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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l 07. 2020

체중 감량, 드디어 성공했다

'지나침'은 '적당함'의 동생이다. '힘듦'이 다이어트 실패의 원인이었다

 어느 날 친정아버지는 딸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들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다. 물려줄 게 있긴 하다. 그것은 바로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내 체질이다."


듣고 있자니 의심이 들었다. '유전인자는 아빠한테만 물려받나? 우리가 아무리 아빠 성씨를 물려받아도 그렇지. 뭐 굳이 체질까지야.'

그 말씀을 하실 때만 해도 꽤 오래전이다. 그땐 나도 날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돌연변이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그 게 나였다.

 

나는 '유산 탕진아'였다. 다른 형제들은 아무리 먹어도 날씬한데.


성격도 한 몫하는 것 같다. 뭐든 긍정적으로 해석하곤 하는 나의 성향 때문인 지도. 내 나이에는 내가 표준이라고 당당하게 외치고 다녔다. 그런데 그 표준이 해가 바뀔수록 수치가 상향조정되었다. 대체 어느 나라 표준인지. 매번 다이어트 시도를  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우리나라처럼 남녀노소 모두 다이어트에 목을 매는 나라가 있을까? 몸매 좋은 연예인들이 물을 흐려 놓은 게 분명하다. 헬스장 사장들이나 비만 클리닉 의사들이 돈 벌 욕심으로 체질량 지수를 낮게 책정해 놓은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웬만한 인바디 측정 기계에 올라가 보면 우리나라 중년 대부분이 비만으로 나오니. 고도비만이냐 중등도, 경도 비만이냐의 차이일 뿐. 미국에 사는 동생 말에 의하면 미국 아줌마들에 비하면 우리나라 아줌마들은 바비인형몸매라는데.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랬다. 코티솔이 분비되어 웬만한 암세포들은 멀찍이 물러날 것이다 라고. 칼로리 계산하기엔 숫자를 너무 싫어하기도 하고. 운동은 끔찍하다. 게다가 먹는 취향은 딱 '고탄 저지' 스타일.(요즘 유행하는 저탄 고지 식단과 반대로 탄수화물을 많이 먹고 지방은 안 먹는) 게다가 스트레스가 있어도 잘 먹는 좋은(?) 성격의 소유자다.


그러니 킬로그램 숫자가 자가 증식하고 있었다. 게다가 체질이 특이해서 몸무게가 살이 도둑처럼 찐다. 얼굴이 붓는다거나 등이 투실투실해진다거나 걸음이 뒤뚱거려진다거나 하지 않고. 분배에 있어서 복지정책을 실천한다. 남는 지방은 가난한 곳부터 보내준다. 예를 들어 발바닥(걸을 때 쿠션감이 좋아진다. 그래서 그런지 살이 찌면 신발 치수를 더 큰 것으로 사야 한다.)이나 뒷목(잘 보이지 않음), 또 옷으로 대충 가려지는 허벅지나 머릿속 살(물론 내 추측이다.) 등.


그러니 심각하게 쪄보이지 않는다. 평생 체중계를 달고 살아야 하는 이유다. 고장 난 아날로그 체중계를 몇 개월 방치한 적이 있다. 그러자 무려 7 킬로그램이 쪄 있었다. 어쩐지 거울을 볼 때마다 내 인상이 유난히 푸근해 보이더라니.


그래도 살을 빼진 못했다.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목숨 걸고 뺄 만큼 투지가 안 생겨서. 나이가 들어서 몸매에 신경을 쓰는 건 내 나이답지 않다며. 그러다가 건강검진 후 의사의 잔소리를 듣게 되었다.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일찍 죽어요. 살을 10킬로 이상 빼야 돼요."


10킬로 빼라는 말은 그 뒤로도 여기저기서 들었다. 알고 보니 중년이 넘어선 사람에게는 다 하는 말이었다. 살을 빼면 피도 맑아지고 관절에도 좋다고. 누가 그걸 모르나? 말이 쉽지, 10 킬로그램을 빼는 건 기적에 가깝다.


결국 나는 또 이렇게 살을 빼지 않는 이유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들 말로는 나에게 살이 하나도  쪘다고 말을 하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무도 나에게 그 말을 안 한다. 그렇다고 뚱뚱하다는 말을 하는 건 아니고(내 생각에 여자에게 뚱뚱하다고 말을 할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을 것.) 그냥 침묵을 유지한다.


