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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Apr 16. 2020

후천적 침묵 결핍증

이 기간 나는 성찰하고 있다

어릴 적 읽은 동화중 가장 슬펐던 것을 하나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인어공주'를 꼽을 것이다. 내가 순수한 사랑을 벌써부터 알았던 조숙한 아이여서? 아님, 동생을 위해 긴 머릴 잘랐던 언니들의 자매애에 감동해서?

아니다. 인어공주가 사랑인지 뭔지를 위해 하필 제일 중요한, 말을 못 하게 된 것 때문이다.


그게 가장 슬펐다. 말을 하고 싶어도 못 한다는 게. 그게 뭐가 그렇게 슬픈 것인지 알 수 없었는데 이젠 알 것 같다.


나에게 말을 못 한다는 건 죽음이나 다름없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한때는 질병을 의심해 보기도 했다. 일명

'후천적 침묵 결핍증' 아직 학계에 발표된 적은 없지만. 과장을 조금 보태서, 말을 하기 위해 태어난 나.


어릴 적부터 그런 건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엔 말이 없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무렵부터 말문이 조금씩 틔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사춘기 시절 임시 휴업상태로 들어갔다. 그땐 온통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사는가?' 하면서 친구도 멀리하고 고독을 껌처럼 씹고 다녔으니.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 지나면서 달라졌다. 그렇게 사는 게 숨이 막혔다. 세상 이치를 불현듯 깨달은 듯했다.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내 입에는 성능 좋은 모터가 달린 듯 쉴 줄을 모른다.


남자들은 내 수다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가부장적인 스타일의 남학생은 "뭐 저런 계집이 다 있어?", 여자는 자고로 조신해야지 했고, 어떤 남학생은 그런대로 좋아했는데 대체로 과묵한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진짜 나에게 딱 맞는 맞춤형 인간이 나타났으니.


바로 현재 우리 남편이다. 이 남자는 아마 전국대회를 열어도 금메달감 이었으리라.(현재는 아님)

이름하여 '누가 오랫동안 말 안 하고 참을 수 있나?'대회.


나는 지금까지 부부싸움을 그렇게 많이 하면서도 침묵시위는 못 해 봤다. 한번 시도하려 해 본 적이 있다. 딱 1시간 정도. 그런데 내가 지고 말았다. 말을 좋아하는 내가 힘든 건 둘째치고, 남편이 정말 숨소리 외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숨소리조차 진짜로 숨을 쉬고 있는지 의심스러워 귀에 갖다 대고 싶어질 정도.


결국 내가 속이 터져서 먼저 쫑알쫑알 대고 만다. 다행히 남편은 이렇게 말 많은 여자가 좋았던 거다. 자기는 말하는 것 자체가 귀찮은데 말이다. 심지어 귀여워하기까지 했었었다.(지금은 징그러워한다.) 부인이 알아서 하루 종일 떠들어주니 집안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아서.


그랬는데... 요즘은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남편이 말이 많아진 것. 요즘 남편에게서 남성 호르몬이 줄어드는 게 확연히 보인다. 그전에 그렇게 중후하게 느껴지던 저음 보이스가 두 음 정도 올라갔다. 하루종일 잔소리가 어찌나 많은지.


게다가 그게 단계별로 착착 레벨업 한 게 아니란 거다. 급조해서 올라온 말투라 근본이 없다.

예를 들어, "밥은 먹었어? 오늘 뭐했어? 나 보고 싶지 않았어?"

이렇게 일상적이면서도 부드럽고 애교스럽고 사랑스러운 물음으로 시작하는 대화가 아니라,

"이 가위 좀 여기다 놓지 마. 애들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김을 자를 때 뭐 좀 받쳐놓고 해. 밑에 다 흘리잖아."와 같은 생활밀착형 잔소리에다가,

누가 들으면 꽤나 감동적일 염려성 잔소리까지.

예를 들어, "그렇게 입으면 아직 춥지 않아? 좀 더 두꺼운 옷 입지?"

하는 은근한 명령조까지.


가끔 헷갈린다. 내가 여성 호르몬이 감소하고 남성 호르몬이 나와서 다소 과묵 해진 건지, 아님 남편이 여성화된 건지. 그걸 정량화할 수가 없다는 게 답답할 뿐이다. 만약 만보계처럼 차고 다니는 '수다계'가 있다면 측정이 가능할 텐데.


예를 들어, 목걸이 형태로 걸고 다니면 녹음을 해서 분석해주는 거다. 하루 종일 얼마나 떠들었는지. 거기에 더해 쓸데없는 수다와 영양가 있는 대화를 구분하여 주는 거다. 만보계도 시간 대비 이동거리를 분석하여 건강 걸음이 몇 걸음인지 알려준다.


말에도 질이 있다. 입만 열면 자기 자랑하는 경우다. 진짜 최악이 있다. 하루 종일 남의 험담만 늘어놓는 것이다. 이 '수다계'는 녹음 기능 외에 인공지능으로 말의 성격과 질을 분석하는 거다. 그래서 자기가 하루 종일 얼마나 남을 괴롭혔는지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것.


게다가 말의 데시벨까지 측정해서 알려준다. 너무 크게 말했으면 경고를 한다. 교양이 떨어져 보이고 회사 기밀이 누설될 소지가 있으니 주의하라고. 너무 작게 말해도 알려준다. 의욕이 없어 보이니 면접에서 불리하다고.


무엇보다 피드백을 하면서 대화를 잘 하는지 알려준다. 자기 혼자 지껄이는 거야 하루 종일 해도 상관없지만, 두 사람 이상 대화를 하는 경우가 문제다. 대화에서의 지분 때문이다. 상대방이 말하는 중간에 불쑥불쑥 끼어들거나, 혼자 줄곧 떠든다면 상대방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말의 많고 적음은 뜨거운 감자와 같다. 너무 많으면 실수하기 쉽고 경박해 보이기 쉽다. 그렇다고 너무 적게 말하는 문화도 문제다. 우리나라 유학생은 하버드대 졸업에서 취약했다. 토론이 일반화된 미국 대학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까닭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내한했을 때 한국 기자들은 질문을 한마디도 못 했다. 나대는 걸 욕하는 문화나 영어울렁증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조리 있게 질문할 자신이 없었던 게다.


말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고 적절한 때에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 유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체로 다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말 자체를 즐기는 사람: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다. 단순하게 그냥 떠드는 거다.

-아는 게 많아 할 말이 많은 사람: 책도 많이 읽고 지식이나 경험이 많아 머릿속엔 늘 남에게 해 줄 말이 많다.

-꼰대 기질이 있는 사람: 회사 간부 중에 특히 많다. 자기가 곧 법이니 회의시간에도 자기만 떠든다. 안건을 말하라고 해 놓고 정작 말하면 눈치를 주거나 말을 잘라 버린다.

-화를 말로 푸는 사람: 주로 갱년기 여자들이 그렇다. 화가 나는데 그 이유를 딱히 모르겠고 두드려 부술 수는 없으니 말로 쏟아내는 거다.


써 놓고 보니, 나는 위에서 세 가지나 해당이 된다. 어쨌든 위의 네 가지 모두,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뭐든 적당한 게 좋긴 한가 보다. 요즘은 누구나 말을 할 대상이 확 줄었다. 이 기간동안 나 자신을 성찰하면서 다시 활발히 대화를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겠다. 현재는 이렇게 글로 풀어내고 있지만. 그나마 이렇게 글을 쓸 데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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