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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Nov 06. 2019

'뉴스의 시대'에 산다는 것

'굳이 안 해도 되는 수고하기'와 '시간들이기'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라는 책에서 쏟아지는 뉴스로 인해 현대인들이 생각 줄기가 없음을 지적한다. 핑계가 확실하다. 시간이 없다는 것. 다들 바쁘니 대부분 요약본에 중독이 되어 있다. 그 요약본은 헤드라인 위주로 읽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로, 영화 후기 블로그나 서평으로 이어진다.



예전 초등학생들에게는 표준전과라는 게 있었다. 거기엔 전과목 내용이 총망라되어 있었는데 주로 숙제 베끼기 용도로 활용되었다. 산수 숙제의 경우 문제에 대한 해답, 국어의 경우 중심 내용과 낱말 뜻풀이 등등, 베끼기만 하면 되므로 일일이 산수 문제를 풀어본다든가 본문 내용을 자세히 읽고 요약한다든가, 국어사전을 일일이 찾아가며 낱말 뜻을 찾는다든다 할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절약되는 것. 전과 하나만 있으면 후다닥 숙제를 해치우고 나가 놀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숙제를 하고 나서 무슨 이익이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글씨 쓰기 연습 정도라고나 할까? 


일일이 사전을 찾고 자기 손으로 문제를 풀면 시간은 오래 걸려도 숙제 내용이 자기 것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이 '굳이 안 해도 되는 수고하기'와 '시간들이기'는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거다. 하물며 본업이 돈 벌기인 직장인에게나 인생이 걸린 스펙 쌓는 대학생들에게, 굳이 안 해도 되는 게 뉴스의 정확성 검증하기다. 


궁금한 게 있으면 간단히 클릭만 하면 되는 편리한 세상, 유튜브나 텔레비전만 켜면 언제든 자기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볼 수가 있다. 취미 관련이나 흥밋거리도 말이다.


가짜 뉴스 문제가 심각하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어나는 정치공세 문제부터 그렇다. 검증 대상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 사람들은 뉴스나 유튜브 같은 곳에서 넘쳐나는 짤막한 이슈성 정보에 의존한다. 그마저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나 보는 경우고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태반이다. 우리 때만 해도 정국이 혼란스러워 대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요즘 대학생들은 스펙 쌓느라 정치에 관심을 가질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없는 모양이다.


그런 무관심을 은근히 부추기는 게 정치인들이다. 총, 균, 쇠를 쓴 제레미 다이아몬드가 최근 내한해서 한 말이 인상적이다. 부의 불균형 문제는 이제 세계적인 현상이고 점점 심화되어 가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한 의견 내지는 처방에 대해 따끔하게 한 마디 한 것이다. 

"답은 이미 다들 알고 있다. 정치인들의 결단이 필요할 뿐이다."


얼마나 명쾌한 어법인가?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그가 쓴 총, 균, 쇠는 적어도 내가 보기에 역사책이나 생물학 책이 아니다. 정치학 책이다. 단지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생물학적인 지식이나 역사학적인, 사회학적인 지식을 끌어다 쓴 것뿐이다.


성향과 상관없이 그저 신문에서 정치면이나 경제면을 한 시간 이상 읽고, 드라마가 아닌 뉴스를 즐겨 보는 사람이 지식인처럼 보이던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엔 정보를 얻을 기회가 별로 없으니 그런 것들이 유일한 지식 창구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요즘처럼 뉴스나 정보를 얻을 기회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다를까?


딸이나 아들이 최신 뉴스에 대해 언급하는 걸 들을 때마다 기겁을 할 때가 있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과는 또 다른 문제로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할 수가 없다. 남자아이들은 게임이나 자극적인 영상으로, 여자 아이들은 아이돌이나 카톡에 빼앗기는 시간이 많다. 


그러다 보니 결과는 똑같다. 최대 요약본인 페이스북 헤드라인이나 유튜브 썸네일 한 줄만 본다. 그 이상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와는 상관이 없으니. 


알랭 드 보통의 책 제목처럼 '뉴스의 시대'가 맞긴 하다. 단 쓸데없이 고퀄로 디테일한 연예인 사생활 뉴스, 목적이 의심스러운 가짜 뉴스, 가짜 뉴스는 아니지만 더 나쁜, 논점을 빗나간 묘한 뉴스, 머리와 꼬리를 다 자른 악마 편집 뉴스의 시대인 것이다. 그런 뉴스의 홍수 속에서 자기 생각을 제대로 갖추기가 힘들다. 그런데 이런 뉴스는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주부든, 진짜 뉴스에는 무관심한 요약본 수요자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정치에는 자기 밥그릇이 걸려 있다는 걸 알고 요약본이 아닌 원본을 공부하는 것. 당장 헤드라인만 보고 정시 모집을 늘린다는 말에만 혹해서 정시 준비생을 둔 학부모가 좋아만 할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그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더 알아보는 것이다. 과거 입시제도와의 비교도 해보고 다른 도표도 찾아보고. 신문이나 뉴스도 다양하게 접해보고 자기 만의 상식으로 판단을 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 시민 단체 활동에 나서거나 관련 서적을 찾아 읽어보거나 주위 사람들과 독서 토론 모임을 통해 다양한 견해를 들어보거나 관련 세미나에 참여하여 더 알아보는 방법도 있다. 유튜브나 팟캐스트 등 성향이 맞는 전문가들의 지식을 꾸준히 들으며 참고할 수도 있고, 각종 게시판에 들어가 다른 이들의 의견을 보고 자기 의견을 낼 수도 있다. 


'프랑스 여자는 늙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인상 깊은 구절이 있었다. 프랑스 여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정치에 관심을 갖고 수시로 토론을 한다고 한다. 그 이유로 프랑스 여자들은 늙지 않는단다.  책 내용이 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시민들의 정치 참여의식은 정치인들을 긴장시킨다. 


요즘처럼 뉴스가 넘치는 시대에는 진짜 뉴스를 선별하는 매의 눈이 필요하다. 그리고 매의 눈을 갖기 위해 필요한 건, '굳이 안 해도 되는 수고하기'와 '시간들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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