예를 들어 내가 밥 대신 과일이나 샐러드로 대체하는 걸 볼 때다. 왜 밥을 안 먹냐고 해서,

"다이어트하려고요."라고 하면 전에는, "살이 어디가 쪘다고 그래요. 날씬하기만 한데."라고 말했다. 그런데 요즘은 진짜 아무 말도 안 한다. 그들이 하는 말이 내게 들리긴 한다. 나에게 독심술이 생긴 건지 착각하기도. '그러셔야지요. 아무래도 건강을 생각하면.'


이런 치명적인 반응에도 살을 빼진 못했다. 알고 보니 내가 살이 찐 원인은 따로 있었다.  






코로나로 안 그래도 길었던 겨울방학이 더 연장된 셈이다. 다른 때에 비해 활동량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친구 권유로 매일 '만보 걷기'를 하게 되었다. 식사량도 줄여보았다. 그 전에는 마음이 있어도 할 수 없던 일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집안 살림을 하고 나면, 당이 확 떨어져서 과일, 빵이나 과자를 정신없이 먹어치우곤 했다. 코로나로 온라인 학을 하긴 했지만 육체적으로는 덜 힘들었다. 덕분에 만보 걷기와 식단 조절을 했다. 그러자 요지부동이던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무려 5킬로그램이나. 전에는 고기 1인분(200그램)도 안 빠지더니.


그간 경험을 정리해 보니 살이 빠지려면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시술이나 약물을 제외하고)

첫째, 먹는 걸 줄인다.

둘째, 활동량을 늘린다.

셋째, 음식 종류를 바꾼다.


여기서 나쁜 결과는 한 가지 사항만 잘 지킬 때 일어난다. 예를 들어 먹는 걸 줄였다. 대신 초 고칼로리 음식을 먹고 꼼짝없이 누워만 있는다. 아니면 운동을 세 시간 하는 대가로 먹는 것도 세배로 늘리는 것. 운동을 안 하고 저칼로리 음식을 심하게 많이 먹든가.

 

마치 전교 꼴등이 마음을 잡고 열심히 시험공부했는데 한 과목만 100점이고, 나머지 과목은 0점을 받은 것과 같다. 전교 1등은 전과목을 골고루 잘한다. 그래야 좋은 대학에 간다.


살을 빼려면 전체 평균이 좋아야 한다. 식단도 좋고 조금 적게 먹고 운동도 적당히 하고 잠도 적당히 자고.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커지는 풍선과 같다. 심리적으로는 하나를 격하게 하면 잘 될 것 같지만.


젊은 시절 헬스장에서 하루 세 시간씩 운동을 한 적이 있다. 운동이 끝나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감자칩이 유난히 당겼다. 결국 감자칩 한 봉지가 기어이 내 팔에 안겨서 집으로 온다. 봉지를 후다닥 뜯고는 금세 빈 봉지를 뒤집어 감자가루를 탈탈 터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세 시간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돈 들여서 하는 살 빼기는 더 나쁘다.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뿐 장기적으로 볼 때 치명적인 부작용이 따른다. 다이어트 한약으로 유명한 집을 소개받은 적이 있다. 주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서 한 번 먹어 봤다. 가격도 상당했다. 그런데 딱 한 달 정도만 유지되고 그 뒤로 더 쪘다. 평생 먹을 수 없다면 다이어트 약은 모두 일시적이다.

 

무엇보다 적당히 힘들어야 살이 빠진다. 과도하게 힘들면 신체 리듬이 깨져 나쁜 사이클이 생긴다. 내가 아이 하나만 낳았을 땐 살이 찌지 않다가 둘이 되니 찐 이유도 그렇다. 아이가 둘이 되니 노동량이 몇 배로 늘었다. 살림에 육아에 일까지 하려니 늘 피곤에 찌들어 살았다. 그러니 식단 조절이니 운동이니 할 수 없고 늘 허겁지겁 밥을 때우곤 했다.


아이가 크고 나서도 그랬다. 살림에 돈벌이에 하루가 다 지나면 몸이 방전이 된다. 그러다 최근 상황이 변했다. 코로나로 시간적, 육체적 여유가 생긴 것이다. '힘듦'이 줄어드니 먹는 걸 줄이고, 운동은 늘리고, 음식의 종류도 건강한 것으로 대체할 여유가 생겼다. 그러자 살이 빠졌다.


