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윤숙 Apr 04. 2020

코로나가 찾아준, 숨은 재능(?)의 무해함.

나의 남은 시간을 드릴게요.~~

겨울방학은 늘 두 달이었다. 그래서 그에 맞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계획에 차질을 빚은 것이다. 줄곧 그에 맞는 생체 리듬에 살다가 세 달이 넘어가자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그 남는 시간에 이것저것 손을 대기 시작했다.


급기야 안 그리던 그림을 그리고 나에게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뜨개질까지.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쓸모가 있지는 않았다. 그저 의외의 재능(?)을 발견한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다음 주부터 학교 근무가 시작되어 이, 누구에게도 무해한(혹은 무익한) 재능 퍼레이드는 끝이 다. 퍼레이드에는 무엇이 있었나?



처음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잘 보고 있는 남편을 모델로 그리다가, 점점 낮에도 그리고 싶어 졌다. 그런데 마땅히 모델이 없어 내 손을 그렸다. 그러다 요즘은 발이다. 평소 아무 관심도 주지 않던 내 발, 손에 밀려 평생 빛을 못 보던 발에 대해 새삼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렇듯 평소 무심했던 것들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3월 한 달.  친구들과 만보 걷기 이벤트를 했는데 이를 무사히 마쳤다. 나는 주로 우리 아파트 주변 천변을 걸었는데 이 난국에도 여러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파릇파릇 새싹이 올라오고 꽃이 피어있을 줄이야.


꽃 이름을 많이 아는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니, '개불알꽃'이라 한다. 이름치곤 참. 패랭이꽃인 줄 알았는데. 무시무시한 겨울을 뚫고 이렇게 봄은 오는구나.


그래도 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뜨개질을 시작했다. 심지어 주문생산도 가능해졌다. 하루는 아들이 나에게 목도리를 하나 떠 달랜다.


너무 감격한 나는 색상이나 무늬 등 취향도 물어보았다. 그런데 아들은 시크하게 "아무거나요." 한다. 그래서 진짜로 아무거나 내 스타일대로 밤새 떴다. 그런데 결과물을 본 우리 아들. 날씨가 따뜻해져서 괜찮다나? 내가 샐쭉해하니 하는 말, "엄마가 짜는 동안 즐거우셨으면 된 거죠."

이런...


지금도 몹시 궁금하다. 맘에 안 들어서 그런 건지 진짜 따듯해져서 그런 건지.



이 작품은 소중한 나의 처녀작이다. 일명 냄비받침이다.


처음엔 네모밖에 뜰 줄 모르니 샘플로 하나 만들어 봤다. 그러자 냄비받침으로 딱인걸 알게 되었다. 아주 요긴하게 쓰고 있다. 단 너무 뜨거운 온도에는 살짝 타버리는 단점.


뜨개 초보인 나로선 뜰 줄 아는 게 원형과 네모밖에 없다. 그래서 네모를 한 번 길게 떠 보았는데, 직진본능이라고나 할까? 아님 포레스트 검프 전법이라고나 할지.

그냥 뭐라도 되겠지 하는 마음에 떠 본 것. '너무 계획적으로 사는 건 옳지 않아.',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작업을 하는 건 너무 지루해.' 하면서.


다 뜨고 나서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소파 팔걸이로 딱이다 싶었다. 투박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포근하다고 위안을 삼고 있다.


사각형을 탈피하고 싶어 시도한 작품이다. 가만 보니 대나무 바늘로 뜨면 네모밖에 안 된다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급기야 코바늘까지 진출. 게다가 스케일의 미학을 누려보고 싶었다.


처음엔 거실 바닥에 놓을 러그를 짤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원형 테두리가 자꾸만 꼬불꼬불거리게 되는 거다. 이러다간 바닥에 놓아도 엉덩이가 배겨서 안될 것 같았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작업을 중단하고는, 골똘히 고민한 끝에 이렇게 멋진 의자 커버를 완성하게 되었다.

물론 아무도 여기에 앉지는 않고 장식용으로만 쓰고 있다. ㅠㅠㅠ



새로 발견한 재능에 스스로 감탄하며 남편에게 말했다.

"나 너무 소질이 출중한 거 같지 않아? 교사 그만두고 뜨개방 차릴까? 아님 화가가 되어 볼까?"

남편이 날 쳐다보지도 않고 무심히 하는 말,

"응. 그 정도는 아니야."


우리 남편은 진실하다 못해 가끔 나를 서운하게 한다.


작가의 이전글 사람이 참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