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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r 28. 2020

자기 생각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으려면,

제발 한 줄짜리 제목만 보고 낚이지들 마시길.

어젯밤 남편이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프로포롤 투약 의심을 받고 있다고.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곧바로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나서 어이가 없었다.

"기레기들아. 듣고들 있나? 너희들 아주,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구나?"

아무리 국민들이 시간이 없어도 그렇지. 그렇게 야비하게 낚시성으로 걸어 놓다니. 모가수의 사진을 전면에 내세워놓고는  그 가수의 이름 석자와 프로포폴이라는 글자만 굵은 글자체로 눈에 띄게 해 놓은 것. 심지어 그 가수도 아니고 소속사 대표 이야기였다. 그러면 그 가수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쓱 한 번 훑어보고는 그 가수가 투약한 줄 안다. 심지어 제대로 된 혐의나 증거도 없다는 식의 기사였다. 요즘처럼 민감한 때에 말이다. 입맛에 맞는 연예인 이슈몰이가 힘들었나?

 

역시 기레기들은 기레기들이야. 하면서 애꿎은 모든 언론인들을 질타하고 싶어 진다. 그런데 사실 진짜 화는 남편에게 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단순하게 기사를 보고 말을 쉽게 하느냐 하는 것. 기사를 보려면 제대로 내용을 읽어봤어야지, 굵은 글자체 두 개만 읽고는 말이다. 게다가 확인을 안 했으면 나에게 말을 하지나 말 것이지. 그렇게 아님 말고식의 대화를 하면 어떡하냐 했다. 남편은 뜬금없는 내 질타에 놀랐다. 자긴 그냥 지나가다 보고 생각나서 말했다고 한다.


스쳐 지나가는 정보들은 많다. 그 정보들을 어떻게 하면 왜곡을 해서 여론으로 만들어내느냐는 나쁜 언론의 기본 방침이다. 기자들을 탓하기 전에 언론을 소비하는 국민들이 먼저 자신들을 반성해야 한다. 왜 그렇게 자극적인 보도에만 열을 올리겠는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 남편처럼 그토록 쉽게 말을 내뱉기 때문이다. 그런 언행이 결코 시크할 수 없는 여론을 형성해낸다. 뭐든 제대로 알아보고 파고들어가지 않는 말초신경적인 반응들, 언론은 그 반응들을 눈치껏 이용해서 먹고산다.


호기심이 많고 귀가 얇은 것은 인간의 약점 중 하나다. 젊은 시절 점을 유난히 좋아하는 선배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는 최근 자기가 보고 온 점집을 이야기하면서 나에게 같이 가잔다. 하도 적극적으로 말하길래 따라갔다. 그 점쟁이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아주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쯧쯧쯧. 벤츠를 열두 대나 몰고 갈 상인데 아주 아깝다 아까워. 지금 사귀는 남자는 가난하지?"

그래서 참 신기하다 했다. 진짜로 가난한 사람이라서. 그래서 어떻게 아냐니까 그런 남자 말고 진짜 돈 많은 남자를 만날 팔자야. 근데 자기 팔자가 그런 걸 모르니 안타깝네."


그래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니까,

"원래는 500만 원 밑으론 안 써주는데 소개로 왔으니 내가 싸게 해 줄게. 300만 가져와. 부적 하나 써줄 테니 몸에 지니고 다녀. 그럼 벤츠 12대 끌게 해 줄 테니."


기가 막혔다. 내가 렌터카 사업을 할 게 아니라면 벤츠 12대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있나? 그러면 반드시 행복하리라고 누가 보장을 하나? 왜 내가 그런 남자한테 팔리듯 시집을 가야 하나? 벤츠가 필요하면 내가 열심히 일을 해서 사면되지."


나는 그만 신경질을 내면서 그 점집을 나와버렸다. 복비 오만 원만 아깝게 날렸다면서.


