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적인 하소연러들
나를 향한 '감정 저축' 잔고를 수시로 확인해야.
컴퓨터 속도가 느려질 때가 있다. 그땐 컴퓨터 청소작업을 해 본다. 필요 없는 서류나 동영상 등이 들어차 있지는 않은지. 영락없다. 돌아서면 곧바로 쌓이는 자료들이 많았던 것이다. 대개 유통기간이 지난 것들, 앞으로 다시 볼 일 없는 것들이다.
업무용 메시지 함에도 그렇다. 나와 상관없는 공지사항이나 서류들이 많다. 그때그때 치우지 않으면 어느새 눈덩이처럼 자가증식이 일어난다. 모조리 긁어서 휴지통으로 버리고 나면 실제로 진공청소기를 돌린 기분이 든다. 마치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청소된 방을 둘러보는 것처럼 상쾌하다.
컴퓨터만 그런 건 아니다. 내 마음속에도 쓸데없는 생각이 켜켜이 쌓인다. 괜한 염려, 남에게 받은 불분명한 불쾌함과 상처. 이런 마음의 쓰레기들은 어느 휴지통에 비워야 할까?
마우스로 긁어서 휴지통으로 던져버리면 좋겠지만 말이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처럼 원치 않는 기억들을 수시로 지워버리면 좋겠다. 그걸 할 수 없으니 대부분 사람들은 이와 유사한 시술을 한다. 바로 말로 덜어내는 것. 걱정과 분노 등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때 뇌에선 감정 용량이 초과되었다고 불이 들어온다. 이때 비워주지 않으면 안 된다. 화병이나 두통이 생길 수 있으니.
남자들이 술이나 담배를 피우면서 감정의 쓰레기통 비우기를 한다면(알고 보면 이 또한 말로 풀기다.
담배를 같이 피우며, 술을 함께 마시며 심정을 토로하니) 여자들은 주로 수다를 통해 비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특히 수다가 직빵이다. 그런데 이 수다가 하는 건 좋은데 들어주는 게 고역이다. 화가 날 때 떠는 수다는 듣기가 더욱 괴롭다. 남을 욕하거나 자신을 비하하거나, 사이즈를 넓혀 사회를 탓하거나 하기 때문이다.
흥분해서 말을 하는 사람이야 상대방이 어떨지 살피는 일이 힘들다. 그런데도 이 밑도 끝도 없는 '흑색 수다'를 들어준다면 넷 중 하나일 확률이 높다.
첫째, 평소 이런 거래가 공평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 즉 내가 한번 하소연하면 다음엔 상대방 차례가 되고. 등등.
둘째, 들어주는 사람이 술이나 밥을 얻어먹는 경우. 남자들은 술 먹자고 할 때 암묵적으로 합의가 된다. "오늘 술이나 먹자."하고 기운 없이 말하는 직장 동료나 친구가 있다면, 100% 안 좋은 일이 있는 걸로 짐작한다. 그러니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신 술이나 밥을 얻어먹는 것. 이것도 나름 '야근'이다.
셋째, 서로 수직 관계인 경우다. 윗 상사 중 찌질한 성격에 무능력한 경우, 부하직원들에게 술을 자주 사주는 사람이 있다. 전에 근무하던 디자인 회사 과장이 그랬다. 바로 위 상사니 거절할 수도 없었다. 매일 사장님에게 깨지고 나면 자기 팀원들에게 술을 사주었다. 그러면서 회사를 그만둘 거라고 큰소릴 탕탕 쳤다. 그러고도 1년을 더 다녔다. 그 1년간 원치 않는 술자리에 가야 했던 불쌍한 우리 팀원들.
넷째, 이 경우가 가장 문제인데, 상습적인 '하소연 러'에게 마음이 약해서 거절을 못하는 경우다. 전에 알던 또래 여자가 있었다. 사회에서 만나서 서로 호감을 느낀 경우라 스스럼없이 연락해서 만나곤 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처음에만 잠깐 좋았을 뿐 점점 사람을 피곤하게 했다. 처음엔 그 사람 팔자가 세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 사람 주변에는 악인만 가득한 듯했다. 남편도 직장 상사도 시어머니도, 심지어 자식까지 자길 힘들게 한다고. 자꾸 직장을 옮겼는데 가만 보니 패턴이 반복되었다.
주위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늘 자신의 문제였던 것. 늘 불평만 일삼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니 사회생활이 힘들어지는 게 당연하다. 가족 간의 갈등도 알고 보면 인간관계의 문제다. 아무리 혈연지간이라도 사람을 피곤하게 하면 같이 살기 힘들다.
처음엔 호의로 만나서 시작된 인간관계였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 자기 말만 하고 내용도 늘 똑같은 패턴의 하소연이었다. 계속 듣다 보면 내 영혼이 나가 버렸다. 아이처럼 징징거리고 떼쓰듯 굴어서. 계속 듣다가 참지 못하고 그 지인의 잘못도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자 펄펄 뛰는 것이었다. 내가 몰라서 그런다는 식으로. 결국 자기만 옳다고 맞장구쳐야 만족했다. 그럴 거면 뭐하러 사람을 만나는 걸까? 인공지능에게 말하면 되지. 그러다가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사람을 그렇게 볼 줄 모르나 해서. 그 지인은 결국 나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여긴 것이다.
마치 컴퓨터 바탕화면에 놓듯이 나를 세워놓고는, 쓸데없는 감정, 나쁜 감정들을 버리는 용도로 활용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자 화가 났다. 더 이상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보다는 내 감정을 낭비하기 싫었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원하는 방식대로만 추임새를 넣어줘야 되는 짓을 하기에 나는 너무나도 소중했다.
요즘은 사람들이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게 과연 좋은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나를 편하게 대하는 건 그가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나쁜 면을 나에게 보여주어도 마음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건 결국 특별히 잘 보일 필요도 없다는 뜻일 수도.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나쁜 감정을 쉽게 해소하는 대상으로 삼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전에는 남이 나에게 "성격이 좋다.", "대하기 편하다."라는 말을 하면 칭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몇몇 일을 겪고 나니, 그 말이 '만만해 보인다.'는 말로 들린다. 그래서 앞으로 좀 불편해 보여야 하나 고민이 된다.
무엇보다 남의 귀한 시간을 빼앗으면서 끝도 없이 하소연을 늘어놓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친한 친구나 가족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방적으로 들어주는 사람 대 하소연하는 사람의 구도가 형성이 되면 문제가 생긴다. 나도 많이 저지르는 실수다.
앞으로 나야말로 누군가에게 하소연할 일이 있으면, 먼저 내가 상대방에게 '감정 저축'을 얼마나 해놓았는지 잔액을 확인해 보아야겠다. 만약 '마이너스 감정' 통장인 경우엔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마치 모두가 자기를 위한 '무한대 감정 대출 통장'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던 지인이 떠오른다. 결국 주위 사람이 모두 떠났다.
돈도 안 드는 일인데 뭘 그러냐고? 막상 서너 시간씩 남의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넋이 나간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