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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Aug 26. 2020

나에겐 아픈 무릎이 있다.

그 무릎은 나를 더 성장시킨다.

내 무릎은 다리를 굽혔다 폈다 하는 기능 외에 또 다른 역할을 가지고 있다. 바로 체중을 가늠하는 것이다. 체중이 조금만 늘어도 무릎 통증이 심해진다. 30대 초반 헬스를 격하게 하다가 시작된 통증이다.


특히 오른쪽 무릎이 심한데, 순진하게도 얘는 20대 시절 내 몸무게를 '설정값'으로 두고 있는 듯하다. 그 몸무게에서 1킬로그램이 늘어난 만큼 통증의 강도가 더 올라간다. 체중을 많이 뺀 지금 아직도 나에겐 '12척의 배'가,  아니, '체중이 10킬로그램'이나 남았다. 그 10킬로그램만큼의 통증은 초기 통증의 딱 10배 강도다.


내 체중이 천정을 뚫은 적이 있다. 이땐 무릎에서 '삐그덕' 소리까지 났다. 계단은커녕 평지를 걸을 때조차 통증이 밀려오고. 그때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만약 내 무릎이 멀쩡했다면 지금 내 몸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 몸은 살이 쪄도 크게 표시가 나지 않는다. 100킬로그램까지 가는 데 크게 무리가 없었을 것. 무릎이 고맙다.


살면서 많은 '무릎'을 갖게 되었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말 안 해도 척척 1등을 하고, 아무렇게나 차린 상에서도 맛있게 밥을 먹었다면, 나는 머리 좋은 아이들을 낳아주었다는 교만이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학교에서 말썽을 피우거나 공부 못하는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 또 아무 음식이나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들 때문에 요리 솜씨가 형편없게 되었을 거다.


남편은 어떤가? 잔소리 같은 거 안 해도(물론 잔소리해도 소용없다.) 알아서 술, 담배 끊고, 집안일 척척 도와주고, 돈도 대따 많이 벌어다 주는 천사표 남편이었다면 말이다. 아마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좋은 여자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눈 뜨고 못 봐줬을 것. 다행(?)스럽게 나는 현재 '비자발적 겸손'이 몸에 배었다. 매일 부족한 나 자신을 성찰하며 산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쫓겨난 이유도 비슷하다. 처음부터 아예 선악과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죄'라는 걸 아예 몰랐을 것이다. 그럼 일을 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고, 평생 니나노 놀기만 했겠지. 그러다 아담과 이브는 서로 싫증이 났을 거다. 노는 것에도 권태가 따르는 법이니까.


죄를 지어, 평생 일을 하는 수고로 먹고살게 된 건 그들에게 축복이다. 농사라는 걸 지으며 다양한 품종을 개발하고, 머리를 쓰면서 문명을 개척하게 되었을 테니. 만약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동물 이름 짓는 일외엔 평생 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둘이서 놀러 다니는 것과 함께.


하나님 입장에서도 선악과는 '무릎'이었다. 아담이 자신을 존경하고 순종하는지 속을 도통 알 수 없었을 테니. 그러니 눈에 띄는 선악과를 심어서 테스트를 하신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말로는 천리장성이라도 쌓겠지만 진짜 속마음은 알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면모를 일찍 파악하고 그에 합당한 역할을 주신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유례없이 많은 사람이 감염되고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코로나는 처음부터 오지 말아야 할 존재였을까? 오긴 오더라도 딱 내 자손이 살다 갈 시점에나 오고? 어차피 자연파괴의 벌을 받긴 받되 말이다.


중세에 페스트 균이 유럽을 휩쓸고 나자 유럽의 전반적인 위생개념이 전환점을 맞았다. 길거리에 똥오줌이 뒹굴던 모습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변화는 대개 재난으로부터 시작된다. 재난의 규모나 파급력의 문제보다는 '완전한 파멸'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더 크다. 예를 들어 무한 성장하던 공룡에게 경종을 울릴만한 재난이 그전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지금처럼 박물관에 전시되거나 석유 신세가 되진 않았을 듯.


만약 인류가 계속해서 환경을 무분별하게 훼손하고, 동물을 이기적으로 이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인류도 나중에 어느 동물의 박물관 비슷한 곳에 전시되는 건 아닐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중세의 페스트 자체는 재난이었지만, 극복한 결과로 생활이 청결하게 개선되었다.


코로나도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제인 구달은 그래서 이 코로나를 자연 회복에 긍정적인 신호탄으로 본다.) 무분별한 자연훼손을 삼가고, 특히 동물 서식처를 보호하고 인간이 동식물과 자연스러운 공생 관계를 유지하고 말이다. 또한 처치 곤란한 쓰레기를 양산하는 무한 생산 , 무한 소비를 멈추는 것이다.

 

인생에서도 그렇다. 힘든 고비가 올 적마다 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런 젠장, 이건 또 무슨 무릎이지? 이번엔 또 무엇을 바꿔서 내 인생이 더 좋아지게 한단 말인가?'라고.


이러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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