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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l 08. 2020

나이에 맞는 말의 속도

나이에 따른 '자동 설정 기능'이 있으면 좋겠지만.

평소 소화가 안 되는 편이다. 전엔 체질 때문인 줄 알았다. 친정아버지가 늘 소화제를 달고 사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원인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식단관리에 신경을 쓰다가 식사시간까지 신경 쓰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너무 빨리 먹어왔던 것이다. 그 결과 윗배가 나오고 소화가 안 되었다. 늘 10분 이내로 후다닥 밥을 먹어치우곤 했으니.


여유가 있어진 요즘엔 밥도 천천히 먹게 된다. 그러자 살도 덜 찌고 소화도 잘 된다. 무얼 하든 성격이 드러난다. 밥을 먹는 속도와 말하는 속도가 특히 그렇다. 밥을 빨리 먹는 건 성격이 급하기 때문이다. 밥을 먹는 데에 시간을 많이 내기가 아까운 것.


그 성향이 말하는 데에도 적용된다. 천천히 하면 열 마디 할 말을 빨리 하면 두배 정도 더 할 수 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빨리 표현해야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 또 상대방이 내 말을 다 들어줄 것 같지 않은데 내 의견을 꼭 점철하고픈 마음일 때도 그렇다. 기분이 업 된 상태에서 빨라지기도 한다.


어쨌거나 좋은 점은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가 말을 빨리 하는 건 한 번도 못 보았다. 상대적으로 말을 느리게 하는 사람은 마음에 여유가 있고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가 많다. 또 인자한 품성에 매사 성찰하면서 사는 사람들도 말이 느린 편이다.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에 비해 말이 느린 이유다.


나는 평소 말이 빠르다. 이에 대해 지적을 많이 받아 온 편인데, 잘 고쳐지지 않았다. 쫓기듯 사는 것이 원인이었다. 분주하게 일거리를 만들어내고 그걸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 욕심은 늘 종종거리게 만든다. 밥 먹는 시간, 말하는 시간, 살림하는 시간 등. 뭐든 빨리 해치우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성향이 건강에도 안 좋고 이미지에도 안 좋다는 걸 느낀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말이 빠르면 여유가 없어 보이기도 하고, 배려심이 부족해 보인다.


말이 느리다고 다 여유 있어 보이는 건 아니다. 말이 너무 느려서 속이 터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 성격이 게으르고 느긋한 경우가 많다. 의욕이 없고 무기력한 사람도 말이 느린 경우가 많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여럿 보았는데 말이 느릴 뿐만 아니라 말수 자체가 적고 어조가 낮고 단조로웠다.


말이 빠른 사람들은 이에 비해 활기차 보이고 즐거워 보인다. 같이 있으면 주변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젊은 사람에 한해서다. 젊은 사람들이 말을 빨리하면 활기차 보이는데 나이가 들어서 빨리 말하면 변덕스럽고 가벼워 보인다.


책을 많이 읽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평소 나지막하게 조곤조곤 말한다. 속도도 적당히 느린 편인데 느린 속도가 주는 편안함과 지성미가 있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건 사유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고 늘 평정심을 유지하기 쉽다는 것이다. 세상의 온갖 문제를 끙끙 앓는 대신 책에서 지혜를 얻어서 해결할 수 있으니.


그런 내면이 정직하게 말투로 드러난다. 고상한 단어와 적당한 속도의 말투로. 아줌마들이 시끄럽고 빠른 말투로 수다를 떨면 좋아 보이지 않는다. 사극을 보면 말의 속도가 주는 품위를 확실히 알게 된다. 왕이나 귀족, 양반들은 말을 길게 늘여서 천천히 말한다. 반면 노비들이나 서민들은 높은 톤으로 빨리 말하는 걸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런 말투를 썼는지는 녹음해 놓은 것이 없으니 알 수 없다. 하지만 고서로 전해 내려오는 대화 내용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는 있다. 양반이나 귀족들은 문장을 길게 말하고 속도는 천천히 했을 것이다. 또 천민들은 문장을 짧게 하고 빨리 말했을 것이다. 특히 말의 속도가 중요한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속도에 일부러라도 둔감해지려 한다. 전에는 뭐든 빨리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강했다. 서점에서 쏟아져 나오는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항상 자기 계발서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그 내용들은 대부분 촌각을 다투며 살아야 성공한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나만 뒤처진다는 생각에 분단위로 계획하고 실천하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까마득한 일들로 느껴진다. 코로나로 내 맘대로 일을 추진할 수도, 사람을 만날 수도 없는 지금. 내 앞에 놓인 건 많은 시간이다. 전에 비해 시간의 빈틈이 많다.


확실히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니 심리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이제 밥도 천천히 먹고 말도 천천히 한다. 전엔 잘 안 되던 것들이다. 말을 천천히 교양 있게 하는 것, 그것은 내가 꿈꾸던 우아한 중년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중년은 내게 허락도 없이 너무 빨리 찾아왔다. 그에 맞는 말투를 준비해 놓기 전에. 나는 여전히 '따다다 다' 속사포 같은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감히 발랄까진 아니어도 활달한 몸짓을 섞어가며.) 더 이상 발랄하지 않은 내가 말을 빨리 해 봤자 경박한 수다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텐데.


나이는 안개처럼 슬그머니 다가와 나를 휘감았다. 미처 마중하지 못한 나는 크게 뒤통수를 맞았다. 내 나이에 맞는 지성과 감성, 말투를 몰라서 허둥지둥하는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입었던 낡은 옷을 아직까지 입고 있듯이. 더 이상 몸에 맞지 않는데도 말이다. 이 '최초의 느림'을 준비하고 연습해야 했는데.


나이가 들면 뭐든지 나이에 맞게 딱딱 설정이 되는 줄 알았다. 중년 부인의 우아한 말투와 몸짓 등. 그런데 쉽지가 않다. 젊은 시절엔, '설마 내가 쉰 살이 넘어서도 여전히 불안하고 실수하면서 살겠어?' 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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