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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Sep 20. 2019

총, 균, 쇠

인생을 좀 더 길게, 크게 보게 만드는 책

인류 역사 1만 3천여 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째서 세계의 부는 대륙에 따라 차이가 날까? 어떤 나라는 비만치료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데 어떤 나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이 책은 이에 대해 세세한 설명과 예시 자료를 곁들여 대답하고 있다.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원래 조류를 연구하던 미국 생물학자였다. 새 연구로 뉴기니에 있으면서 원주민들과 친해진 저자는 아직도 석기시대에 사는 원주민들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다가 얄리라는 원주민이 하는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왜 그들은 서양인들처럼 다양한 문물을 접하지 못했나? 한마디로 왜 그들은 가난한가?






'제레드 다이아몬드', 이름부터 반짝인다.

이 책은 작년에 반쯤 읽다가 덮어 두었다. 처음엔 신선하다가 계속 아는 내용만 나오는 것 같아서. 하지만 좋은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른 감흥을 준다. 나머지 반절을 읽으면서 난 사랑에 빠져버렸다. 제리(저자의 애칭. 내 맘대로 지음.)라는 사람과. 이토록 휴머니스트라니! 하면서.


마치 전교 1등 범생이가 전교 꼴찌 친구를 위해 수능을 포기하고 자기가 왜 1등이고 친구는 꼴등일 수밖에 없는지 13년 동안 연구하는 꼴이다. 그저 친구가 낙담하는 딱 한마디를 듣고서.

"나는 왜 너처럼 1등을 못 하는 거지? 너 나랑 같이 컸잖아. 어릴 땐 내가 너 막 때리고 다녔는데. 한글도 내가 먼저 떼었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성적에서 차이가 나지?"


다른 범생이들 같으면,

"그거야.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게 반은 되고 나머진 할아버지의 재력, 또 엄마의 치맛바람, 아빠의 인맥 뭐 이런 걸로 잘하는 거지."

하고 말 텐데.


제레드 다이아몬드 이에 사뭇 동어반복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자세한 근거를 들어 증명한다. 예를 들어, 유럽이 일찌감치 제국을 형성한 데는 지형이 한몫했다. 동서로 긴 모양은 위도 차이가 나지 않으므로 농사짓기에 유리했고 그로 인해 인구증가가 쉬웠다.


그럼 왜 같은 지형인 중국은 제국화 되지 않았느냐에 대해서, 중국은 일찌감치 중앙집권적인 통치체제가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나라별 경쟁구도가 강했던 유럽에 비해 발전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이 책을 읽기에 앞서 읽었던 유발 하라리 책들과 겹치는 부분이 많은데 그건 유발 하라리가 이 책을 읽고 영감을 얻은 덕분이다. 유발 하라리 문체가 더 깔끔하고 유려한 덕분에 교과서 같은 이 책보다는 사피엔스가 읽기는 더 재밌다.


이 책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아프리카인들이 유럽인들에게,

"지금은 네가 공부 잘하지만 초등학교 때 내가 너보다 공부 더 잘했어. 까불지 마."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살아온 기간은 어느 대륙보 길다. 우리의 먼 조상은 약 7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태어났고 해부학적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도 그곳에서 처음 태어났다고 본다. 서구인들이 노예로 팔아서 부를 축적하던 아프리카인들이 그들의 조상일지도 모른다니. 새롭고 흥미롭다.


특히 한국인들이 귀가 쫑긋해질 만한 부분이 많다. 한글의 독창성, 우수성에 대한 극찬도 그렇고 일본에 관한 내용이 특히 그렇다.


증보판에는 일본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들어 있다. 처음 책을 냈을 때 일본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기도  했고, 자존심 강한 일본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쓰지 못한 내용이 많다.


하지만 '조몬인'이라는 일본인 조상에 대 최신 연구가 나오면서 일본의 자존심까지 세워주면서 슬쩍 자기 소신을 끼워 놓는다. 일찍부터 문명이 발달했던 조몬인이 일본인 조상이라고. 하지만 일본은 한국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심지어 한국과 일본은 원래 쌍둥이 형제였다 말에 이른다. 같은 성장기를 보내다 헤어진 것이라고.


언어적으로 볼 때도 그렇다. 현재 일본어와 한국어는 15% 정도밖에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현재 한국어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고구려, 백제 언어가 신라어에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대 언어인 고구려 언어가 현재 일본어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 고대한국에서 건너간 고구려인들부터 일본인에 합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책 전반에 걸쳐 저자에게서 인간미가 철철 흐른다. 전 지구적인  불평등에 대해 기득권 나라 국민으로서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미안해한다.


그는 최초로 이 질문을 던진 얄리에 대한 대답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대륙간 사람들이 경험한 장기간의 역사가 서로 크게 달라진 까닭은 그 사람들의 타고난 유전자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의 차이 때문이었다고. 그 차이는 크게 네 가지로 말할 수 있다.


1. 가축화 작물화의 재료인 야생동식물의 대륙간 차이

2. 대륙의 모양 차이

-유라시아 대륙은 가로로 길어서 다른 대륙에 비해 위도 차이에 따른 온도 차이가 적다.

상대적으로 인구증가에 유리하고 문물이 전파되는 속도가 빠르다.


3. 지리적인 고립도 차이

-가축 작물과 기술 확산에 영향을 줌.

-바다나 산맥 등 지리적인 요건으로 장애물이 있으면 확산이 힘듦.


4. 대륙의 넓이 차이-

-발명가 수에 있어서 유리함.

-경쟁하는 사회 수도 많음.

-도입할 수 있는 혁신의 수도 많음.


특히 가장 뒤처졌던 유럽이 가장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로,

-상인계급과 자본주의가 발달함.

-발명품, 특허권을 보호했고, 절대군주나 무거운 세금이 없었음.

-경험주의적 탐구정신을 중시하는 그리스적 유대교적 기독교적 전통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가축화 작물화에 적합한 동식물이 집중되어 있어서 다른 곳보다 몇천 년 일찍 출발할 수 있었으나 유럽에 추월당한 후에는 이점이 없었음.


여러모로 지금 잘난척하는 서구인들에게 한방 먹이는 책이다. 너네가 언제부터 잘살았다고 그렇게 까부냐? 인류 전체로 보면 지금은 아주 아주 짧은 기간이다. 앞으로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는 모른다고.


이를 작게 축소해보면 한 민족, 한 국가, 더 작게 보면 한 인간의 일생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은 어차피 흥망성쇠의 반복이라는 것. 그 흥망성쇠에는 어쩔 수 없는 환경 요인과 타인 방해와 본인 의지가 묘하게 결합해서 일어난다는 것. 유전자적인 요소는 아주 적다는 것. 그래서 날 때부터 결정된 것은 없다는 것.


그래서 내게 인생을 조금 더 멀리, 크게 내다보고 의연해지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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