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윤숙 May 26. 2020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꼰대 방지 헌법' 제 1조 1항에는 뭐가 들어가야 할까?

오늘 아침 남편에게 말했다.

"오늘 회식 있지? 그러면..."

다음 문장을 남편이 이어서 말해준다.

"그럼 저녁 6시 이전에는 먼저 말해 주고, 집에 와서 따로 밥 차려 달란말 안 하고."

무슨 말잇기 놀이도 아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경계해야 할 일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경계하고픈 게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 경계가 허물어져가고 있다.






그 경계란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젊은 시절 나이 든 사람과 이야기할 때 싫은 게 있었다.

특히 직장 상사들이.

업무지시를 하거나 회의를 할 때 한번 이야기하면 될 것을 자꾸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면 짜증이 났다.

우리가 바본 줄 아나?

한번 이야기하면 됐지 자꾸 반복하는 이유가 뭔지 수상하기도 했다.

혹시 우리가 치매라도 걸린 줄 아나? 우리 기억력이 의심스럽나? 하면서.

아님 말을 듣고도 실행을 안 할까 봐 그러나?

결국 우리를 못 믿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부하직원 입장에서는 맥이 빠졌다.

직장뿐만이 아니다.


엄마들의 잔소리는 무한궤도를 탄다.

일찍 자라.

옷은 아무 데나 던져놓지 말아라.

옷 좀 제대로 입어라. 등등.


그러나 모두 가볍게 스치듯 '바람이 전하는 말'일뿐이다.


그런데

내가 그러고 있다.

똑같은 톤으로 아이들에게.

효과가 없는 것까지 판박이다.

겨우 이러려고 엄마가 됐나? 자괴감도 든다.

쿨내 나는 엄마이고 싶었는데.


가족끼리는 그래도 참을만하다.

모든 게 일상의 반복이다 보니.


하지만 친구와 만나거나 지인들과 수다 떨 때,

직장 동료와 이야기할 때에도 그런다는 게 함정.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

단기 기억력이 떨어져서 방금 말한 것도 까먹고 또 하는 점도 있다.

또 노파심에서다.

내가 말할 때 상대방의 리액션이 별로인 경우 제대로 설명을 못 해줘서 그런가?

하며 다시 찬찬히 반복해서 말한다.

'기' 싸움이기도 하다.

특히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했는데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반복을 택한다.


시나 산문에서 말하는 강조법 중 하나가 아닌가?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아니면 반복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또 말할 수도 있다.

단순히 단어를 바꾼다거나 어조를 달리한다거나 어미만 바꿨을 뿐이면서.

예를 들어 남편에게

"집안일 좀 도와줘."

"오늘 소파에서 아주 편안해 보이네. 청소기 안 돌려?"

"집안일은 나만 하는 거 같아."

"살림하는 게 굉장히 몸이 피곤한 건가 봐."

"지금 단전에서부터 뭔가 올라와. 왜 그렇지?"(이때는 이미 어금니를 꽉 문 상태)


내 생각에 '반복'이 강조법이라는 말은 틀렸다.

아니 강조는 맞는 것 같은데 효과는 없다.

더 획기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대화 시 반복법을 쓰지 말아야 한다.

가족끼리야 '효과가 없는' 수준에서 끝나지만.


반복해서 말하는 건 효과도 없고 재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비호감만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내용이다.

가장 중요한 내용이니 제일 앞에 배치되었을 것이다.


만약 '꼰대 방지 헌법'을 제정한다면 제1조 1항에 뭐라고 써야 할까?

아마도 이 말이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고... 제발 좀 그러지 말 것!"

 




                              


























매거진의 이전글 칭찬은 칭찬이게 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