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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Dec 06. 2019

생각도 띄어쓰기할 것!

뭐든 한데 섞으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요.

쓰레기 분리수거할 때마다 분리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우리 아파트는 일요일마다 분리수거를 하는데 평소 제대로 분리를 해 놓지 않아 다시 손 봐야 할 때가 많다. 막상 분리많지 않은데 무질서하게 쌓아놓으면 많아 보인다. 그걸 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평소 칸칸에 나누어 놓으면 될 것을.






얼마 전 잠시 6학년 담임을 맡았다. 담임교사가 상을 당서였다. 그런데 하필 담임을 맡은 첫날이 에버랜드로 현장체험학습 가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오기 시작했다. 폭우 아니라 취소되지는 않았지만 안전사고가 염려되었다. 바닥이 미끌거려 낙상사고가 날 수 있으니까. 특히 에버랜드에서 나눠주는 우비는 길이가 길어 키 작은 아이들에게는 바닥에 끌릴 것 같았다. 그래서 손으로 대충 밑단을 잘라주었다.


그래도 안심이 안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야외에 나온 아이들이 흥분해서 뛰어다니다가 집단으로 넘어지면 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다.


초등학교에선 예기치 못한 안전사고가 일어나기 일쑤다.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아이들의 특성상. 그래서 아이들이 모둠별로 뭉쳐 다니도록 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찾아오라고 장소도 알려주었다.


특히 내가 담임이 아니니 아이들 특성을 파악하지 못해 이래저래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점심시간에 한 남학생이 헐레벌떡 뛰어 왔다. 그런데 표정이 심상치 않다. 불길했다.


그 남학생은 아주 큰일이 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순간 일이 제대로 일어났구나 싶었다. 속으로 상상했다. 예상대로 낙상사고가 집단으로 일어난 걸까? 한 아이가 바닥에 미끄러지며 머리를 크게 다친 건 아닐까?


갑자기 영화 '7번 방의 선물'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예슬이 아빠가 누명을 쓴 이유는 얼음판에서 아이가 미끄러졌 기온이 올라가면서 살인자(얼음판)는 햇빛에 증발된다. 그러면 옆에 있던 사람이 누명 쓰기 십상이다.


나도 빗물 때문에 이렇게 애를 먹을 줄이야. 해가 나면 비도 증발될 텐데. 갑자기 호흡이 어려울 만큼 극도로 고통스러웠다. 담임이 없을 때 하필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그런 생각을 하 중 남학생이 숨을 거칠게 고르며 속사포처럼 말했다.

"선생님. 우리 반 애들 모두 다쳤어요."

깊은 한숨이 바닥에서부터 흘러나왔다. '맞는구나...'

하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아니 뭐라고? 모두 다쳤다고? 어디서?" 그러자,

"저는 모르죠. 다쳤으니까요."

"뭐라고? 어딜 다쳤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다쳤는지 알아?"

그러자 남학생은

"네? 뭐라고요?" 하면서 머리를 좌우로 갸우뚱했다.

그러더니 숨을 고르며 천천히 말했다.

"아니, 애들이 날 놔두고 다 튀었다고요."

그제야 이해가 갔다. 혀가 짧은 그 남학생은

'ㅌ'과 'ㅊ' 발음이 부정확했던 것이다.


발음은 그럴 수 있다 치자. 여기서 핵심은 따로 있었다. 바로 띄어쓰기다.

만약 남학생이

"선생님. 애들이  모두 다 튀었어요."라고 했으면 아무리 발음이 나빠도 알아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남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애들이모두다튀었어요."

숨이 헐떡 거려 띄어쓰기가 안 된 것이다.


덕분에 나는 잠시지만 쓰디쓴 지옥을 경험해야 했다.


말에도 글에도 이렇듯 띄어쓰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외에도 진짜 띄어 써야 할 것들은 많다.

즉 쓸데없는 들로부터 나를 띄어서 쓰기다.

가령 집안일을 할 때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적어도 이 부분은 연구가 필요하다.

뭐냐면 군대만 갔다 와도 남자들이 여자보다 살림의 기본기가 강하다는 것.

요리를 비롯해서 청소 정리 정돈 등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인다.

이는 생래적으로 여자보다 '생각 띄어쓰기'를 잘하는 남자들의 특징 때문인 듯하다.

남자들은 가령 설거지와 빨래 청소 등을 해야 할 때 순서대로 척척 해낸다.

하나 할 땐 하나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들은 나만 해도 청소를 하다가 갑자기 저녁 식사 준비로 마음이 조급해져서 쌀을 씻고

다시 빨래를 돌렸다가 오는 길에 거실 리모컨이 보이면 들어서 제자리에 갖다 두고

다시 부엌으로 갔다가...


한마디로 우왕좌왕한다.

그러면서 또 머릿속은 저녁 반찬거리 문제로 걱정이 한가득이다.

또 갑자기 아이들 일이 궁금해진다.

오늘은 어느 학원에 갔지? 그럼 몇 시에 오지?부터 저녁은 언제 먹더라?


-이래저래복잡한머릿속은이미청소빨래저녁식사준비아이들스케줄확인장보기까지다끝낸피곤하기그지없다-


실제로는 겨우 빨래 돌리고 쌀 씻어 놓은 게 전부인데.


생각을 제대로 띄어쓰기하지 않은 까닭이다.


글씨나 말만 띄어 쓰는 게 아니다.


특히 요즘 정치 쪽이 그런 듯.

제발 자기 당 이익과 국민들의 이익,

국제 관계 속 국익과 자신의 이익을 띄어 쓰면 좋겠다.

쉼표, 마침표, 띄어쓰기도 없이

밀가루 반죽처럼 하나로 뭉쳐서 굴리지 말고. 제발 좀.



이번 주 내내 우리 집 쓰레기 분리수거를 비교적 철저히 했다.

그랬더니...


이번 주 일요일이 마냥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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