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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Oct 22. 2019

홧김에 서방질? 아니 홧김에 덕질!

이제 우리 사회는 선한 영향력을 중시하게 되었다.

현재 인기 고공 중인 방탄소년단을 키운 방시혁 대표는 나에게 덕질의 시작과 끝을 만들어준 사람이다.


7,8년 전이다.  당시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이 여기저기 생기고 있었는데 연예인에게 관심이 없던 내가 어느 날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게 되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오디션 대상인 가수가 아니라 심사자였다. 한 심사자(방시혁 대표)가 하던 말이 내 가슴에 박혔다.

"노래도 잘하고 외모도 좋은데 모두 평균 이하예요. 그리고 노래가 너무 착해요."


노래나 매력이 뛰어나지 않다는 건 이해가 되지만 노래가 너무 착해서 안된다는 건 또 뭔가?

노래는 그 사람 자체를 반영하기 쉽다. 나쁜 사람은 나쁜 노래를 만들고 착한 사람은 착한 노랠 만든다. 그럼 나쁜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인가? 실제로 그는 당시 '나쁜 남자'라는 제목의 노래도 만들었다.


그 당시엔 나쁜 남자가 대세였다. 아이돌이 한창 인기였고 남자 아이돌들은 무대에서 아이라인을 짙게 그리고, 웃통을 훌렁훌렁 잘도 벗었다. 걸그룹 들은 하의가 실종되고 있었고.


한 기획사 대표는 대놓고 말했다. 무대 위에선 좀 못되어져야 한다고. 못되었다는 말은 무언가? 자신만만한 태도를 말하기도 하지만, 착한 품성 같은 건 오히려 거 추장 스러 우니 벗어던지고 좀 시크하고 자기만 아는 캐릭터, 한마디로 나쁜 남자, 나쁜 여자가 되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런 걸 단지 음악적인 코드 내지는 예술에 필요한 액세서리처럼 치부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 눈엔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내가 학교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고루해진 건가?


그들 무대외설스럽고 사악한 이미지가 있었다. 이는 주 팬층인 10대 청소년들에게 그대로 날아가 꽂혔다.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자꾸 졸라서 뮤직비디오를 틀어준 적이 있다. 그 내용은 때리고 피 흘리고 불나고, 옷을 벗는 등등 악마적인 코드로 가득했다. 그 상징성을 풀어놓은 블로그도 많았는데 진짜인지 모르나 음울하고 악마적인 코드다.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너희들은 저 노래의 가사가 뭔지 아니? 아님 뮤직비디오 내용이 뭔지 아니? 하고 물어보면, 대부분

"아뇨? 그런 거 물라요. 그냥 멋있잖아요. 노래가 신나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서 대부분 폭력성이 보였다.


방시혁 대표가 한 말을 듣고 덕질이 시작되었다는 건 이 현상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가 그 당시 시류를 반영한 말을 한 거라서. 게다가 나에겐 트라우마가 있었다.


아주 어릴 적 부모님이 강냉이를 한 바가지 먹으라고 주셨는데 아이들 준다고 밖으로 가지고 나간 것이다. 그때 동네 아이들이 다 몰려와서 순식간에 먹어버렸다. 당시엔 엄마가 없거나 가난한 아이들이 많았다. 그 아이들에게 주는 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빈 바가지를 들고 들어오니 식구들이 나무란 것이다. 또 순둥이가 나가서 다 퍼주고 왔다고. 그 뒤로 나에게 많은 음식을 한꺼번에 주지 않았다.


식구들은 나를 미련한 곰 같다고 했다. 부모님은 질책과 덕담이 묘하게 섞인 말을 종종 하셨다. 나는 너무 맥없이 착해서 탈이라고. 그 말이 얼마나 듣기 싫었는지. 그 뒤로 착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런데 커서 보니 착한 건 나쁜 게 아니었다. 그저 사리분별 못하게 착한 게 나쁜 거지. 착한데 인격이 받쳐주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그때처럼 착하지는 않지만 착함에 대한 트라우마도 없다. 그리고 착한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착하다'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퇴출된 지 오래되었다. 대신 좀 있어 보이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로 뒤바뀌었다. 둘은 뭐가 다른가?


왠지 착하다는 말은 한정치산자나 금치산자 느낌이 나서 일까? 자기 판단 없이 휘둘리는 느낌이 들어서? '선하다'는 말은 '착하다'는 말의 한자표현일 뿐이다. 거기에 '인플루언서' 가치를 살짝 얹는다.


선한 영향력이라... 어떤가? 이제 제법 있어 보이는가? 착하긴 하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착할 거야. 절대 남에게 휘둘리는 착함이 아니라. 그 착함은 기부의 형태이기도 하지. 게다가 그 기부는 남에게 나비효과까지 일으켜. 방탄을 봐, 그들이 최근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일으킨 돌풍으로 한국어 배운다고 난리잖아? 이 효과는 머잖아 사우디 여성 인권 문제 해결에까지 이르게 될걸? 하고 말이다.


어쨌든 나는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홧김에 덕질을 하게 되었다. 바로 방시혁 대표가 착하다고 떨어뜨린 가수를. 그가 착해도 성공할 수 있단 걸 보여줄 테다 하고는. 그리고 그 뒤로도 계속 착해 보이는 가수만 나오면 마구 팬질을 했다. 그리고 대부분 크게 성공하고 있다.



트렌드는 이제 연예인의 품성에도 작용하는가? 최근 못된 무대매너를 강조하던 회사의 가수들은 줄줄이 문제를 일으켰다. 대신 인성이 좋은 가수는 오래도록 각광받는 추세다.


아이러니한 것은 방시혁 대표가 키운 방탄소년단의 인기 요인 중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들이 '애들이 착해서'란다. 혹시 이미지만 그런 거 아니냐고? 이건 친한 친구에게서 직접 들은 말이니 믿을 만하다.(그 친구는 우리나라 유명 밴드 멤버 중 하나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방탄 아이들은 진짜로 착하다고.


방시혁 대표가 변덕을 부린 걸까? 아니다. 그는 트렌드를 따를 뿐이다. 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한 그답게 시대가 원하는 미학을 읽고 있을 뿐이다.


방탄소년단이 춤을 추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는 사람이 많다. 그들이 연습하면서 흘린 땀이 눈에 보이고 우릴 행복하게 해 주려는 진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노래나 춤이 착한 게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노래가 너무 착해서 싫다고 말했던 방시혁 대표는 어디로 간 것일까?


아름다울 수 있다. 착해도 신날 수 있다. 인성과 상관없어 보이는 무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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