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체하는 칭찬이 있다.
평소라면 기분이 좋았을 말이다. 하지만 의도가 뻔하다. 꼬박꼬박 따지는 나에게 모욕을 주고 싶어서 한 말이라는. 이렇게 칭찬을 이용해서 남을 모욕하는 사람들은 진짜 악질이다.
그 보단 덜하지만 위계에 의한 '속 보이는 칭찬'도 나쁘다. 회의시간에 딱 한 사람을 가리켜 칭찬하는 식. 충성심 강한 부하직원이 야근을 자처해서 일을 했다면 그 말을 꼭 회의시간에 하는 것이다. 다른 직원들 들으라는 식으로. 또 음탕한 눈빛으로 여직원 외모를 칭찬하는 것도 불결한 의도가 보인다.
자기편을 만들기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칭찬부터 퍼붓는 사람도 있다. 한 디자인 회사에 다닐 때다. 그 회사는 규모가 꽤 되었는데, 알고 보니 두 '라인'이 존재하고 있었다. '부장 라인'과 '실장 라인'. 그들은 서로 은근히 숫자 경쟁을 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긴장감이 팽팽했다. 그들이 쓴 수법은 바로 '칭찬'이었다.
그들은 별로 잘 그린 것 같지 않은 내 도면을 보고는 잘 그렸다고 하면서 다른 직원들에게 보여주었다. 또 현장일을 잘 처리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그러다 둘의 세력 갈등이 심할 땐 곤란했다. 내가 어느 술자리에 응해야 하는지.
반대로 그 회사 팀장은 달랐다. 자기 소신이 뚜렷했을 뿐 아니라 칭찬에 인색했다. 처음부터 내가 디자인을 배우겠다는 열정을 의심했다. 저러다 금방 시들겠지 하면서. 그래서 그런지 늘 힘들게 일을 시켰다. 네가 어디까지 하나 보자 하는 식. 칭찬은커녕 지적만 일삼았다. 어느 땐 나에게 디자인에 소질이 없나 보다 하고 그만둘 생각까지 할 정도로.
그런데 어느 날 회식자리에서 우연히 그 팀장이 날 칭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겉으론 매일 혼냈지만 속으론 달랐던 것이다. 그때 어찌나 어안이 벙벙하고 기분이 좋았는지. 그제야 알았다. 칭찬은 행동과 어우러져서 그 진정성이 있을 때만 가치가 있는 거라고.
시간이 지나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고 하는 게 칭찬이다. 그것도 남들에게 알리기 위해 하는 게 진짜 칭찬이다. 그러면 나에 대해 몰랐던 사람들까지 나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니.
하지만 부장이나 실장이 했던 방식, 즉 다른 동료들 앞에서 나를 칭찬하면 동료들이 시샘하게 되어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 또 업무에 적응되기 전에 일을 잘한다고 말해주면 우쭐해져서 실수할 수도 있다. 일을 제대로 배우려는 마음이 흔들릴 수도. 이래저래 진실하지 않은 칭찬은 독이 된다.
그 사람이 없을 때 하는 게 진짜 칭찬이다. 그래야 제삼자가 보기에도 진심이 느껴진다. 아무 보상 없이 그 사람에 대한 존중심을 표현하는 것이니까. 마치 그 사람 들으라고 대놓고 칭찬하는 건 "내가 널 챙겨 주었으니 너는 이걸 해야 해."라고 은근히 압박하는 것이다.
그런 칭찬은 '듣고 체하는' 칭찬이다. 그냥 '가슴에 녹는' 칭찬을 해주면 안 될까?
남을 향한 욕이 결국 돌고 돌아 그 사람 귀에 들어가는 것과 똑같이 말이다. 이때 칭찬하는 사람 가슴이 따뜻해지는 건 덤이다.
사실 칭찬은 듣는 것보다 할 때가 더 기쁘다. 뇌에선 주어가 따로 없다고 한다. 누굴 칭찬하면 나 자신을 칭찬한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나는 것이다. 대신 아무 보상 없이, 되도록 그 사람이 없을 때 진심을 다해서 하는 칭찬. 그걸 우연히 들었을 땐 기쁨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