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윤숙 Apr 08. 2020

코로나보다 강력한 것이 있다

우린 계속 줄 것이다.

아들에게 말했다.

"지역화폐 신청해."

그러자 우리 아들 시크하게,

"이미 했어요. 친구들 단톡 방에 벌써부터 올라와 있었거든요."

역시 요즘 아이들은 정보가 빠르구나. 무엇보다 돈에 관련된 것이니. 고등학생 아이들에게 공짜로 10만 원 용돈이 생기는 셈인데.





요즘처럼 '지역'이라는 말을 실감한 적이 없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공언한 '전체 경기도민 10만 원 주기'에서 지역화폐 이야기가 나온 후 더욱 활발히 거론되기 시작했다.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기본소득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를 대부분 지역화폐로 준다. 지역 소비가 살아나야 경제라는 나무의 밑뿌리가 튼튼해지기 때문이다.


또 총선을 며칠 앞두고 한창인 지역구 의원 선거유세 활동이 있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피부에 와 닿는 효과가 있는 악수조차 못한다.


온라인 상으로 지역 물물거래도 활발해지고 있다. 작년에 상을 받은 어플로 '당근 마켓'이라는 게 있다. 주로 지역주민들이 중고로 물건을 사고파는 앱이다. 친구가 추천하길래 나도 작년 말부터 애용하고 있다.


거래되는 물건들을 보면, '이런 걸 다 파는구나.' 싶을 정도로 소소한 물건을, 더 소소한 가격에 팔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설거지 통이나 머리띠 같은 잡동사니들. 막상 버리자면 돈을 들여야 하는 덩치 큰, '안 예쁜 쓰레기'들도 거래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물건도 누군가에게는 원하는 물건을 싸게 구입하는 효과가 있다. 꼭 '사고팔기'만 하는 것은 어니다. '주고받기'도 한다.


한 번은 이런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모두 모두 감사드려요.'(밑도 끝도 없이 감사하다니, 누구에게, 무엇을?)

여러 가지 물건을 한 데 모아 찍은 사진 한 장과 함께 올라온 글 내용은 이랬다.


'여기 사진에 있는 요구르트 5개, 젖병 소독기, 유모차, 고구마 한 바구니, 피크닉 매트. 이 것들은 모두 제가 산 게 아닙니다. 그냥 공짜로 받은 거예요. 요구르트 한 묶음을 사니 싸기는 한데 너무 많다며 주신 것, 또 시골에 사시는 시부모님이 직접 농사를 지어 고구마 한 박스를 보내 주셨는데 너무 많다며 반을 가져가래서요. 얼굴 한번 안 본 지역주민에게 이렇게 조건 없이 퍼주는 분들이 있다는 게 감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나눔을 하려고 합니다. 시부모님이 사시는 시골은 코로나가 없다면서 마스크를 100장이나 사서 보내셨어요. 혹시 마스크 사러 가기 불편하신 분들은 가져가세요. 저희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저도 주로 집에 있다 보니 필요가 없네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이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현재 변이를 일으킨 듯하다. 매는 먼저 맞는 게 나은 것인지, 일찌감치 코로나 벼락을 맞은 중국이나 한국 등은 사망률이 낮은데,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 늦게 터진 곳은 사망률이 높다. 물론 다른 요인이 있기도 하지만. 바이러스도 생명이라고 악착같은 생존본능을 발휘하나.


그런데 그 녀석이 간과한 게 있다. 우리에게는 바이러스보다 강한 게 있다는 걸. 바로 우리의 '나눔 바이러스'다. 이 나눔 바이러스는 우리의 '밈'(문화 유전자)을 통해 대대손손 퍼져나갈 것이다.


몇 년 전 꽤 큰돈을 주고 산 실내 자전거가 거실 한편에 딱 버티고선 게 눈에 들어온다. 매일 만보 걷기를 실천한 이래로 방치되고 있는 거다. 처음엔 팔까 하다가, 아니야. 가정마다 천덕꾸러기 취급당하는 운동기구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다가... 아니야. 요즘 코로나 때문에 피트니스센터에 못 가고 집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누군가에게는 지금 필요할지도 몰라. 얼마를 붙일까 하다가, 맞아. 나도 전에 공짜로 가져온 건강매트 잘 쓰고 있잖아. 그러니까 나도 그냥,


 남에게 주자.



이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줄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냥 우리 사람이니까 사랑한다는 이유로. 이보다 강력한 이유가 있을까? 그렇게 주면 또 받은 사람이 또 주고 또 다른 사람이 받고... 그래서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이 지구 상에서, 절대 멸망하지 않고.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


   



작가의 이전글 후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