'닥터유'로 유명한 유태우 박사가 말한 것이 맞았다. 현대인들은 '힘들어서 살이 찌는 것'이라고. '덜 힘들게' 살아야 한다고. 다들 먹는 것도 일하는 것도'지나치다'라고. 지나치게 일하면 힘이 들어서 먹게 되고 그러면 살이 찌니 몸이 둔해진다. 그러면 운동을 더 안 하게 되고 집에 틀어 박혀 있으면 먹을 게 눈에 들어오니 더 먹게 되고.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힘이 들면 왜 더 먹게 될까? 신체는 몸이나 정신이 힘들면 위기 상황이라고 생각하여 지방을 비축하려는 듯 보인다. 원시생활부터 장착된 습관이 아닐까? 악천후나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알아서 반응했을 것이다. 언제 굶어 죽을지 모른다고. 동굴 속에서 오래 버티려면 몸속에 지방분을 축적해두어야 한다고.


굶어 죽을 일이 거의 없는 현대인들은 그런 습관의 피해자다. 스트레스를 받는데 왜 음식이 당기게 되는지 말이다. 굶어 죽지 않는다고, 절대로 그럴 일이 없다고 크게 소리쳐봐야 소용이 없다. 몇만 년 이상 축적된 유전정보를 어떻게 당해내나?


힘이 하나도 안 든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거나 안 힘들게 하는 수밖에. 경험상 몸과 정신 중 한 가지만 힘들어도 먹을게 당긴다. 그런데 두 가지가 다 힘들면, 즉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힘들면 진짜 많이 당긴다. 그러니 둘 다 덜 힘들게 하면 된다.


내친김에 살을 더 빼기 위해서 최근 '나를 덜 힘들게 하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첫째, 내 주변 물건 가짓수 줄이기. 집안이나 일하는 공간에 물건 가짓수가 많으면 정리, 유지보수에 힘이 들어간다. 신경 쓸 일을 하나라도 줄여야 한다. 당근 마켓에서 무료 나눔을 통해 많은 물건을 나눠주고 있다.

둘째, 노동량을 줄이는데 아낌없이 돈 쓰기. 세탁이나 다림질, 장보기, 요리 등.

셋째, 질 좋고 영양가 높은 음식에 투자하기. 전에는 비싸서 못 사 먹던 음식들을 나를 위해 기꺼이 사 먹는다. 힘이 나고 살이 빠지고 건강해지는 거라면 무조건. 싱싱한 연어 샐러드나 맛있는 소고기 버섯구이 등.

넷째, 가사노동에서 가족들의 도움 얻기. 집안일에 지쳐 쓰러지기 일보직전에나 기족들에게 구원 요청하던 것을 이제는 수시로 가사분담을 정해 놓고 명령한다.(어젠 아들에게 5,000원 주고 멸치 내장 제거시켰다. 다 한 후엔 멸치 가시에 찔렸다며 산재를 신청해서 2,000원 더 얹어줌.) 엄마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한 거라고 하면서.

다섯째, 매사에 목표치를 낮게 책정하기. 전에는 걷기에서 만보를 꼭 채워야 안심이 되었다면 덜 채워져도 웃으며 나를 다독인다. 괜히 자기가 세워놓은 목표치 때문에 괴로워하는 바보 같은 짓은 이제 그만.

여섯째, 싫은 사람 안 만나기. 전에는 정에 이끌려 나와 맞지 않아도 만나곤 했다. 이제는 그런데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단 한 사람이라도 좋은 사람만 보고 싶다. 좋은 사람만 만나도 시간이 부족한 게 인생인데.


그 외에도 내가 행복하고 편안해지는 거라면 뭐든 했다. 그러자 육체적으로도 덜 힘들고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코로나로 '일시정지'되고 나니, 그동안 허겁지겁 사느라 못 보던 여러 가지가 드러난 것이다.

 

'힘듦'을 덜어내자 행복이 다가왔다. 그 결과로 살이 빠졌다. 그동안 살 빼기에 번번이 실패했던 건 내가 나 자신을 혹사해서다. 내 몸이 스스로 방어자세를 취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지방을 축적한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내 몸을 안심시키고 있다. 이 추세로 12킬로그램을 더 빼는 게 목표다. 그래서 스키니 바지 입고 프로필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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