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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r 20. 2020

펌프

그들은 이제 우리의 영웅이 아니다

다섯 살 무렵이었다. 그때 집에 있던 펌프는 내게 영웅이었다. 그 펌프 물은 공짜였다. 수도세를 내지는 않았지만 대신 노동력이 필요했다. 생긴 건 당시 태권브이에 나오는 주전자 로봇 같았다. 한쪽에는 길게 손잡이가 있는데 원통형 몸통에 붙어 있었다. 몸통의 끝은 위를 향하고 있는데 그 펌프 목 부분에 물을 한 바가지 넣는다. 그러고 나서 한쪽 팔을 위아래로 힘을 주어 흔들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여기서 힘을 주는 타이밍이 중요했다. 박자를 제대로 맞추어 힘을 주어야만 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 물은 청개구리였다. 더운 여름엔 차가운 물이 나오고, 추운 겨울엔 미지근한 물이 나왔으니까. 그래서 여름엔 특히 등목을 할 때 펌프 물을 이용했다. 플라스틱 바가지로 펌프 물을 히나 가득 등에 부어주면 소름 끼치는 시원함이 밀려왔다.


그 신기한 물건을 바라보면서 나도 물을 뿜어 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당시 내 키는 펌프보다 작았다. 특히 힘이 부족했다. 무쇠로 된 한쪽 손잡이를 잡고 힘을 주어야 하는데 내 힘으론 아무리 흔들어도 물이 나오지 않는 거다. 물이 나오게 하는 데에는 최소한의 힘과 조절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에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목표가 생겼다. 어서 어른이 되어 펌프질을 하리라고.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그런데 얼마 후 내 영웅은 운명을 다했다. 힘을 주어야만 했던 펌프는 사용하기 불편했던 것이다. 대신 그 자리에 힘을 들이지 않아도 물이 금세 쏟아져 나오는 수도꼭지가 설치되었다. 녹슨 펌프는 한구석에 방치되다가 결국 고철로 팔렸다. 강냉이 한 됫박 하고 바꾼 것이다. 나의 영웅이 고작 강냉이 한 됫박이었다니.






남편에게 멸치 내장 제거를 부탁했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시간에 할 일을 준 것. 시키니까 억지로 하지만 보기 아름답다. 잠시 정의를 내려본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섹시해서 심쿵하는 남편의 모습은 '멸치 내장터는 모습'이라고.


원래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남편에게 반했던 지점은 모두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예를 들어 안전벨트 따윈 안 하고 풀어헤친 모습으로 왼쪽 팔은 차창 턱에 턱 올려놓고는 자동차 핸들을 오른손 바닥으로만 빙빙 돌리던 모습이나, 수동형 기어를 손으로 변속할 때 팔뚝의 힘줄 등,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 또 있다. 말할 때 내 얼굴을 사선으로 본다던가 하는 쑥스러운 눈빛.


지금은 겨우 쥐어짜야 나오는 것들이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보며, '쟤네들은 대체 왜 나에게 온 것일까?' 하면서 필름을 하나하나 뒤로 돌리다 보면, 딱 그 장면들에 부딪히고야 만다. 물론 다 옛날 일이다. 지금은 안전벨트 안 하면 딱지 끊고, 차창에 팔을 얹고 가다간 큰일 난다. 게다가 요즘 웬만한 자동차는 자동변속기어라 팔뚝에 힘줄을 굳이.


대신 멸치 내장 제거하는 일은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 필요한 일이다. 다시팩을 사거나 내장 제거한 멸치를 사면 되지만 요즘 같은 때에는 이런 거라도 아껴야 한다. 남편은 손에 비린내가 밴다면서 일회용 비닐장갑까지 장착했다. 뚫어져라 쳐다보며 멸치를 만지는 폼이 흡사 외과수술용 장갑을 끼고 수술하는 의사 같다. 이때만은 남편의 남산만 한 배에 '왕'자가 홀로그램으로 새겨진다. 어쩜 그리도 잘생겼는지 잘생겨 보이는지.


남자들은 모른다. 남편들이 섹시해 보이는 지점은 '왕'자 근육이 아니라는 걸. 집안일 거들어주는 팔뚝이라는 걸. 변모해가는 남편의 모습이 보기 좋다. 내 어릴 적 영웅인 펌프는 이러질 못했다. 그래 봤자 결국 고철일 뿐이니까.


요즘 한국의 선진 시민 문화에 대해 칭찬이 끊이지 않는다. 비교적 오래 산 나로서는 새삼스럽다. let it be를 한국말로 '레디삐'라고 베껴 쓰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또 중학교 시절 우리 반 잘 사는 친구가 가져온 아빠가 미국 출장에서 사 오신 껌을 보며 신기했던 걸 생각하면. 그땐 미국, 유럽 하면 금발머리에 푸른 눈, 왕자와 공주들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나오는 영화, 그들이 먹는 음식, 노래, 옷,  모든 게 좋아 보였다. 외국물 먹은 사람들은 툭하면 미국에서는 이러는데, 유럽에서는 저러는데 하면서 우리나라의 후진성을 비판했다. 유학 갔다 온 후배들은 매사에 불평을 해댔다. 우리나라는 한참 멀었다면서.


그랬던 우리나라가 달라졌다. 그리고 재난 앞에서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미국과 유럽의 모습을 씁쓸하게 지켜본다. 이제는 bts가 부르는 한국어 가사를 발음 그대로 그들이 영어로 베껴 쓴다. 그리고 우리의 코로나 19 방역 방법을 그들 대통령이 전화로 직접 물어온다. 시간은 많은 것을 뒤바꾸어버렸다. 그들은 이제 영웅이 아니다. 마치 펌프가 수도에 밀려 강냉이 한 됫박에 팔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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