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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Apr 03. 2020

사람이 참 좋다.

"우리 그랬구나. 그냥 존재 자체로 좋은 거였구나."

텅 비어버린 교실,

쓸쓸하게, 네다리를 앙 버티고선 의자.

굵은 흠집 위에,

또 다른 손길로 연거푸 메워져 반질반질해진 책상 위를

손바닥으로 쓸어내 본다.

서걱거리는 분필 맛을 못 본 지 한참 된 칠판.

내 뒤통수에는 까르르 아이들 소리가 환청처럼 섞인다.






작년엔 6학년을 가르쳤다.

그 아이들 중 유난히 사춘기가 세게 온 여자 아이들이 있었는데, 꽤나 반항적이어서 속을 썩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반응이 시원 찮았고,

음악시간인데도 입을 꼭 다물고 노래도 하지 않았다.

달래다 윽박지르다 상담을 하다가...

결국은 내가 졌다.


그 아이들은 지금 당당히 중학생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질 못한 게다. 입학식조차 못했으니.

그 아이들이 앉아있던 자리가 눈에 띈다.

그 자리에서 줄기차게 나한테 눈을 흘기던 아이들.


가끔 내가 교사라는 신분을 까맣게 잊고,

그 아이들을 따라 나도 같이 눈을 흘기고 바락 바락 신경질을 내기도 했는데, 그런 나의 반응을 오히려 귀여워(?)하던 아이들도 있었다. 혹은 기가 막혀하면서 나에 대해 더욱 비호감으로 돌아선 아이들.


하지만

이제 모두 사라졌다.

그 아이들이나 나나 더 이상 기싸움을 할 수가 없다.

지금은 모두 링 위에서 내려서 있기 때문.


코로나는 우리를 모두 링 아래로 내려 보냈다.

많은 싸움과 사랑을 거기에 놔두고.


대부분 선생님들은 오프라인 수업을 그리워하고 있다.

난생처음인 것이 너무 많다. 그 대상이 눈 앞에 있으면 그나마 실험도 해 볼 텐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수업을 하고 싶어도, 아이들 쪽 기기 설치 문제나 일시에 폭주해서 다운되곤 하는 서버의 한계 때문에.


어릴 적 공터라는 게 있었다.

그 시절 동네마다 하나쯤 있던 고마운 장소다.

농사 주인이 어디로 간 건지 알 수 없는 논밭이나

저수지 물이 말라버린 듯한 웅덩이.

또는 야트막한 언덕.

그 공터는 아이들이 맘껏 뛰어노는 곳이었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공터를 자주 그리워하곤 했다.

지금은 꿈도 못 꿀 일이다.

대부분 금값이 되어버린 서울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분명 나는 바쁜 하루하루 속에서 항상 많은 공터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시간의 공터, 사람의 공터, 일의 공터, 마음의 공터.

가끔 버려지고 버리고 비우고 싶었다.

학교에선 특히 아이들이 나를 힘들게 할 때마다 더욱더.

그런데 아이들이 눈앞에 없는 지금.

사상초유의 사태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다.


내년에 명퇴를 하려던 동료가 있었다.

나이가 딱 내 또래라 부러워하고 있었는데, 오늘 그런다.

"명퇴를 다시 생각해봐야겠어요. 아이들이 너무 그리워요. 평소 조용함을 그렇게 바랬는데 요즘은 조용함이 지겹네요. 아이들이 왁자지껄하던 소리가 귀에 생생해요. 평소대로라면 신학기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30년 넘게 익숙했던 리듬이 깨지니까 이상해요. 한 달만 못 봐도 이렇게 아이들이 보고 싶어지는데 명퇴를 어떻게 하겠어요? 아마 정년퇴직까지 할 거 같아요."


나도 그간의 부러움을 거두게 된다.


올해에도 6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분명 또 이유 없이 세상이 다 귀찮고,

공부시간이 따분하고,

그래서

평소에도 입꼬리가 비대칭이 되어 있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도 같이 눈을 흘기진 않을 생각이다.

대신, '참 귀엽군.'

하고 너그러이 받아줄 생각이다.(이렇게 다짐만은 굳건히)

그리고 이번 코로나로 얻은 많은 수확 중 하나가 막 떠 오른다. 바로,


사람이 참 좋다.



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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