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잘 될 줄 알았는데

어디서 감히 쿨한 척을!!!

by 허윤숙

아무 때나 솔직한 게 좋은 걸까?

자기는 '너무 솔직해서 탈'이라며 깔깔깔 웃는 사람이 있다. 혹은 말실수를 해 놓고는,

"이런 말 하면 기분 나쁠래나?" 하면서 '호호호' 입을 가리고 웃거나.

모르고 저지르는 실수는 알고 나면 다신 안 한다. 하지만 알면서 하는 실수는 실수가 아니다. 의도적이다.


또 스트레이트한 성격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정작 자기에게 스트레이트 하게 이야기하면 못 참아한다. 그 말을 할 때의 심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 핑계'가 있다. 자긴 '뒤끝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만약 앞끝과 뒤끝이 다 있으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요구될 것이다.


자긴 말하고 나서 툴툴 털지만, 듣는 사람은 그 찝찝한 기분에 밤을 새울지도 모른다. 상대에 대한 평가나 충고라면 충분히 삭힌 후에 말해야 뒤탈이 없다. 적어도 듣는 사람이 어떤 심리상태인지, 그리고 자기가 그 말을 했을 때 어떤 기분이 될지 시뮬레이션해보는 건 어떨까?


특히 평소 말을 많이 하거나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 또 말을 잘한다고 칭찬 듣는 사람들이 특히. 나에게 하는 말이다.


자긴 '까만 거짓말'은커녕 '하얀 거짓말'조차 못한다며 대놓고 기분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 그 심리는 무얼까? 그 속을 알면 더 기분 나쁘겠지만...


누군가 나에게 대놓고 한 말 중에서 가장 기분 나빴던 말이 있다.


난 네가 잘 될 줄 알았는데...


:결혼식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가면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이 온다. 그 사람들이 나를 어릴 적부터 봐 왔다면서 하는 말이 이것이었다.

"난 네가 제일 잘 될 줄 알았는데... 네가 제일 똑똑하고 예뻤잖니?"


말은 곧 내가 지금 못 나간다는 말이 아닌가? 그리고 다른 그 누구가 나보다 훨씬 잘 나간다는. 그 누구가 자기가 아끼는 사람이거나 해서 나름 고소해하는 것이다. 눈치가 -100단이고 순수함 덩어리 그 자체인 나는 처음 그 말을 듣고 와서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자랑을 했다.

"글쎄 말이야. 내가 어릴 때 그렇게 똑똑하고 예뻤대. 그래서 제일 잘 될 줄 알았대."

그런데 그 말을 듣는 남편의 표정이 어째 그저 그렇다.

결론은 자기 만나서 별로인 인생이 되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걸까? '잘된다'의 기준은 대체 무얼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말이 주는 뜻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어릴 적 그렇게 잘나 보이더니 꼴좋다. 내지는 지금 참 안되었다. 등등등.


교사라는 직업이 주는 이미지가 그렇다. 안정된 수입과 방학 등 가정생활을 꾸리기에 좋은 직업이다. 반면 평범함에 묻힐 만한 직업이기도 하다. 대중 속에서 묻혀 있을 때만 뭉뚱그려서 좋은 직업.


그들 눈에는 특출 난 직업을 가졌거나 남편 조건이 뛰어나서 부귀영화를 누려야 '잘 된 것'이다. '생계형 교사'라는 타이틀을 딱 붙여 놓고 재무제표에, '그냥 보잘것없음.'

이라고 도장 찍어 놓은 것.


그 생각을 굳이 입 밖으로 내는 의도가 뭘까? 간혹 진짜로 내가 안타까워서 하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나 사랑이 있고, 진짜로 안타까운 사람은 그 사람 앞에서 하지 않는다. 속으로만 하면서 더 잘되길 바라거나 다른 사람들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 앞에서 그 말을 하면 그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길 바라는 건지.


혹시, 이렇게 말할 줄 알았나?

"어머머.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저 진짜로 잘 나갈 사람이었는데 맞죠? 맞죠? 그런데 사회가 날 몰라보네요. 역시 헬 조선이에요. 이놈의 잘남은 대체 언제 인정받을지.. 쩌업."


다소 삐뚤어져볼까?

"제가 어릴 적 그렇게 똑똑했다고요? 제 기억엔 전혀인데요. 곰 같고 어리바리했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얼굴도 중학교 3학년쯤 되어서야 예쁘단 소릴 처음 들었는데 무슨 소리세요? 혹시 지금 절 비하하려고 하시는 말씀 아닌가요? 차라리 대놓고 너 싫어라고 말하세요."


제대로 삐뚤어져 보면 어떨까?

"있잖아요. 그 말씀은 지금 제 남편 흉보신 거예요. 우리 남편이 뭘 어쨌다는 거죠? 그만하면 나에게 잘해주는 거예요. 그 나이에 뭐 그리 알콩달콩 할 순 없잖아요. 그리고 호강시켜주지 못해서요? 꼭 남편이 부인에게 해주는 게 호강인가요? 전 제가 남편을 호강시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죽겠는데요? 그리고 교사란 직업이 뭐 어때서요? 왜 이중잣대를 들이대시죠? 초등학교 여교사라는 말에는 안정적이다. 최고의 직업이다. 그러면서. 하지만 나는 굳이 하고 싶지 않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소박한 직업이니까. 뭐 이런 건가요?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전 거기에 더해 작가라는 직업이 있어요. 남다른 고뇌와 성찰이 없으면 글 한 줄도 쓰기 힘들어요. 뭐 딱히 돈이 되는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제 글을 읽고 도움이 되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 아닌가요? 꼭 몇 십억 이상 굴려야 성공한 인생인가요? 그리고 혹시 알아요? 내가 10년 안에 몇 백억 부자가 될지?"


써 놓고 보니 난 간장 종지만도 못하다.



요즘 시간이 많다 보니 말이 주는 의미를 새삼 느낀다. 평소엔 무심하다가 그 물건이나 사람이 없어지면 본질이 꿰뚫어 보이는 법.


요즘은 내가 했던 수많은 말실수를 돌이켜보고 반성하고 있다. 이제는 실수가 귀엽게 보일 수 없는 나이인지라.


실수 해 놓고는 상대방 표정이 험악해지는 때가 있다. 이때 이 핑계처럼 구차해 보이는 게 없다.

"네가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은 아니야."


자긴 어떤 의미로 말한 건지는 모르지만 상대방이 기분 나빴으면 기분 나쁜 말을 한 게 맞다. 즉 대화는 '맞춤형 서비스'로 가야지, '내가 곧 법'인 것처럼 따르라고 하면 안 될 일이다.


그렇다면 아주 대놓고 하는, 기분 나쁜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 일단 표정이 기분 나쁘게 바뀌면 안 된다. 오히려 함박웃음을 지으며 충고성 발언을 돌려주는 게 낫다.

만약 나에게 누가(여기서 그 누구는 평소 나에게 애정이 1도 없어 보이는 사람)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난 네가 훨씬 잘 될 줄 알았는데..."

하고 말하면,


최대한 화사한 미소를 지으면서, 싸늘하고 도도하게 말해주는 것이다.


"어머, 너 지금 실수한 거 알아?
넌 지금
대한민국 모든 초등학교 교사와
우리 남편을 모독한 거야. "




이미지 사진: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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