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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r 26. 2020

썰물에 드러난 것들

Bring the pain on.

최근 방탄소년단 on이라는 곡을 들고 컴백했다. 여기서 'on(온)'이라는 말이 중의적으로 느껴진다. 가사 내용이 "고통? 가져와봐. 다 받아줄 테니." 하고 큰소리 빵빵 치는 노래. 딱 현재 한국 같다. 그런데 여기서 제목 'on'이 귀에 박힌다. 영어 어감으로는 급박함이, 우리말 발음으로는 '간'게 아니라, 고통이 '온' 것이 생생히 느껴진다. 지금 우리 눈 앞에는 많은 것이 '온' 상태다.


우선 학교는 'on'line 개학을 검토 중에 있다. 온라인 수업은 이제 대대적으로 검토할 만한 때가 온 것 같다. 일선에서는 '거꾸로 수업'이라고 불리는 수업 방식이다. 대안학교에서 실제로 운영되곤 하는데 온라인으로 학생들이 진도를 각자 따로 나가는 수업방식이다. 이때 궁금한 것을 교사에게 물어보고 집단 토론 등을 한다.


이는 칸 아카데미 수업방식과도 비슷하다. 살만 칸은 조카를 가르치기 위해 유튜브에 수학 수업을 올린다. 그걸로 공부하는 자기 아들을 보고 빌 게이츠가 막대한 투자를 한 칸 아카데미. 이 아카데미는 비영리로 운영된다. 유튜브가 생활화된 지구촌에서, 아프리카의 가난한 아이들까지도 공부에 있어서 차별받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온라인으로 개별 학습하고, 학교에서 집단 토론이나 활동 위주로 커리큘럼을 개편하면 어떨까 한다. 가장 보수적인 곳이 학교라지만 재난 앞에서는 얼마든지 혁신할 수 있다.


현재는 'on'line 쇼핑의 점에 있기도 하다. 온라인 쇼핑은 이번 사태에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온라인 쇼핑이 생활화된 한국에서는 굳이 사재기할 필요가 없다.


대한민국 전체는 현재 'on'air 다. 모든 사람들이 매일 뉴스 속보에 귀를 쫑긋 세운다. 오후 두 시에 발표되는 확진자 수등에.


여기까지는 견딜만하다. 진짜 아픈 것들이 많이 왔다. 어제 뉴스에선 긴급자금 대출에 길게 줄을 선 소상공인들의 모습이 비쳤다. 마스크를 타고 넘어오는 그들의 한숨이 전체 화면을 푹 적신다.  


피학 주의자가 아닌 바에야 이런 고통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구적으로 일어난 이상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다 가져와서 소화하면 어떨까?


고통을 몸속에 관통시키는 것이다. 먼저 침도 삼켜지지 않는 깔깔한 혀를 내밀어 삼킨다. 그리고 좁디좁은 식도를 통해 내려 보낸다. 위에선 이를 받아 많은 융모들이 영양분을 흡수하고, 강렬한 위액을 내뿜어 죽처럼 만든다.  대장에서는 물을 흡수하여 마침내 찌꺼기가 되어 항문으로 내 보낸다. 독성은 간이 해독한다. 그래도 불순물이 남아있다고? 그땐 땀과 소변으로 배출하면 된다. 그렇게 또다시 우리 몸은 말짱해지는 것이다.


소화, 배설, 순환이 일어나는 동안 고통이라는 날 선 먹이는 그 실체가 낱낱이 해부된다. 자! 이제 두렵고 거대했던 고통은 부서지고 말랑말랑해졌다. 우리 몸을 관통하면서 영양분이 되에너지를 만들어냈다. 어떻게 가능했냐고? 바로 우리 몸이, 고통보다는 강했던 것이다.




번 방탄 노래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막내 정국이 스틱을 든 마치 밴드 사이를 사열받듯 빠져나가는 장면이다. 정국은 이때 몸을 비틀며 울부짖는다.

"나의 고통이 있는 곳에 내가 숨 쉬게 하소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통에 익숙하다. 전쟁 공포에다가, 어느 나라보다 적게 자고 많이 일해야 먹고 살 수 있었다. 대충 살아도 되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과정이 익숙한 우리에게 '그깟 코로나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 이기적인 바이러스가 우릴 생존 기계로 만들려고 해도 말이다. 목이나 코를 간질여 재채기를 유도해 주위에 비말을 뿌려 댄들, 우리는 이 이기적 유전자 앞에서 모든 고통을 꿀꺽 삼키고 이내 소화해 낼 것이다. 그 결과 입국을 차단하지 않고도, 전근대적인 강압이 아닌 민주적이고 자발적 의지로 이겨냈다. 그래서 코로나 19 방역에 있어서, 유발 하라리나 폴 크루그먼 등 세계적인 석학들이 칭찬해 마지않는 모범국이 되었다.


처음엔 이 고통이 우리에게도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하지만 이내 썰물이 되었다. 차분히 몰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개펄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이번에 드러난 것들은 무얼까?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 저자 유발 하라리는 무인간을 언급했다.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면서 무용 인간들이 많아질 거라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임금을 제안한 것이다. 예를 들어 가사노동에 대한 급여이다. 우리 집안에서 일어나는 노동이지만 나라에서 지급하는 것.


비슷한 맥락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먼저 경기도에서 최초로 경기도민 모두에게 1인당 10만 원의 재난 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다. 이번 썰물의 소산이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질서 있고 온정이 있는 국민인지 알게 되었다. 거기에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이들의 비애, 일제식 집단 교육 시스템의 문제, 프리랜서 예술인들의 고충, 그동안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적었는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등 수없이 많은 일들이 개펄에 남겨졌다.

 

언젠가 다시 밀물이 밀려올 것이다. 그때까지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다. 어떤 것은 뿌듯해하고 때론 반성하면서. 그래서 지금 다가'on(온)' 모든 고통이 결국 '간'것이 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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