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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Oct 29. 2019

현대판 효도의 끝판왕

부모님께 효도, 어디까지 해 봤니?

어릴 적 텔레비전에 '전설의 고향'이라는 프로가 있었다. 주로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였는데 극강 효자들이나 효부, 극강의 정절녀들이 간혹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어린 내 눈엔 그저 엽기적인 자해 공갈단으로 보였다. 저런 게 효도라면 나는 엄두도 내지 못할 거야 하는 내용이 나왔다.


가난한 집안의 홀어머니가 시름시름 앓아누우셨는데 아들에게 한마디 하신다.

"얘야. 고기 한점 먹으면 나을 것 같구나."

그러자 아들이 한 겨울에 짐승도 잡을 수 없으니 고민을 한다. 그러다가 부엌에 가서는 칼을 슥슥 삭삭 간다. 그러더니 자기 허벅지에 대고 자른다. 자기 생살을. 그때 배우의 연기가 어찌나 리얼했는지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다릴 붕대로 칭칭 감고는 어머니에게 고깃국을 대접해서 어머니가 나으셨다는 이야기다. 요즘 같으면 방송 심의 윤리 규정에 걸릴 잔혹한 내용이다. 아무리 먹을 게 없어도 그렇지 자기 살을 베어서 부모님에게 드린단 말인가?


부모가 돌아가시면 삼 년씩 산소 앞에서 움막을 짓고 산다는 내용도 충격이었다. 아이들은 대체 누가 돌보고 소는 누가 키우나? 아무리 효도가 중요해도 그렇지 일손이 많이 필요 농경사회에서.



효도는 시대맞게 진화다.


최근 목격한 효도는 가히 블록버스터급다. 감히 흉내내기 힘들 뿐 아니라 취향까지 고려한 '취저 형 효도'라고나 할까?




몇 년 전 팬질을 열심히 한 가수가 있다. 현재 탑급데 처음 봤을 때 그저 더벅머리 고교생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는 착한 태도에 반해 팬질을 했다. 그 후 팬들이 많아지더니 하루는 팬카페에 최소 7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 팬이 등장했다. 그분의 사연을 듣고 보니 내 팬심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방탄 노래 때문에 해외 팬들이 한국어를 배운다는데, 그 할머니는 평생 문맹으로 사셨던 분이 한글을 깨치신 것이다. 노인대학에 열심히 나가서 배우셨다고 한다. 오로지 팬심 하나로.


그러더니 매일 카페에 들어와 글을 남기는 재미로 사시게 되었다. 급기야 오디션 결승 무대가 다가오자 초조해지셔서는 모 방송국 게시판에도 글을 남기셨다. 내용은 진실한 팬심 하나지만 경쟁 가수 팬들 입장에서 보면 비호감이었다. 그러자 심한 언어폭력을 당하.


그러자 평소 우울증이 재발해서 자리에 앓아누우셨다. 그 걸 보는 가족들은 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 같아 애가 탔다. 그래서 직접 악플러들을 고소하기에 이르렀는데...

문제는 할머니가 그 팬심을 유지시켜야 우울증이 낫는다는 것.


장남이 결심을 했다.(이후의 이야기는 그 아들이 내 나이뻘이고, 우연히 친하게 되어 직접 듣게 된 이야기다.) 즉 가족이 단체로 할머니 팬질을 도와주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트루먼쇼가 연상되게.


할머니는 매체의 특성을 잘 모르신다. 그러니 컴 화면에 나오는 영상도 텔레비전인 줄 아신다. 아들은 그 가수가 데뷔하기 전이라 각종 행사 공연이 있으면 다 쫓아다니면서 찍었다. 자기 사업을 해서 바쁘신 분이. 그 영상을 할머니에게 방송에 나왔다고 보여드렸다. 그걸 보고 할머니가 글을 올리면 가족들이 아이디를 여러 개 만들어 호응 댓글을 주르륵 달아 드리는 것이다.

무조건,

'글 내용이 좋아요.'

'저도 공감해요.'등등.

그러자 치매 증상도 있고, 거의 돌아가시게 될 정도로 악화되던 증세가 갑자기 좋아지게 된 것이다. 치매 증상이 심하신 건 여전한데 아들 생일 잊어버리신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손주 생일도 모르시는 분이 손주랑 동갑인 그 가수 생일만 챙기신다고 했다. (그 부분이 섭섭하지 않으냐고 하니 어머님만 건강해지신다면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팬카페에다 고백을 하셨다.

'영감이 죽은 지 10년이 넘었는데 처음으로 영감 말고 내 맘을 줄 남정네가 생겼어. 용서해 줄 거지?'하고.


그 글을 보며 생각했다.


'아들과 며느리, 딸, 사위, 손주 손녀 다들 참 대단한 효심이다. 옛날 같으면 어머님이 노망이 나신 거라고 하면서 남사스럽다고 했을 텐데...

단순히 물질로 하는 효도가 아닌 시간과 정성, 영혼까지 탈탈 털어야 가능한 효도는 진정 이런 게 아닐까?

적어도 이 정도는 해줘야 ,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추는 진짜 효도를 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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