖에서 사냥을 하고 여자들은 동굴 안에서 아이들과 생활했다. 그때 빛도 잘 들지 않는 동굴 안에서 여자들은 무얼 했을까? 주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남자들은 들판에 나가 하루 종일 먹을 것을 구해와야 했다. 동물을 포획하거나 나무 위에 올라가서 열매를 따거나. 그 와중에 수다를 떨 겨를은 없다. 목숨을 건 사투를 벌여야 할 때도 있으니. 즉 대화를 통해 무얼 알아내거나 하는데 서툴다.


인생은 줄곧 길을 찾는 과정이다. 불안한 마음에 그 과정을 알려주는 도표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면 이때쯤 집을 장만해야 하고 이때쯤 아이를 낳아야 하고.


처음엔 인생이란 길을 쭉 뻗은 도표로 인식했다. 그 길을 차근차근 밟아 가야 할 것 같은. 그러나 그 길은 말랑말랑한 화풍의 회화에 가까운 듯하다. 


마인드 맵처럼 사방으로 뻗기도 하고 한쪽으로 쭉 가기도 하다가 때론 뒤로 돌기도 하고. 또 빙글빙글 제자리에서 맴돌기도 하는, 추상화 말이다.


10년 전 상해에서 사업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 과정이 허탈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독특한 그림 한 귀퉁이 장면으로 남아있다. 그때 앞으로만 뻗어나갔으면 어땠을까? 아마 내 인생은 특징도 감동도 없는 복사본 그림이 되었을 것이다.


길을 걷는 동안은
그 길이 어떤 그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초조하다.

'오두막'이란 영화에서 주인공은 성령님의 안내로 숲 속에 들어선다.

숲 속은 칡덩굴처럼 엉켜 있다. 그때 카메라 앵글이 갑자기 하늘로 올라간다. 그러자 그 숲 전체가 아름다운 기하학무늬로 보인 것.

땅에서는 엉망진창이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질서가 있고, 심지어 아름다운 회화였던 것이다.


우리 눈높이는 겨우 1.5미터 정도다. 그 높이에선 제대로 보이는 게 없다. 우리 키 높이에 모든 것이 갇혀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에  오르거나 비행기를 타면 시야가 넓어진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뷰를 조감도(버드아이 뷰)라고 부르는 이유는 새가 하늘에서 늘 이런 시선으로 보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어느 길 위에 서있나?




곧을 수도, 꼬불꼬불한 길일 수도 있다.

혹 숲에 가려 안 보이거나 다시 뒤로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중으로 올라가서 그 길을 보면 된다.

그럼 어떤 길이라도 용납이 된다.


어차피 지금은 그림을 그리는 중이니까.


그 그림이 곧고 길기만 하다면 너무 지루하지 않을까?


때론 추상화 같고 기하학적인 무늬 같기도 한 그 길.


그 길을, 

나는 지금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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