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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y 26. 2020

칭찬은 칭찬이게 하라

고래도 춤추는 칭찬을 왜 못 받아요?

"너 오늘 입은 옷 진짜 예쁘다."

"그래? 아침에 시간이 없어서 대충 아무거나 걸치고 나온 건데. 그리고 이 재킷은 산지 십 년 된 거야."

"......................................."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이렇게 된다.

이 경우 칭찬한 사람은 뭐가 되나?

기껏 칭찬했더니 그 말에 찬물을 끼얹는 셈이다.

자신은 겸손하려고 말한 걸 수도.

아님 친구가 으레 껏 말한 걸로 느껴서다.

같이 부화뇌동하면 안 될 것 같아 쿨하게 대처한 것.

아니면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래? 원래 더 잘 입고 다니는데.

난 원래 직장이 런웨이야.' 일 수도.


속마음이야 어찌 됐든 듣는 사람은 불쾌할 수 있다.

불쾌함까지는 아니어도 머쓱함은 어쩌지 못한다.



아님 이렇게 대답할 줄 알았나?

"그렇구나. 어쩐지... 자세히 보니 옷에 얼룩도 있고 색상도 별로네.

내가 잘 못 봤어. 멀리서 잠깐 봤을 땐 멋있었는데 말이야.

세탁기에서 막 꺼내 입은 거 아니야?"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대학 시절 하루는 선배가 프릴이 달린 블라우스를 입고 왔다.

평소 심플한 티셔츠를 입고 다니던 선배라 의외의 패션에 놀라고 예쁘다고 생각해서 말했다.

"선배님. 오늘 옷이 너무 예뻐요."

그러자 선배 말이,

"응? 이 옷? 오늘 입을 옷이 없어서 세탁기에서 동생이 어제 입었던 걸 꺼내 입었지.

이런 스타일이 네 취향이구나."


물론 선배는 세탁기에서 꺼낸 더러운 옷이 내 스타일이라고 말한 건 아니다.

프릴이 달린 여성스러운 옷이 내 스타일이냐고 말한 것뿐.

하지만 맥락상 듣는 사람은 거북하다.

선배는 사실대로 말한 것뿐이지만.


선배가 놓친 것이 있다. 바로 '칭찬에 대한 예우'.

감사 내지는 기쁨의 표시를 먼저 했어야 했다.

"어머. 고맙다. 이 옷이 예뻐 보인다니.

동생이 어제 입었던 걸 세탁기에서 꺼내 입은 건데 말이야.

동생 취향은 나랑 좀 다르지만 나한테도 어울리는구나."

적어도 상대방의 취향에 대해 존중했어야 한다.

특히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랑하는 것에 대해 꺼리는 경향이 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겸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남이 나를 칭찬해주는 것에 대해서도 쑥스러워한다.

쑥스러운 나머지 사실을 부정해버린다.


단순히 칭찬 내용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다.

그러면 본의 아니게 칭찬 내용뿐만 아니라 칭찬한 사람 자체를 무시하게 된다.

가벼운 농담인 경우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은 격식을 차려야 하는 사이에도 종종 일어난다.



유명한 영화의 한 장면이다.

중국인 여자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간 서양 남자 친구가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남자 친구가 음식 맛이 좋다고 칭찬을 한다.

그러자 여자 친구 엄마가 시큰둥하게 말한다.

"맛있긴. 오늘 음식은 너무 짜고 전체적으로 별로네."

그러자 남자 친구가 맞장구를 친다.

"네 맞아요. 너무 짜네요."

가족들의 표정이 어땠는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식사가 끝나고 나와서 크게 싸웠다.


여자 친구 엄마는 그저 겸손의 의미로 말한 것뿐이다.

그 말을 하면 아니라고 맞받아쳐줄 줄 알고.

하지만 남자 친구는 개인의 의견을 중시하는 서양 문화상,

그리고 어려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동조한 것.


남자 친구가 맛있다고 했을 때,

"그래? 맛있다고 말해주니 감사하네. 입맛에 안 맞을 줄 알고 걱정했는데."

정도로만 말했으면 되었을 텐데.


칭찬은 칭찬이게 하라.

여기에 토를 달고 부정하면 어떻게 될까?

이는 상대방의 취향이나 판단력에 대한 부정이 된다.

기껏 칭찬한 사람을 무안하게 할 수도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데...

춤까진 못 추어도 감사나 기쁨 정도는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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