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윤숙 Jul 30. 2020

비겁한 취미, 뒷담화

욕하는 사람 기준에 맞추어서, 딱 욕먹지 않을 정도로만 산다는 것.

뒷담화는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뒤끝이 안 좋다. 맞장구만 치는데 어떠냐고 하겠지만 동조의 의미로 했다면 같이 험담 한 거나 마찬가지다. 험담이 몸에 밴 사람은 자기가 한 말도 맞장구친 사람이 한 것으로 둔갑시킨다. 대화중에는 누가 먼저 그 얘기를 시작했는지 모호할 수 있으니.  


이런저런 후유증이 있는데도 험담은 여전히 스트레스 해소에 그만이다. 일반인들이 하는 험담 대상은 윗 상사나 시 어른이다. 아니면 만만한 게 연예인 이야기다. 자기에게 스트레스를 준 사람을 욕함으로써 한을 날리는 효과도 있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뒷담 화함으로써 자기 위안을 삼기도 한다.


험담을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모 조직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팀은 다른 팀에 비해 실적이 월등했다. 그 팀장은 교활했다. 다른 팀원이 없는 자리에서 그 팀원을 욕하고 그 자리에 있는 팀원을 추켜세웠다. 그때 그 팀원은 우쭐해진다. 그러면 팀장은 그 자리에 없는 팀원과 그 팀원을 이간질시킨다. 온갖 고자질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 이런 방법으로 자기에게 모두 충성하게 만든 결과 실적에서 훨씬 앞섰다.


팀장은 없는 사실도 만들었다. 후유증은 팀장이 퇴사한 후에도 남았다. 서로 오해를 풀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간질은 의심병을 낳는다. 아무리 해명해도 또 다른 의심거릴 찾게 된다. 반면 팀원들에게 진실하게 대한 팀장은 실적이 적었다. 하지만 팀원들이 오래 남으니 나중에 실적이 올랐다.


여기서 뒷담화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험담을 들으면 서로 눈치를 보게 된다. 내가 잠깐 자릴 비운 사이에 내 욕을 하는 건 아닐까 전전긍긍하면서. 평소 몸가짐이나 말투에 신경 쓰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숨어있다. 남이 세운 기준에 부합하다가 자기 철학이 없어지는 것이다. 결국 적당한 수준에서 일을 끝낸다.


학교에 있으면서 가장 괴로운 게 이 부분이다. 이는 공무원 사회의 전반적인 행태라고 본다. 딱 욕하지 않을 만큼만 일하는 것. 문제는 너무 열심히 해도 안된다는 데에 있다. '너무 열심히'는 동료들이 하는 정도만큼만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다. 너무 열심히 해서 상사 칭찬을 받게 되면 동료들이 불편해한다. 자기들도 그 기준에 맞추어야 하니.


그러니 신입 시절에 가졌던 열정이 점점 사라진다. 흔히 험담은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에 대해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 피해는 피해인데 잘하려고 하다가 주는 피해다. 여기엔 질투심이라는 양념이 더해진다. 자기도 칭찬받고 싶지만 노력하긴 귀찮으니. 험담으로 선제공격하는 것이다. 자긴 노력하지 않을 것이고 그런 능력도 없다. 그런데 누가 칭찬받는 건 꼴 보기 싫다는 것.


험담의 부정적인 효과는 많지만 특히 이렇듯 '눈치꾸러기' 들을 양산하는 게 문제다. 당장 욕을 먹더라도 눈치 안 보고 용기를 내는 사람은 돌을 맞는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 덕분에 '변화'가 가능한 것이 아닐까?


딱 욕먹지 않을 정도만, 딱 뒷담화 당하지 않을 정도로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할 말도 꾹 참고 대세를 따르거나 부당한 일에 있어서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도 모른 척 지나친다. 이들은 얼핏 보면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비겁함'이 보인다. 단순히 남들의 험담이 두려워서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인터넷에 낙서하는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