그런 류의 인간은 늘 있


얼마 전 홍대 근처에 갈 일이 있었다. 워낙 골목 사이사이 작은 건물들 사이에 있어서 내비게이션으로 겨우 찾았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행사가 다 끝나서 허탈하게 돌아서는데 화장실이 가고 싶어 졌다. 마침 홍대 근처 카페 앞에서 한 여자가 타로점을 보고 가란다. 화장실 갈 마음에 들렀다가 점을 보게 되었다.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공짜로 사주를 봐주겠다고 한다.


내 사주를 핸드폰으로 뚱땅거리더니, ( 그 정도는 나도 하겠다. 요즘 어플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데) 첫마디가 가관이다. 나더러 참 고집이 세겠단다. 내가 "그래요?" 하니 줄줄이 읊어댄다. 말띠해에 말띠 달에 말띠 날이라나?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더니 아주 팔자가 세니 남편이랑 자주 싸우겠다고.(남편이랑 안 싸우는 부부도 있나?) 그러면서 자기 동생도 말띠인데 남편이랑 주말부부라 잘 산다고. 모든 말띠 여자들을 상대로 과잉 일반화까지.


자식들은 무얼 하느냐고 물었다. 딸은 작곡을 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자기 아들도 작곡 공부(EDM)하는데 전망이 하나도 없단다. 어제는 350만 원짜리 기기도 사주었는데 돈만 많이 들고 앞이 안 보이는 직업이라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를 자극하는 말을 했다. 내가 "나에게 좋은 건 없어요?" 하니 하나도 없단다. 내가 그래서 "좋은 사주 안 좋은 사주가 따로 있나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들었는데요." 하니 당연히 안 좋은 사주가 있다면서 나는 아주 재수가 없는 여자 안 좋은 사주라고.


기가 막혔다. 듣다 듣다 참지 못하고 터졌다.

"듣다 보니 이해가 안 되네요. 제 사주가 안 좋다고요? 팔자가 센게 뭐 어때서요? 지금이 조선시대인가요? 그땐 여자가 일을 할 수 없었으니 안 좋았겠죠.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러세요. 제 친구들 다 일을 하고 있어요. 능력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안 좋은 사주란 건 없어요. 대통령 될 사주가 좋은 사주인가요? 감옥을 가도요? 그리고 안 싸우는 부부요? 그런 부부가 더 문제가 많아요. 주말 부부는 싸울 시간이 없겠죠.  그리고 아들이 음악 한다면서 그렇게 비관적이시면 어떡해요? 그 아들이 불쌍하네요. 엄마가 자기 미래에 그렇게 부정적이니.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지는 알겠는데요. 주역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아요. 그렇게 동양 철학을 우습게 생각하시면 안 되죠. 공부 좀 더 하셔야겠어요."(헥헥헥)



이 여자는 분명 내가 낚여서 돈을 내놓을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렇게 부정적으로 말해서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자기에게 의지하게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너무 치졸했다. 사람들의 호기심, 귀가 얇음. 또 무의식적으로 쏠리는 여론을 악용하는 기레기들을 닮았다. 내가 말을 쏟아놓는 동안 사나운 표정을 지으면서 기가 막혀하는 그 여자. 주위엔 점을 보려고 기다리던 대학생들이 보였다.

대학에 오기까지 앞뒤 안 보고 공부만 하고 또 취업 스펙 쌓느라 아무 생각이 없는 요즘 대학생들. 그들은 이 늑대 앞에서 가엾은 희생양이 될 게 뻔했다. 그래서 일부러 더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무서운지 그 대학생들이 슬슬 나가버렸다.


아무 생각이 없는 대중.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중요한 선거가 코 앞에 와 있다. 코로나 19 때문에 정치는 안중에 없는 이들이 많다. 게다가 재외국민 투표도 불가능해졌다. 이 틈을 노려 거짓 선전이나 선동을 일삼는 무리들에 놀아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손쉽게 정보를 접하고 소비하는 행태를 버렸으면 한다. 다양한 경험과 폭넓은 독서, 사색을 통해 자기 철학을 져야 다. 기엔 예외가 없다. 대학생, 직장인이나 주부나 노인 할 것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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