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히 기분 나쁜 말

차라리 대놓고 욕하는 게 낫다.

by 허윤숙

뱀은 악의 상징이다. 신기하다. 더 사납고 덩치가 큰 동물도 많은데. 뱀은 무섭다기보다 징그럽다. 스르르 다가와서는 사지를 칭칭 감고 숨통을 서서히 조인다. 말로 사람을 죽이는 과정도 그렇다.


대놓고,

"나. 너 싫어."는 상처가 되지 않는다. 반면 부정적인 말은 없는데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이 있다. 뱀이 성경에서 한 짓도 똑같다. 우유부단한 아담과 성질 급한 이브에 비해 크게 잘못한 건 없어 보인다. 새로 꼬시거나 제안한 건 없으니까. 하나님 말씀을 고작, 한 끗 다르게 틀어버린 것 외에는.







같은 말도 어감에 따라 다르게 와닿는다. 그 결과 카톡에서는 이모티콘이 일상화되었다. 이모티콘은 화자의 어투나 표정 역할을 한다. 뭐니 뭐니 해도 제대로 된 대화는 얼굴을 보면서 할 때 이루어진다. 그래도 오해가 생기곤 한다. 이때 오해는 환경이나 매체 탓을 할 수가 없다. 자신의 공감능력이나 인격 문제로 밖에는.


단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말 자체보다 표정과 제스처 등이 중요하기 때문에 글자 그대로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사이가 엄청 좋은 경우가 아니면, 충고성 발언은 안 하는 게 낫다. 날 위하는 척하면서 시커먼 속마음을 들키니. 대놓고는 아닌데, 묘하게 기분 나빠지는 말로 일곱 가지가 떠오른다.




"절대로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

그전까지 괜찮다가도 이 말을 듣는 순간 곧바로 기분이 나빠진다. 이 말로 자기는 우아하게 뒤로 빠지고, 듣는 사람에게 들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자기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과제를 남긴다. 이 말 대신 차라리 대놓고,

"내가 이 말하면 네가 화낼지도 몰라."라고 말하는 게 낫다. 이 경우 잔뜩 긴장하고 듣는다. 그런데 또 듣고 보면 별거 아니다.


"사실 지금에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

지금까지 안 한 말은 쭈욱 안 하는 게 낫다. 젊은 시절 건축 설계할 때 일이다. 말이 설계직이지 실제론 현장직을 많이 했다. 나는 건축 전공자가 아니었기에 작은 회사에 겨우 취직할 수 있었다. 작은 회사에는 직원을 여러 명 둘 수 없으니 설계와 현장직을 겸해야 했다. 현장에서 오랜 기간 잔뼈가 굵은 분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젊디 젊은 아가씨가 달랑 도면 몇 장 들고는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가소로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나의 전문성을 보여주려 했다. 그런데도 나중에 보면 남자 직원들보다 공사비를 바가지 씌우거나 마감을 대충 해놓은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발끈해서 따지곤 했는데 개인적으로 서럽고 분했다. 내가 그렇게 현장 잡부 역할까지 해 가면서 도와주었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하면서.


그런데 약 2년 뒤에 목공 반장님이 뜬금없이 자백을 하였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다들 나를 깔보고 놀려먹었다고. 여자들은 거친 현장일을 몇 달 못 버티니 나도 그럴 줄 알았다고. 그래서 대충 내 말을 듣는 척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했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래 열심히 할 줄 몰랐다고, 그래서 이젠 말을 귀 기울여 듣겠다고. 차라리 말을 하지나 말지. 그동안 나를 능멸해왔다는 생각을 하니 과거의 내가 불쌍해지고 갑자기 불행해졌다. 앞으로 잘해준다는 말도 믿을 수가 없고 내 마음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이게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말이야."

나한테 이 말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나를 싫어할 확률이 높다.

이 말 대신 써볼 만한 말이 있다.

"내 생각엔 말이야. 이렇게 하면 어떨까?"

이 말에는 겸손함과 상대방이 받아들일지 안 받아들일지를 결정하게 하는 유연성이 있다. 실제로 듣는 사람이 상처 받지 않고 수많은 경우의 수 중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

이 말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남의 말을 오랫동안, 깊이 있게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경우 말을 자를 때 주로 쓰는 말이다.

진심으로 이해가 된 경우엔,

"네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전엔 잘 몰랐어."라고 말해야 한다.

이 말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면서 상대방에게 공감하는 감동을 준다. 이 말을 들은 사람은 힐링이 될 게 뻔하다.


"나는 다 이해하지만 말이야."

이 말을 하는 사람이 제일 서운해할 확률이 높다. 주변 사람들에게 크게 신세를 진 일이 있다. 일일이 사례를 하거나 인사를 하기엔 너무 많았다. 그런데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이번에 너 좀 실수한 것 같다. 일이 다 끝났다고 말이야. 그전에 도와준 사람들이 얼만데. 그 사람들에게 최소한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니? 이러다가 네가 욕을 먹을까 봐 그래. 나는 다 이해하지만 말이야."


진짜로 주변 사람들에게 소외당하는 게 염려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씨도 안 먹힐 이야긴 넣어두고 단도직입적으로,

"야. 나한테 뭐 안 사주냐? 내가 너 도와줬잖아."



이 말은 상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둘이서 제삼자 이야길 할 때 일어난다. 이간질러들이 주로 써먹는 수작이다. 그가 내 욕을 했다는 식의 말을 묘하게 돌려서 하는 것.

"그렇다고 널 욕한 건 아니고 말이야."

이 말은 100% 내 욕을 했다는 말이다. 게다가 자기가 지금 나한테 하는 수작을 똑같이 써서 그가 나를 욕하도록 유도했을 수도.


이 사람은 날 시샘할 확률이 높다. 뱀이 악의 상징인 게 이해가 된다. 살인보다 더 나쁜 게 이간질이기 때문이다. 이간질은 나중에 사실을 알고 나서도 후유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

그럼 끝까지 하지 말 것이지. 이 말은 자기가 퍽 많이 참았고, 그 정도로 자기가 너그럽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일수록 너그러움과는 콘크리트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다. 오히려 작은 일에도 흥분지수가 올라간다. 워낙 자주 올라가다 보니 꾹 참다가 열 번 중 한 번을 터뜨린 것뿐. 너그러운 사람은 웬만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안 할 필요도 없다. 예민한 사람만 그저 자기 혼자 울그락불그락하는 것.

이 외에도 많은 경우가 있다. 결론은 이런 말들이 모두, 대놓고는 아니지만 은근히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한다는 것.


요즘은 모든 게 '임시휴업 상태'다. 이때 음식점이라면 장사 중 하지 못했던 인테리어 공사나 위생점검 등을 할 수 있다. 평소 언어 습관에 대해서도 그렇다. 바쁜 일상에 치어 살 때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들이 남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곰곰이 따져봐야겠다.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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